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 모아 담근 김치 맛보세요

12월 하루를 후끈 달군 '우리마을' 사람들

등록 2005.12.12 10:09수정 2005.12.1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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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 김장철만 되면 온 동네가 난리였다. 동네 들머리마다 수천 포기 배추와 무를 쟁여 놓고 장사꾼들은 며칠이고 "배추 사려!"를 외쳐댔다. 요즈막이야 사 먹는 집이 많다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김장은 집집마다 큰 겨울 준비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살림이 조금이라도 괜찮은 집들 가운데 더러는 김장을 많이 담가 어려운 집과 나누고는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예슬이가 담근 김치 맛보세요

a 초등학교 5학년 방예슬 친구. 처음부터 끝까지 허리 한 번 안 펴고 이웃에게 나눌 김치 함께 담갔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방예슬 친구. 처음부터 끝까지 허리 한 번 안 펴고 이웃에게 나눌 김치 함께 담갔답니다. ⓒ 이동환

지난 11월에 틀을 만든 '우리마을'이 있다. 경기 남부 지역 가운데 안양, 과천, 군포, 의왕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모인 '개혁지향 누리꾼들의 열린 커뮤니티'다.

이 우리마을에서 김장을 담가 어려운 이웃과 나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하기로 했다. 물론, 경기도 의왕 시민 18년 차인 나 역시 지난 11월 이 모임에 가입했다. 자신이 가입한 모임 소식을 전하는 글은 자칫 속 보이는 '짓거리'로 비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제 11일 일요일, 취재하러 나갔다. "내세우는 건 좀 그런데요?"라고 말할 일부 회원들이 있을 텐데도 취재 강행(?)을 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 순수함을 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카메라를 들이대던 내 눈에 먼저 띈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방예슬이라는 친구다. 아빠와 함께 "저도 할 수 있어요"라며 고무장갑을 낀 당찬 친구. 그 친구에게 반해서다.


a 새로운 개념의 '두레'를 꿈꾸며 우리마을 이장을 맡았다는 강관항(43)씨.

새로운 개념의 '두레'를 꿈꾸며 우리마을 이장을 맡았다는 강관항(43)씨. ⓒ 이동환

우리마을 이장인 강관항(43)씨는 김치 담가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일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적잖이 저어했다. 그러나 인터뷰에 응하기로 결심한 뒤 마을의 취지와 이 일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보여주었다.

"우리마을은요, 먹은 맘 없이 지역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동참하며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제 막 출발한 모임으로 '김치나누기' 행사를 벌입니다만, 일회성은 절대 아닙니다. 이런 작은 일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갖자는 게 취지입니다. 오늘 날씨가 갑자기 추웠습니다만 열다섯 분이나 나오신 걸 보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잘못된 지역 행정과 권력에 대해 항변하고, 다음 세대가 살 세상은 지금보다 낫기를 바라면서 작은 움직임부터 실천하겠다는 우리마을.

포기 실한 배추 70포기, 4등분으로 280포기를 준비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토요일 내내 준비해 일요일 아침부터 움직인 바람에 오후 네 시에야 끝난 우리마을 사람들의 김치 담그기 작전. 그 온전한 하루를 사진에 담았다(배달 뒤 귀가까지는 저녁 7시).

그들 땀냄새와 김치맛에 한 번 빠져 봅시다!

a 영하의 날씨에 밖에서 배추 절여 씻는 일, 속 만들기. 장난이 아니더이다. 속 때깔, 맛깔스럽게 보이지요?

영하의 날씨에 밖에서 배추 절여 씻는 일, 속 만들기. 장난이 아니더이다. 속 때깔, 맛깔스럽게 보이지요? ⓒ 이동환

a 절인 배추가 도착하기 전, 최원재 회원의 사업장에서 무채 썰기에 여념 없는 회원들.

절인 배추가 도착하기 전, 최원재 회원의 사업장에서 무채 썰기에 여념 없는 회원들. ⓒ 이동환

a 어제 김장은, 절여 씻는 곳 따로, 버무리는 곳 따로 하는 바람에 공수작전에 힘들었답니다. 사진 가운데, 반달곰처럼 귀엽게(?) 통통한 회원이 공수하랴 배달하랴 무지 애쓴 최원재씨랍니다.

어제 김장은, 절여 씻는 곳 따로, 버무리는 곳 따로 하는 바람에 공수작전에 힘들었답니다. 사진 가운데, 반달곰처럼 귀엽게(?) 통통한 회원이 공수하랴 배달하랴 무지 애쓴 최원재씨랍니다. ⓒ 이동환

a 어제 '나누기 김장담그기' 모임의 꽃이죠? 우리마을의 옥 같은 딸, 12살밖에 안 된 방예슬 친구랍니다. 어찌나 손매나 야문지 회원들이 서로 며느리 삼겠다고 난리가 났다니까요.

어제 '나누기 김장담그기' 모임의 꽃이죠? 우리마을의 옥 같은 딸, 12살밖에 안 된 방예슬 친구랍니다. 어찌나 손매나 야문지 회원들이 서로 며느리 삼겠다고 난리가 났다니까요. ⓒ 이동환

a 아무래도 이즈막 댁에서 살림 좀 많이 도와 드린 모양입니다. 홀아비 아니냐고 잔뜩 놀림을 받은 솜씨를 보여준 박용호씨.

아무래도 이즈막 댁에서 살림 좀 많이 도와 드린 모양입니다. 홀아비 아니냐고 잔뜩 놀림을 받은 솜씨를 보여준 박용호씨. ⓒ 이동환

a 우리마을 이장 부부. 잉꼬 아니랄까 봐 한시도 안 떨어집디다. 양념이 얼굴에 좀 튀니까 요기 묻었냐, 조기냐? 닦아 달라, 어째라! 아주 닭살 그 자쳅디다.

우리마을 이장 부부. 잉꼬 아니랄까 봐 한시도 안 떨어집디다. 양념이 얼굴에 좀 튀니까 요기 묻었냐, 조기냐? 닦아 달라, 어째라! 아주 닭살 그 자쳅디다. ⓒ 이동환

a 우리마을 공식 '살인미소'랍니다.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보여준 적 없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웃음 전도사랍니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 갓 버무린 겉절이와 갖은 반찬으로 맛있는 점심을 열다섯 명 회원이 배불리 나눠 먹고 또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마을 공식 '살인미소'랍니다.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보여준 적 없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웃음 전도사랍니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 갓 버무린 겉절이와 갖은 반찬으로 맛있는 점심을 열다섯 명 회원이 배불리 나눠 먹고 또 열심히 일했습니다. ⓒ 이동환

a 완성된 김치. 겹겹이 비닐 봉투에 담아 나누기 위해 차에 실고 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이다. 마을 이장 말씀대로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행사였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척 보시기에도 맛있게 보이지요?

완성된 김치. 겹겹이 비닐 봉투에 담아 나누기 위해 차에 실고 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이다. 마을 이장 말씀대로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행사였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척 보시기에도 맛있게 보이지요? ⓒ 이동환

안양시 '여성의 전화'가 운영하는 쉼터와 군포시 '여성민우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는 가정 다섯 집. 그렇게 다 돌고 나니 벌써 동쪽 하늘에 반편달이 우련하다.

귀가길, 각자 차 안에서 보름을 앞둔 반편달을 보며 모두 노곤하면서도 뿌듯했겠지. 나누는 기쁨이 우리마을이 추구하는 가치 가운데 가장 크게 자리했을 때, 21세기형 새로운 두레의 희망이 움터 방방곡곡 싹 틀 수 있을 터.

덧붙이는 글 |

안양, 과천, 군포, 의왕 지역 개혁누리꾼들의 열린 커뮤니티<우리마을> 바로가기 ☜ 클릭

덧붙이는 글

안양, 과천, 군포, 의왕 지역 개혁누리꾼들의 열린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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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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