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돌멩이 넣어 던지면 큰일나요

어린 시절 어리석은 눈 싸움 이야기

등록 2005.12.19 09:42수정 2005.12.1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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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충북 충주 땅에 눈이 내렸다. 지난번 내린 눈에 비해 많이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으로 훔칠 정도는 됐다. 이 눈들을 긁어 모아 주물럭주물럭 두 손으로 꼭꼭 조여 짜면 눈싸움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꼭 그만큼은 온 것 같다.


어른들은 별로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도나도 좋아한다. 눈이 내린 다음 날을 걱정하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눈이 쌓인 오늘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눈이 내린 날 동구 밖에 나가 눈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신나는 일이다.

남산 자락 아래에서 눈 싸움하는 아이들 모습. 정말 신이 났어요.
남산 자락 아래에서 눈 싸움하는 아이들 모습. 정말 신이 났어요.권성권
충주 땅 남산 자락 아래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남산만한 크레인이 우뚝 서서 이것 저것 필요한 것들을 들어 올리고 있다. 작업 인부들도 나무 숯불에 손을 비며가며 열심히 일을 한다. 적어도 겨울 초입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꽁꽁 얼어붙어서 그런지 그곳 공사 현장도 조용하다. 일을 쉬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조용한 그곳을 일깨우는 소리가 있다. 물론 공사장 소리이거나 어른들 목소리는 아니다. 그건 아이들이 뛰고 넘어지고 껄껄대며 웃는 소리이다. 쌓인 눈들을 오물주물 작은 공처럼 손으로 눌러 만들어서 그것들을 던지고 서로 피하는 눈싸움 광경이 그것이다.

벌써 큰 눈으로 한 대를 맞았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녀석도 있었다. 그에 뒤질세라 그 녀석은 안간힘을 다해 자기에게 던진 녀석들을 뒤쫓고 있었다. 그래도 힘에 부쳤던지 녀석이 던지는 눈은 다른 녀석들 등에도 못 미쳤다. 녀석들이 잔 꽤가 많았던지 오른쪽, 왼쪽으로 곧잘 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보니, 문득 어릴 적 눈싸움하던 시골 동네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눈이 내렸다. 실로 무릎까지 닿을 정도였다. 그런 눈들 덕택인지 그때는 한두 번만 주물러도 아주 단단한 눈공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으로 눈싸움을 하기에는 정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 집 뒷담을 놓고서 눈싸움이 벌어졌다. 아래 동네에 살고 있는 녀석들은 뒷담 위쪽에서 눈을 던졌고 윗동네에 살고 있는 녀석들은 우리 집 마당에서 눈을 던졌다. 나는 여러 형들과 어울려서 눈을 던지고 또 피했지만, 우리 형 등 뒤에서 눈을 던지는 게 가장 안전했다. 형은 누구보다도 내게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줬기 때문이다.

아뿔싸. 그렇게도 재미있고 좋던 그날에 날벼락이 생겨버렸다. 아랫동네에 사는 녀석들이 그 눈 속에 자그마한 돌멩이를 넣어서 눈을 던지는 바람에 우리 형도 그 녀석들에게 똑같이 돌멩이를 넣어서 던졌다. 지나친 승부욕이 작용한 셈이었다. 그랬는데 그만 그 윗길을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이 그 돌멩이에 눈이 맞아 버렸다.


그날 그 어르신은 벌겋게 달아 오른 눈을 비비며 집으로 갔고, 그 때문에 즐겁고 신났던 눈싸움은 그만 끝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형이 한 일은 곧장 동네 구석구석에 퍼져나갔고, 그 일을 알게 된 엄마와 아빠는 형을 데리고 그 어르신네 집으로 가서 거듭거듭 머리를 조아리게 됐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한쪽 눈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어르신은 눈도 좋아졌고 눈 둘레도 깨끗해졌다. 그 며칠 동안이었지만, 나와 형은 두말할 것도 없고 울 엄마와 아빠도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 냉가슴을 앓는 꼭 그런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난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잠잠했던 우리 동네에는 다시금 아이들 목소리가 돌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던 아이들 사이에 다시금 눈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물론 나도 그리고 우리형도 그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열심히 던지고 내빼며 쫓고 쫓겨다녔다. 그때까지 좀이 들어 온 몸이 들쑤시는 것 같았는데 그날 이후로 무언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시원스런 눈바람이 해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아무리 작은 돌멩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넣어 던지는 눈싸움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게 다가온다.

모름지기 눈싸움은 눈을 뭉쳐서 싸우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거기에 다른 것을 집어넣어 싸우는 것은 자칫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비단 눈싸움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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