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광답게 독일 가서 월드컵을 구경할 계획이라는 최영미 시인.정하경
"그건 저도 사실 잘 모릅니다. 시를 쓰며 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상징과 비유가 나오는 편이라서 …… 나중에 편집자와 기자들이 묻길래, 급한 대로 둘러댄 설명이 시의 해석을 편협하게 만든 것 같아 지금 약간 후회됩니다. 그 정확한 의미는 시 속에 다 있다고 할까요."
- 한국의 지식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너무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었던 최영미 시인의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오늘날 한국 지식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변방 콤플렉스를 벗지 못한, 지적 속물이 너무 많습니다.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게 비단 지식계만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이 시집을 읽는 법이야 독자들 나름의 방법이 있겠지만 시를 쓴 시인으로서 어떤 독법이 적합하다고 보는지.
"그냥 언어의 구조물로 봐 주세요."
- 이번 시집은 한국사회의 위선, 지식인의 이중성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번 시집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글쎄, 저도 그걸 모른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하나하나의 시가 존재할 뿐이지요."
-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주로 언제 쓴 것들이며, 시를 썼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나 시작 노트가 있으면 얘기해 달라.
"스무 편 가량은 지난 7년간 모인 시들이며, 나머지는 올 여름에 썼습니다. 저는 주로 집에서 작업합니다."
독일 가서 독일 월드컵 구경할 터
- 이번 시집에서 특히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축구광답게 축구에 관한 시도 함께 싣고 있다.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리고 어느 정도 좋아하는지.
"똑같은 질문을 열 번, 아니 오십 번은 받은 것 같습니다. 답은 역시 제 시 속에 있지요. 순수와 열정이 저를 푸른 잔디로 이끌지요."
최영미의 시 '인생보다 진실한 게임'을 감상해보자.
"돈과 권력과 약물로 오염된, 아무리 더러운 그라운드에도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이다."
- 웬만한 유럽 축구 경기는 다 볼 정도라던데, 월드컵 때 아마도 독일에 직접 가서 구경하지 않을까 싶다. 그럴 계획이 있는지.
"네, 물론이지요."
- 시 '인간의 두 부류'를 보면 최영미 시인은 사회의 위선을 까발리고 조롱하고 하는 적극성으로 보아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공격수' 같은 느낌이 드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최 시인은 공격수인지, 아니면 수비수인지. 또 최 시인이 지향하는 인간형은 무엇인지.
"저는 지극히 수비지향적인 사람이지요. 저를 공격수로 생각했다면, 저에 대한 선입견으로 제 시를 액면 그대로 읽지 않으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사회의 위선을 '조롱'한 게 아니라, 폭로하고 비판한 겁니다. 그건 구분해주면 좋겠습니다."
- 이번 시집에는 또 여행시들도 있다. 최영미 시인의 여행은 익히 알려진 바 있는데, 많은 곳 다녀본 결과 가장 매혹시키는 곳이 어디던가.
"스페인."
시적인 소설과 소설적인 시를 쓰고 싶다!
- 최영미 시인은 <서른 잔치가 끝났다>에서 '잔치'가 1980년대 '운동'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돼 적지 않은 오해(?)를 받았는데, '잔치'는 무얼 의미하는가.
"그냥 시를 쓰던 당시 저를 불러낸 단 한번의 '모임'이었지요."
- 지난 5월 '오랜 꿈'이었던 소설 <흉터와 무늬>를 발표하고 이번에 시집을 냈는데, 시와 소설 중 어느 장르가 자신에게 더 맞다고 생각하는지.
"둘 다. 시적인 소설과 소설적인 시를 쓰고 싶어요."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작품인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
"구상 중이라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닙니다."
- 발표한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가 있다면.
"다."
- 그동안 무얼 하며 지내는지, 그리고 요즘 하루 일상을 말해 달라.
"미술 강의를 무사히 끝내, 시원섭섭합니다. 잠시 쉬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주변이 정리되는 대로 다음 소설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최영미의 서양미술사'를 들어준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를 아는 여러분 모두 따뜻한 겨울을 보내시며,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끝으로 최영미의 시 <시대의 우울>을 감상하며 이 인터뷰를 갈무리하자.
"그처럼 당연한 일을 하는데 /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했던가 //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 / 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 /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 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 //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
돼지들에게 - 제5회 이수문학상 수상작
최영미 지음,
은행나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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