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땅이 이러코롬 큰 줄은 몰랐는디…"

어머니와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길-마지막 편

등록 2005.12.05 15:03수정 2005.12.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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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앞바다 배예요. 여러 배들 가운데서 그날 한 배가 점심 시각에 맞춰 출항에 나서는 것 같았어요.
서귀포 앞바다 배예요. 여러 배들 가운데서 그날 한 배가 점심 시각에 맞춰 출항에 나서는 것 같았어요.권성권
드디어 서귀포 앞 바다에 다다랐다. 수많은 배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파도에 여러 배들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울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을 횟집에 들어갔다. 점심치고는 꽤 값 나가는 곳이었다. 그래도 모처럼만에 하는 여행길이니 그 정도는 괜찮을 듯싶었다. 하지만 울 엄마는 언짢은 표정이었다. 돈을 낭비한다는 눈치였다.


“그냥 밥 먹제 뭐 하러 비싼 것 시킨다냐.”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 번 회도 먹어 줘야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제, 다르다냐?”
“돈 걱정 하지 말고 그냥 드세요.”
“근디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 해녀 못 봤냐?”
“아까 그 해녀 말이에요. 봤지요.”
“…….”

제주 해녀의 모습이에요. 울 엄마보다는 조금은 젊은 듯 하지만 그래도 많이 드신 해녀의 모습 같았어요. 아직까지 저 분에게는 당당한 힘과 기운이 있는 듯 했어요.
제주 해녀의 모습이에요. 울 엄마보다는 조금은 젊은 듯 하지만 그래도 많이 드신 해녀의 모습 같았어요. 아직까지 저 분에게는 당당한 힘과 기운이 있는 듯 했어요.권성권
점심으로 회를 먹으려는데, 뜻밖에 해녀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사실 서귀포로 오기 전에 우리 식구들은 송악산 아래 자락에서 해녀를 봤다. 말로만 듣던 제주 해녀였는데, 나이는 꽤 들어 보였다. 등 뒤엔 그물 걸망이랑 물 위에 뜨는 하얀 통도 매고 있었고, 옷도 고무로 된 통옷이었다. 옷이 많이 낡아서 그런지 여기 저기 땜질한 곳도 많았다. 그 옷을 입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가서 해삼 같은 것을 따오는가 싶었다.

그곳에서 해녀를 바라 본 울 엄마는 괜스레 눈시울을 적셨다. 마치 자신이 살아 온 옛 모습을 보는 듯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억척스레 일곱 자녀들을 돌보았던 지난 옛 모습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비싼 회를 먹는다는 게 왠지 목에 걸리는 듯했던 것이다.

“엄마, 그래도 이왕 시켰으니, 그냥 드세요.”
“알았다야. 허지만 느그들끼리 밥 먹을 땐 아껴 먹어라 이.”
“예, 그러니까 드세요.”
“맛은 쪼까이 있다 이.”
“그러죠, 맛은 좋죠.”

제주민속박물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 일어난 듯하네요.
제주민속박물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 일어난 듯하네요.권성권
점심밥을 먹고 차를 돌려 곧장 ‘제주민속박물관’으로 갔다. 서귀포에서 그곳까지는 삼십분 정도 걸렸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더니 바람도 좋고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더부룩한 것들도 사르르 뚫리는 것 같았다. 어른들 뱃속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두 아이들은 벌써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민속박물관은 그야말로 제주를 알리는 곳이었다. 제주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배와 그물, 돌하르방은 어떤 모습인지,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드는 제주 해녀들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제주 사람들이 쓰고 있는 농기구들은 또 무엇이 있는지, 거기에 덧붙여 제주도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어떤 것을 남겼는지, 그리고 대장금을 찍은 곳들도 가끔 가다 소개해 놓고 있었다.

두 어르신이 멋진 혼례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에요.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울 엄마와 함께 멋진 혼례도 치러드렸을텐데, 아쉬움이 많았어요.
두 어르신이 멋진 혼례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에요.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울 엄마와 함께 멋진 혼례도 치러드렸을텐데, 아쉬움이 많았어요.권성권
그 박물관 한 곳에서 나이 지긋한 두 어른이 비단옷을 입고 혼례를 치르는 것을 봤다. 신혼 혼례가 아니라 그곳 방식으로 왕과 왕비가 되어 다시금 혼례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물론 자녀들이 부추겨서 한 일이라 응원해 주는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손자와 손녀들까지도 축하해 주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뜩 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나도 저렇게 울 엄마와 멋진 혼례식을 올리게 해드렸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 남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멍하니 그 분들을 좋아라하며 바라만 볼 뿐이었다.

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집이에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곳이 중간산촌 집 가운데 한 곳이 아닐까 싶네요. 왼쪽에 우비 '도롱이'가 걸려 있네요.
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집이에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곳이 중간산촌 집 가운데 한 곳이 아닐까 싶네요. 왼쪽에 우비 '도롱이'가 걸려 있네요.권성권
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제주 집들은 제각각 특색이 있었다. 산촌 막살이 집이라든지 사냥꾼 집도 있었고, 어촌에는 어부 집과 해녀집도 있었고, 중간산촌에는 서당과 종가집도 있었고, 무속신앙촌에는 점집과 해신당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집들 앞에는 제 각각 이름과 쓰임새가 적혀 있었고, 그 구조 또한 달랐다. 그리고 어떤 농부 집에는 ‘연자’라든지 눈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칡 줄로 엮어 만든 ‘태왈’도 걸려 있었다.

겨울철 집 안에다 무나 고구마를 저장해 놓는 짚무덤이에요. 일종의 창고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겨울철 집 안에다 무나 고구마를 저장해 놓는 짚무덤이에요. 일종의 창고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권성권
그 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서야 제주가 어떤 곳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다음 코스에서 봤던 ‘성산일출봉’이라든지, ‘섭지코지’ 같은 곳들도 제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긴 했다. 하지만 제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모습과 그 냄새를 맡아보기에는 그곳들이 조금은 멀지 않나 싶었다. ‘소인국테마파크’와 ‘조각공원도’, 그리고 ‘미니미니랜드’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좀 더 제주다운 제주, 제주에 사는 사람들과 그 맛과 멋을 알려면 민속박물관과 같이 제주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았던 곳들을 둘러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섭지코지예요.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서 오고가고 하는 모습이지요.
섭지코지예요.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서 오고가고 하는 모습이지요.권성권
그래서 저녁 늦게, 한라산 산등성이를 넘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씁쓸한 무언가가 밀려들었다. 이번 여행길에 좀더 제주를 알 수 있는 곳들을 택해서 돌아보았더라면 울 엄마도 무척이나 흡족했을 것이고, 나와 아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주도로 가기 전에 누군가 권해 줬던 ‘종달리’와 ‘용눈이오름’, 중문에 있는 ‘주상절리대’, 그리고 ‘돌하르방공원’과 ‘비자림’들이 내 눈에 내내 밟힐 뿐이었다.

내가 그런 저런 빈말을 혼자 하자, 울 엄마도 맞장구를 쳐 주는 듯했다. 게다가 제주도 땅이 그렇게 넓을 줄은 몰랐다는 말과, 미리서 잘 알아보고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랴.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무슨 수로 돌이킬 수 있단 말인가.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길은 그것으로 족해야 할 것 같았다.

저녁 무렵, 잠자리에 들기 전 울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여행길에 관련된 이야기도 주고받았지만, 대부분은 우리 집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형들과 누나네,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칠남매에 딸린 손자 손녀들 이야기였다.

모든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올 때, 기내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더 좋은 곳에 함께 가요. 알았죠. 그때까지, 오래오래 살아 계셔야 해요."
모든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올 때, 기내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더 좋은 곳에 함께 가요. 알았죠. 그때까지, 오래오래 살아 계셔야 해요."권성권
“괜찮았어요. 제주도 여행.”
“좋긴 하다야. 제주도 땅도 무쟈게 크고. 이러코롬 큰 줄은 몰랐는디 이.”
“그렇지요. 나도 몰랐어요.”
“느그 형들이랑 누나랑 다 같이 왔으면 좋았겄다 이.”
“그러게요. 섭섭하죠.”
“아먼, 글제. 글지만 그 식구들이 비행기타고 어쯔게 다 오겄냐.”
“오면 오지, 못 올 것도 없지요.”
“느그 형들도 일하는 것들이 다 잘되야 헐 텐디 모르겄다 이.”
“뭐가 잘 안 된대요?”
“큰 성이 돈을 많이 띠껬다드라.”
“셋째 형은 몸이 더 괜찮아졌을까요?”
“더 좋아졌다고는 헌디, 모르제. 봐봐야 알제.”
“엄마가 이제 기도 많이 하세요.”
“내가 문 기도헌다고 된데야. 즈그들이 잘 히야제.”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마음 편히 떠난다고 떠나 온 여행길이었지만, 울 엄마는 그렇게 맘 편히 여행을 했던 게 아니었다. 어디 울 엄마만 그렇겠는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엄마들이 다 똑같지 않겠나 싶다. 맘 편히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도 자식들 걱정에 한시름도 놓지 못하는 엄마들이지 않겠는가….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울 엄마와 함께 잠이 들고 말았다. 하지만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고, 이내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가야만 했다. 모처럼 만난 울 엄마와 함께 잠이라도 함께 자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그 틈새를 봐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칠순 넘은 울 엄마와 함께 떠난 이번 제주도 여행길은 정말로 뜻 깊은 여행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길을 계획하고, 모든 돈을 보내며 미리서 예약한 내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러웠으며, 칭얼대면서도 꿋꿋하게 따라다녔던 민주랑 민웅이도 참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아픈 다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삥아리 자식’이 가자고 하면 이곳저곳으로 그저 믿어주며 따라가 주던 울 엄마도 그지없이 고마웠다. 다음에 기회가 닿을지 모르겠지만, 그땐 더 좋은 곳으로, 더 알찬 곳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 간절했다.

등 뒤엔 무거운 그물 걸망을 매고
군데군데 땜질한 거무스름한 고무 통옷 한 벌 입고
열길 바다 물속으로 들어 들어가는 제주도 해녀
쭈글쭈글 깊게 패인 얼굴 흉터
절뚝절뚝 제대로 걷지 못한 발걸음
제 자식 먹이고 입힌 흔적일터니
그 늙은 해녀의 걸음걸이에서
울 엄마 모습을 본다
일찍 떠난 아버지 몫 대신하여
일편단심 칠남매 자식만 바라보며
자신의 몸 군데군데 충난 지도 모르고
땜질해야 했던 그 때도 다 놓쳐 버린 채
이젠 하고 싶어도 할 힘조차 없는 울 엄마
그 모습에서 제주도 해녀를 본다
함께 마주한 저녁 잠자리에서
만져보고 싶던 그 어렸을 적 젖무덤
이젠 늙고 늙어 한없이 쭈글쭈글해졌으니
만져볼래야 만져볼 수 없고
그저 민망할 뿐이네…
울 엄마는 왜 이토록 늙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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