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32회

등록 2005.12.21 08:18수정 2005.12.2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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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모용수에게 맹렬한 분노를 느끼게 한 것은 담천의의 말이 아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하핫핫..... 천하의 모용수가 정말로 임자를 만났군. 그것도 처음으로 음흉한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에 말이야.... 헌데 나까지도 술을 토해내느라 시간을 지체했는데 천하의 모용수가 왜 그리 간단한 것을 생각 못했지?”

빈정거리는 말이었다. 그 사내가 마차의 문 쪽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모용수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울화가 치미는 판에 사내의 빈정거림이 모용수를 아예 돌 지경으로 만들었다.


“배신자 주제에 뻔뻔스럽기도 하군.”

아마 모용수가 무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담천의를 제쳐두고 그 사내를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모용수는 힐끗 담천의를 바라보더니 부서져 이미 열려있는 마차 문으로 내렸다.

“배신자....? 너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구나. 분명히 하자. 배신자가 누구냐? 너냐? 아니면 나냐?”

모용수가 내리자 일엽 역시 힐끗 담천의를 보고는 마차에서 따라 내렸다. 담천의를 본 것은 혹시 내리는 중에 손을 쓸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는데 담천의 역시 빙그레 웃으며 일엽이 내리자 곧 이어 마차에서 내렸다. 마부는 예상대로 이미 죽어 있었다. 아마 마차에 몸을 숨기고 있는 수하들 역시 죽어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담천의의 조력자란 인물이 기관을 마음대로 작동시킬 정도면 설사 죽지 않았더라도 쓸모없이 되었을 것이다. 수하들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당연히 당신이지.”


모용수는 냉랭하게 말을 밷았다. 그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어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의 앞에 있는 사내는 열 번도 더 죽었을 터였다. 사내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그렇군. 네가 말하는 것은 본교가 아니었군. 내가 배신자라면 네 알량한 백부(伯父)가 주인으로 있는 바로 그....”


“닥치시오.”
“닥쳐라!”

사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모용수와 일엽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일갈이었는데 사내의 입을 막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일엽이 한 발작 앞으로 나섰다. 전신에서 살기 가득한 기류가 뿜어 나왔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내를 베겠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여전히 태연자작 했다. 그리고는 한쪽 편을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일엽.... 자네의 상대는 저 쪽에 있는 것 같던데.... 추학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순간 일엽의 신형은 곧 바로 사내를 노리며 쏘아갔고, 어느새 뽑아들었는지 일엽의 검이 어둠 속에서 휘황한 광채를 뿜었다. 일엽은 이 순간이 아니면 그를 베지 못할 것이란 생각으로 육맥신검(六脈神劍)의 초식 중 가장 빠르고 치명적이라는 분광추영(分光趨影)을 전력을 다하여 펼쳤던 것이다.

일엽이 검은 바늘과도 같은 미세한 빛줄기를 사방으로 비산시키더니 곧바로 사내의 전신을 향해 쏘아갔다. 사내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엽이 독랄하고 치명적인 공격을 할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는 듯 했다.

“헛....!”

일엽의 검은 어느 특정부위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전신을 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목을 노리는 듯 하다가는 곧바로 하체를 노리는 바람에 사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헛바람을 밷으며 급히 신형을 뒤로 물렸다.

스슷스슷---

얼마나 급했는지 발바닥이 닳아 헤지도록 그는 발을 땅바닥에 댄 채 뒤로 급히 물러서고 있었다. 바닥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발바닥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엽의 검은 너무나 집요해서 그의 공격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검을 뽑을 사이도 없었다. 그는 왼손에 들고 있는 검집으로 치명적인 사혈을 보호하면서 급히 몸을 뒤로 제끼며 수평으로 뉘였다. 상체를 보호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지만 하체를 그대로 내 준 꼴이었다. 일엽의 검이 독아(毒牙)를 드러내 듯 사내의 정강이를 베어갔다.

하지만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몸을 뒤로 뉘인 불안한 상태에서도 사내는 한 발을 떼며 어렵사리 일엽의 공격을 피해내는 듯 했다. 그 순간 일엽의 검이 변화를 일으키며 사내의 왼쪽 허벅지를 베면서 사내의 옆구리를 찔러갔다.

“음....!”

나직한 신음이 터졌다. 아마 허벅지가 베였는지 피가 튀었다. 허나 그 순간 사내의 몸이 오른쪽으로 맹렬하게 회전하며 이장이나 쭉 미끄러지더니 일엽의 공격을 가까스로 벗어나고 있었다. 허공을 가른 일엽의 검이 다시 사내를 따라 붙으려 하는 순간 옆에서 나직하지만 일엽의 동작을 멈추게 하는 음성이 들렸다.

“네 상대는 나야...!”

목소리와 함께 일엽의 옆구리 쪽에 경력이 밀려들었다. 사내를 공격하려던 일엽이 급히 몸을 뒤집어 세 걸음이나 물러나면서 검을 휘둘러 밀려오는 경력을 해소시켰다. 나타난 인물은 예상대로 추학이었다. 일엽의 얼굴에 극도로 불쾌한 빛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입가에는 날카롭다고 할 정도로 비릿한 조소가 머금어졌다.

“끝까지 말썽이로군. 하지만 추형 같은 사람은 세 사람이 한꺼번에 덤빈다 해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하오.”

아예 추학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연속해서 사내를 계속 공격했다면 최소한 사내의 팔 하나 정도는 잘라낼 수 있었을 것이다. 추학이 나타남으로 해서 호기(好機)를 놓친 일엽은 아주 못마땅했다.

“크큿....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는 것이지. 어차피 나는 이미 죽었어. 다행히 너와 저승길을 같이 갔으면 하는 것이 내 마지막 작은 소망이다.”

“정신 나간 사람이군. 겨우 그 알량한 청성의 풍평장(風萍掌)으로 내 옷깃 하나 건들 수 있을 것 같소?”

풍평장(風萍掌)은 구파일방 중 하나인 청성(靑城)의 독문무공. 일엽의 말대로 그리 비하할 무공은 절대 아니다. 아무런 규칙 없이 물이 흐르는 데로 따라 움직이는 듯하지만 일단 맞는 순간 기혈을 뒤집어 정신을 잃게 하는 묘용이 있는 무서운 무공이었다. 추학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차피 떠난 사문이지만 사문을 욕하는 것은 참기 어려웠다. 그가 막 뭐라고 하며 움직이려 할 때 옆에서 사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단하군. 대단해. 사문을 배신하고 또한 몸담고 있던 조직까지 또 한 번 배신한 일엽이란 괴물이 무공에 미쳤다는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군. 하지만 네 처지를 생각해 봐. 더구나 네가 배신한 그 조직의 주인이 이곳에 있단 말이야. 너를 그냥 두겠어?”

사내의 허벅지는 예리하게 베어져 옷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상처는 깊지 않았던지 핏물은 그리 많이 배어 나오지 않았다. 사내의 말은 담천의를 일깨워주고 자극하는 말이었다. 사내는 힐끗 담천의를 바라보고는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 역시 너를 살려두고 싶은 마음이 없어. 입만 나불거리는 모용수 외에는 너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먹이를 앞에 두고 희롱하는 모습이었다. 일엽의 얼굴이 굳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태는 심각해졌다. 추학 정도는 몰라도 저 사내는 절대 자신의 하수가 아니다. 그래서 기습했던 것인데 그러한 치명적인 공격을 벗어난 저 사내가 손을 쓴다면 자신은 다시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가까스로 저 사내를 이긴다 해도 추학은? 더구나 초혼령주인 담천의는? 그는 가슴이 답답해왔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극복해 내겠다는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사람 일이란 이미 정해 놓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있소. 사형!”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한 마리의 야조처럼 장내에 날아 내리는 인물이 있었다. 급히 달려온 것 같았는데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얇은 입술을 가진 인물. 바로 전월헌이었다. 그를 본 모용수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오셨군.”

전월헌의 도착한 뒤 네 명의 흑의사내가 장내에 도착한 것은 채 일각이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제 79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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