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대책 미적대는 여당, 뭐가 두렵나

[取중眞담] 80% 지지 받는 부동산 정책 지체시키는 집권당의 무능

등록 2005.12.07 09:54수정 2005.12.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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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서병수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에서 정책협의회를 열어 8.31부동산종합대책의 후속 입법 문제와 새해 예산안 조정문제 등을 논의했다.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서병수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국회에서 정책협의회를 열어 8.31부동산종합대책의 후속 입법 문제와 새해 예산안 조정문제 등을 논의했다.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표를 찍어준 지지층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존재 이유가 없다. 지금 열린우리당의 모습이 꼭 그렇다.

되짚어보자.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12월 3일.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2003년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10·29 부동산 대책의 하나인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 부과'에 대해 "1년 연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4일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입장 변화는 있을 수 없다"면서 정부와 청와대는 갈등 양상을 보였다.

결국 양도세 중과는 청와대 입장이 관철됐지만, 시장은 10·29 대책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청와대가 불협화음을 내는 정책이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먼저 시장에 부동산 규제 완화 신호를 보낸 사건은 2004년 11월 재경부가 총대를 메고 열린우리당 몇몇 의원들이 장단을 맞추고 나선 종합부동산세의 '종합구멍세' 전환. 청와대쪽에서 반대했지만 당정이 함께 뭉쳐 나서는 바람에 법안은 이상하게 변했다.

당초 종합부동산세는 주택은 가구별 5~6억 원선에서 부과될 계획이었지만 9억 원으로 후퇴했고, 부과 기준도 가구별 합산이 아니라 개인별 합산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또 부과 대상도 ▲주택(9억 원) ▲나대지(6억 원) ▲사업용 토지(40억 원) 등으로 나눠 개별합산하기로 했다. 거기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부부가 공동으로 주택을 소유할 경우 주택 가격이 18억 원이 넘어야 종부세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결국 실제 적용을 받는 대상은 10만 가구 내외에 불과했다.

그 뿐이 아니다. 과세표준도 기준시가의 50%로 조정됐으며, 세금도 전년에 비해 50%를 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허술한 법을 만들었다.

시장은 곧 반응했다. 2005년 상반기 분양을 앞둔 판교 신도시는 '로또'로 변했고, 그 여파로 강남과 판교 신도시 주변 지역의 집값은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경실련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4년 하반기부터 2005년 5월까지 강남과 판교 신도시 5개 지역(분당, 용인, 수원, 동백, 동탄)의 집값은 모두 34조원(강남 23조, 주변 지역 11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교란 작전에 말려든 열린우리당?

그 과정에서 "부동산만은 반드시 잡겠다"고 호언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집권당의 지지율 역시 곤두박질쳤다.


결국 대통령의 결단으로 6월 17일 '판교 신도시 택지공급 중단'이 결정되고, 부동산 정책이 원점에서 재검토됐다. 그래서 당·정·청이 총동원돼 2달 동안 만든 것이 8·31 부동산 대책이다.

8·31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헌법같은 부동산 대책을 만들었다,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어 시장은 8·31 대책에 놀라 잠깐 주춤하는 것 같더니 법안이 3달 넘게 국회에서 논란을 벌이고 있는 사이, 서울 아파트 가격은 8·31 대책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강남 재건축 가격은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여유있게 8·31 부동산 대책의 국회 통과를 점치고 있던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각개전투 앞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재경위 소속 의원들은 당론은 뒤로 감춘 채 소신이라는 이유로 종합부동산세 현행 유지와 광범위한 예외 인정, 양도세 세율 인하를 주장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서민'을 들먹이고, 법리적인 문제를 꺼내기도 했다. 강남 부자들인 지지층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 재경위 소속 의원 8·31 대책이 적용될 경우 10명 전원이 종부세 과세 대상이다. 강남 부자들 내지는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부자당'이라는 비판이 부담스러운지 종부세와 감세안의 '빅딜'을 열린우리당에 제안했다.

일련의 사태를 보고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8·31 대책이 지지부진한 원인은 한나라당의 지연·교란 작전에 50% 이상 말려든 열린우리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답답함을 이렇게 호소했다. "열린우리당은 종부세처럼 한나라당과 정책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도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준비가 전혀 없다. 한나라당을 탓할 것도 못 된다."

강남 대치동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는 "8·31대책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정부에 있는지 의문"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맨날 그 타령인 '국세청 세무조사'나 해서는 민감한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a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8·31 대책 이전으로 강남 집값이 오르자 조급해진 열린우리당과 정부, 청와대가 뒤늦게 바빠지고 있다.

스스로 약속을 뒤집었던 '분양원가 공개' 카드까지 내밀었으니 다급하긴 다급한 모양이다. 또한 감세안과 빅딜은 없다며 당정청이 목소리를 높이고, 법안심사 소위 표결 처리까지 말하고 있다. 반면 한편에서는 시장 신뢰를 떨어뜨리는 엇박자도 나오고 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양원가 공개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2단계 대책을 준비하겠다는 청와대와는 달리 "8·31 대책 이상은 뒷감당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무책임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원한다'며 서민을 앞세우면서 철저히 부동산 부자를 대변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은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국민 80%(8·31부동산 대책 발표 당시 정부가 발표한 정책 지지도)의 지지를 받고 있는 부동산 대책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열린우리당의 무능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 시장은 돈 가진 부자 2%(종부세 실제 대상자)가 '좌지우지'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이들이 움직이면 강남과 분당의 집 값이 들썩거리고, 이 여파가 전국으로 확대된다. 어쩌면 이들 2%는 지금 '그러면 그렇지'라며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기국회는 오는 9일 종료된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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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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