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몰락과 함께 꺼져버린 '33조 신기루'

STEPI 하태정 박사 "줄기세포에 대한 무분별한 환상과 기대 버려야"

등록 2005.12.16 15:32수정 2005.12.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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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화면촬영

황우석 교수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서울대학병원 입원실을 나서고 있다.
황우석 교수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서울대학병원 입원실을 나서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배아복제 연구를 통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1종 당뇨병 환자가 전세계적으로 2억명 정도이며 이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면 그 경제적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국내 제일기업인 삼성전자의 몇 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말이다.

그동안 황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복제성공이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당뇨병 등 이른바 난치병으로 불리는 각종 질병으로부터 인류가 벗어난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었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한다. 황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병의 유형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내놓게 되면 말 그대로 '대박'이 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9일 언론들이 일제히 내놓은 '황우석 경제 가치 33조' 등도 이에 기초한다. 물론 '33조'라는 금액 자체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지만, 15일 오후 줄기세포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33조에 달한다는 황우석 가치'는 공중으로 날아가게 됐다.

3개월만에 언론에 의해 포장된 '황우석 가치 33조' 보고서

줄기세포의 시장규모와 전망
줄기세포의 시장규모와 전망STEPI
지난 8월 19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황우석 연구성과의 경제적 가치 및 시사점'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내놓는다. 이 보고서는 내부간행물인 <혁신정책 브리프>에 실렸다.


전체 27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의 의미, 향후 파급효과와 전망, 그리고 시사점 및 향후 과제 등을 담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 보고서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후 3개월이 지난 11월 29일 <연합뉴스>는 "황우석 줄기세포 경제효과 33조원"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는다. 줄기세포 연구가치가 오는 2015년에 최대 33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기사였다. 이후 거의 모든 언론에서 '황우석 경제가치', '황우석 가치', '황우석 효과' 등으로 재포장되면서 '33조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같은 보도는 그대로 MBC < PD수첩 > 때리기로 이어진다. 당시 < PD수첩 >은 황 교수팀 연구에서 난자제공에 문제가 있다며 윤리문제를 보도한 이후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 PD수첩 > 시청자 게시판에 'MBC가 33조원의 가치를 망쳐버렸다'는 비판글을 올렸고, 한 중앙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MBC를 나무라기도 했다.

하태정 박사 "줄기세포의 무분별한 환상과 기대감을 버리는 것이 연구 목적"

하지만 이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하태정 박사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언론에서 마치 '황우석 박사 개인의 경제적 가치가 33조'라는 식으로 다루고 여론이 잘못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라며 "언론보도 이후 연구원쪽에서도 보고서를 더이상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으며 인터뷰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언급 자체를 꺼렸다.

기자가 보고서 작성 배경 등에 대해 짤막한 답변을 재차 요구하자 그는 "지난 8월 관련업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어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시나리오에 따라 분석해본 것"이라며 "말 그대로 경제적 가치를 다룬 것이지, 경제적 가치를 실현해 돈을 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하 박사는 이어 "오히려 이번 보고서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의 무분별한 환상과 기대감보다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기초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강조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보고서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를 다루면서도 국내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생명과학에 대한 제도와 인프라 구축에 대한 현황과 문제점 등을 설명하고 있다. 또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계기로 향후 줄기세포 의료산업 시장규모가 2015년에 6.6조~33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각 기술단계별 한국의 기술가치 비중 추정표
각 기술단계별 한국의 기술가치 비중 추정표STEPI

"황 교수 성과, 과도하게 부풀려서는 안돼"

당시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적어놓은 부분이다.

현재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의 가장 큰 취약점이 황 교수 성과 이외 줄기세포를 획득하고, 배양하고, 분화시킨 후 치료에 적용하는 모든 단계에 필요한 핵심 기술의 특허권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줄기세포 기술이 상용화되더라도 막대한 로열티 지출로 인해 우리에게 돌아오는 부가가치가 적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예상했다.

하 박사는 "황우석 교수의 성과를 과도하게 부풀림으로써 그로 인해 줄기세포 강국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곤란하다"면서 "오히려 냉철한 현실인식 위헤 줄기세포 기술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기술들을 개발하고, 이를 특허화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경제사회적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향후 적극적인 기초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도 필요하며,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학제적 연구팀 구성, 국제협력 통한 기술 흡수 등을 해결해야할 과제로 내놓았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윤리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활성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아복제를 둘러싼 윤리논란은 더 심화될 것이고, 미국처럼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 박사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성숙한 시민사회로 갈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그냥 덮으려하거나 포퓰리즘에 의존해 돌파하려해서는 안된다"면서 "또 소수의 과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의 결정에 의해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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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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