악에 저항하는 법도 가르쳐라!

[인터뷰] <도덕교육의 파시즘> 낸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

등록 2005.12.04 12:24수정 2005.12.0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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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교과서의 파시즘을 타파하는 것은, 우리의 교육을 파시즘적 노예교육에서 구해내어 진정한 자유인을 기르는 교육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는 교육개혁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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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저녁 인사동 찻집에서 만나 인터뷰한 <도덕교육의 파시즘>의 저자 김상봉 교수. ⓒ 조성일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최근에 낸 <도덕교육의 파시즘>(길 펴냄)의 문제제기다. 이 도발적(?) 문제제기에 어떤 이들은 무척 당황해하며 고개를 젓는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중앙일보> 11월 12일치에 기고한 글에서 "실체보다 이름으로 사물을 설명하려는 태도"인 '유명론'에 빗대 김 교수를 비판하면서 '파시즘'이나 '노예도덕'의 의미가 생뚱맞게 와닿는다며 "이성보다 선정성이 묻어나는 말들"이라고 했다.

같은 날 <한국일보>은 리뷰에서 "시대착오적 도덕교과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보편성을 띠고 있다"면서도 "독자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서는 극도로 과격하고 위험한 좌파적 시각으로 보일만하다"고 했다. <교수신문>도 같은 날 "윤리교육학계에서는 철학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점에서 동감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비판적"이라고 학계의 반응을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김상봉 교수에 대한 비판은, 박효종 교수의 기고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자들의 질문에 코멘트하는 정도의 소극적 대응으로 지극히 피상적인 언급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일단 문제제기에 대한 비판적 반응은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이 비판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입장은 무엇일까?

지난 11월 25일 저녁,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김상봉 교수를 만났다.

"<조선일보>까지 책 리뷰... 최소한 문제제기에는 성공했다는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보수언론들, 특히 <조선일보>까지도 제 책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리뷰하는 등 저의 문제제기를 예상보다 크게 다뤄, 이 문제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제로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싶어 최소한 문제제기에는 성공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기된 비판들에 대해 개별적, 구체적 답변을 하기에 앞서 김상봉 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의 본문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마주치는 책의 제목만 보고 날을 세웠을 수도 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이란 제목에다 부제까지 '노예도덕을 넘어서'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실은 책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제목에 '도덕(교육)'이란 낱말을 넣는 것이 문제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있었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보다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처음 생각대로 '도덕교육의 파시즘'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는 이 책의 1차 독자는 이 작업을 하도록 부추겼던(?) 현장의 도덕교사들이라고 말한다.

책의 '머리말'에서도 밝혔듯 김상봉 교수가 우리의 도덕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지난 2003년 초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청소년철학교실에서 1970년대 후반 신촌의 한 야학의 동료이자 전교조 전국도덕교사모임의 회장인 이광연 교사를 만나면서부터였기 때문이다.

이광연 교사와 김 교수는 어떻게 하면 도덕교육을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도덕교육, 예의바른 노예가 아닌 긍지높은 자유인 기르는 과정"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지를 보면 '도덕'에 대한 전제가 저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비판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제가 제기하는 문제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다른 이가 쓴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피상적인 몇 구절만을 가지고 이를 전체인양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일 것이다.

김 교수는 우선 자신의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덕이란 '품행이 방정하고 예의바른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무질서와 방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식의 통제나 외적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덕교육은 외적 강제에 의해 길들여진 예의바른 노예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행위하는 긍지높은 자유인을 기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김 교수는 도덕주의자이긴 하나 무정부주의자에 가깝다"며 "철학적 무정부주의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유의 역설'도 상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자유나 자율성이 무정부상태나 무질서한 방종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파시즘적 사고"라면서 참된 자유는 밖으로부터의 강제가 없이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감히 숭고한 도덕을 비판하냐고요? 도덕적 담론이 오히려 도덕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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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교수 ⓒ 조성일

김상봉 교수는 자신의 책제목에 들어있는 '파시즘'이란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의식한 듯 단호하게 다시 한번 '파시즘'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시즘의 특징으로 모두 다섯 가지를 들었다. 첫째가 전체주의적 사고이고, 둘째가 국수주의적 태도(인종주의 포함), 셋째가 법 절대주의, 넷째가 자연스런 욕망의 억압으로서의 금욕주의, 그리고 다섯째가 비합리주의이다.

"우리 사회에는 '감히 숭고한 도덕을 비판해?' 하는 도덕적 절대주의가 팽배합니다. 도덕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거의 모든 이익집단이 도덕을 명분으로 내세우게 되고 그 결과 매사에 도덕과잉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도덕적 담론들이 넘쳐흐른다 해서 우리 사회와 우리의 삶이 도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이 왜곡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교수신문> 기사에서 언급된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박찬구 교수의 지적(자유주의적 이념에 충실한 미국의 교육이 도덕적 상대주의 조장과 무규범적 학생 양산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최근 인격과 덕교육으로 선회한다는 내용)에 대해 미국적 문맥과 한국적 문맥이 다르다고 말했다.

"저는 도덕교육이 인성교육이나 덕목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교육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된 인성, 덕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학생들에게 참된 인성이나 도덕성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죠."

그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예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예의는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고, 한국의 도덕교과 역시 예의를 대단히 강조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한국인들은 결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예의바르다 할 수 없다는 것. 그 까닭은 도덕교과가 가르치는 예의가 근본에서부터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참된 예의는 비굴함이 아니라 상호적 배려와 정중함"

"민주사회에서 참된 예의는 상호적 배려와 정중함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교과서가 가르치는 예의는 언제나 계급적 불평등을 전제한 뒤에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에게 보여야 하는 공손함으로 이해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도덕교과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칠 뿐 부모가 자식에 대해 지켜야 할 예의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사에 대해 학생이 지켜야 할 예의만 말할 뿐 교사가 학생에 대해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도덕교과서입니다. 그러니까 이에 따르면 예의는 사회적 약자에게만 해당되는 공손함이지 결코 평등한 인간관계에서 서로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대다수 한국인들이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예의를 지켜야 할 사람들 앞에서는 공손하지만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낯선 타인에게는 너무도 무례한 경우가 많은 것이 아니냐고 김 교수는 반문했다.

그러나 이런 예의는 비굴함일 뿐 참된 예의가 아니라며 김 교수는 참된 예의는 사람의 빈부귀천과 관계없이 서로 지켜야 하는 비굴하지 않은 정중함과 배려라고 했다. 그리고 예의뿐 아니라 다른 덕목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그는 덕목교육이나 인성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덕목을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에 어울리는 내용과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악을 멀리하고 선을 추구하는 것'이 도덕인데, 자기가 타인에게 행하는 악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자기에게 가해지는 악도 있을 수도 있다며, 자기가 남에게 행할 수 있는 악을 멀리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 것처럼 남이나 사회가 자기에게 가하는 악에 대해 저항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권위에 대한 복종만을 강요한 도덕교육의 결과, 순종하는 노예밖에 더 만들었느냐고 그는 되묻는다.

"'일방적으로 훈육해야 한다'는 것은 계몽주의자의 착각"

이번 그의 책에서 직격탄을 맞은 서울대 국민윤리교육학과가 1981년 전두환 정권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이미 1977년부터 대학원 과정이 설치돼 있었으므로 사실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문제의 핵심과는 상관없는 논란이라면서, 1981년 이후 서울대를 비롯하여 전국 각 대학에 국민윤리교육과가 학부에 설치되면서부터 이 학과가 한국의 도덕교육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게 된 것이 문제라는 것을 말했던 것이라 대답했다.

또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학생 및 졸업생 다수가 대기업의 노동운동과 전교조 결성의 주체로 활약했으므로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지 않았다는 반박에 대해서도 자기는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학생이나 교사들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가 한국의 도덕교육을 독점하고 있다는 제도 그 자체와 그 기득권에 기대어 도덕교육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교수들을 비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교조 도덕교사모임에 참여하면서 김 교수와 더불어 도덕교과 개혁운동을 하는 교사들 가운데도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출신 교사들이 상당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 땅의 많은 도덕교육 담당자들이 여전히 누구를 일방적으로 훈육해야 한다는 계몽적 착각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참된 계몽의 의미는 칸트가 말했듯이 "후견인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서는 것"이라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계몽주의는 바로 이런 자율성이라고 역설한다.

그의 저작 중 가장 많이 읽혔다는 윤리학 책인 <호모 에티쿠스>(한길사)에서 이미 "참된 도덕은 인간의 근원적 자유의 표현"이라며 "오직 주체적 반성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도덕적 주체, 윤리적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한 문제의식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왜 철학자가 도덕교육, 즉 남의 일에 개입하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윤리학과 도덕철학은 철학의 한 분야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 김상봉 교수는, 자유로운 인간성 함양을 위한 도덕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자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되어야하며 그것은 칸트가 말한 철학함(Philosophieren)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나서, 기자는 이 책은 도덕교사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꼼꼼히 읽고 우리의 도덕 교육을 제대로 세우기 위한 본격적인 토론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김상봉 지음,
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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