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를 통해 본 조선 교린 정책의 허와 실

[서평]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를 읽고

등록 2005.12.22 16:45수정 2005.12.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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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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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고즈윈
통신사(通信使)는 조선 세종 때부터 일본에 파견되던 사절단이었으나, 임진년 왜란으로 인해 '믿음으로 통하다'라는 통신이라는 말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여 당분간 탐적사(探賊使)니 쇄환사니 회답사니 하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636년부터 다시 '통신사'라는 명칭이 다시 사용된다.


정사, 부사, 종사관의 삼사를 포함하여 500여명에 육박하는 통신사 사절은 10개월에 걸쳐 부산을 출발하여, 당시 막부가 있던 에도(동경)까지 왕복하였으며, 이러한 통신사의 노정에서 남겨진 기록들은 현재 <해행총재(海行摠載)>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조선조의 통신사 파견은 교린(交隣)정책의 일환이었다. 즉 소중화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조선조에게 이웃 여진과 더불어 일본은 덕(德)으로 귀화시켜야 할 오랑캐였던 것이다. 통신사의 일행들과 조선조가 일본에 대해 지녔던 이런 문화적 우월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통신사를 마치 '문화 사절단'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주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물론 통신사가 가지는 문화교류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의례에 대하여 경직되어 있던 통신사 일행들이긴 하였지만 (잘못 처신했다간 중형에 처해졌으므로) 조선 문학의 우수성을 선보이고, 일본 기득권층과의 우호관계를 이루어, 수백년간의 평화로운 양국관계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통신사의 기록을 보면, 일본이 재화가 넘쳐 부유하고, 출판문화가 왕성하고, 군사력이 강대함을 보면서도, 중국 성현의 가르침을 모르고, 제대로 된 글을 쓸 줄 모르니,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언급이 자주 나온다. 이런 잣대는 오직 조선조의 입장에서만 통용되는 이중적인 것이었다. 즉, 저자의 말을 빌리면, "조선이 소중화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며 일본에게 느끼는 군사적인 열등감을 문화적인 우월감으로 포장" 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외교사절단으로서의 통신사

이 책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는 임진년 왜란 이후 12차례에 걸친 통신사의 기록을 좇아 당시 조선의 내·외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문화사절단'이 아닌 '외교사절단'으로서 통신사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즉, 통신사가 파견된 목적과 그로 인해 발생한 허과 실을 파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12번의 통신사 일행의 의의를 간략히 살펴보자. 먼저 임진년 왜란 직후에는 일본의 재침을 우려한 조정의 우려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강산을 짓밟은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를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새로이 성장하는 후금에 대항하기 위해 남쪽을 안정시킬 필요에서도 기인하였는데, 한마디로 "마음에 한을 품고 상대방을 저주하면서, 어쩔 수 없이 우호를 과장하는 외교적 이벤트"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명(明)이 쇠잔해지고 청(淸)이 세워질 즈음에는 일본과의 연계를 은근히 청에 대한 압박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명이 멸망하고 북벌이 불가능하게 된 이후에는 중국을 이어받은 적통 중화의 국가가 되어 오직 명분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본다. 국가의 체면 유지를 위해, 민중의 혈세를 걷어 왜관을 유지하고 왜관에 들어오는 왜인을 대접하는데 사용한다거나, 국고를 헐어 막부에 보낼 예물을 준비하는 등의 애처로운 노력을 볼 때는, 이것이 체면을 지키기 위함인지, 무력의 부족함을 허세로 채우려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물론 당시 일본 막부 측에서도 통신사의 파견은 중요한 행사였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통신사의 방문은 각지에 산재한 영주들과 백성들에게 막부의 위엄을 과시할 수 있는 큰 행사였기 때문에 막부가 통신사 접대에 소비한 예산과 통신사 대접을 위해 각 지방의 영주가 들인 노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벤트는 막부의 권위가 높아지고, 중국과 조선이 더 이상 일본에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들어 그 가치에 의문성이 제기되고 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통신사는 사라진다. 더 이상 통신사가 가지는 외교적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통신사가 오늘날 주는 교훈

일본의 저명한 학자 중 한 명이었던 하쿠세키가 품었던 의문처럼, "조선은 멸망한 명나라의 의례(儀禮)에 왜 그렇게 집착"했던 것이었을까. 빈번한 패전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내놓지 않았던 기득권층의 명분유지를 위함이었을지, 아니면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 높은 선비의 기상 때문이었을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하지만, 통신사의 오고감이 끊기고 얼마 되지 않아, 임진년 왜란 이후 불과 400년도 안되어 일본에게 재침 당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이 오직 오랑캐라고만 깔보며 명분만을 찾아 실리를 버렸던 외교 결과의 당연한 수순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버릴 수 없다.

조선이 보았을 때,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볼 때도 일본은 원수의 나라이다. 하지만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을 내놓으려는 예수의 마음이나, 살을 내어주고 뼈까지 발라주려는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명분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더 우선이지 않을까?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듯이 비록 오랑캐의 문화이나, 필요한 것은 들여오고, 배워야 할 것은 배워왔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도 국력이 되는 이 시기에 우리가 항상 가져왔던 일본에 대한 문화적인 우월감은 버리기는커녕 더 잘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조선조가 범했던 우를 우리가 다시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문화적인 우월감의 실체를 파악하는 안목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은 단순한 배척대상이 될 수도 있는 동시에,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같이 일궈나가야 할 동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사절단'으로서 흔히 인식되던 통신사의 실체를 파악하고, 400년에 해당하는 조선·일본 양국의 외교관계를 되돌아보려고 한 이 책의 시도 또한 매우 적절해 보인다.

해행총재(海行摠載)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일본을 왕래한 여러 통신사나 포로, 표류자들의 기행문을 모은 책으로 조선 숙종때 제술관으로 통신사를 수행했던 신유한의 <해유록(海游錄)>이나 조선 성종 시기 신숙주가 편찬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등을 포함하여 28책의 저자별 저술이 실려 있다.

왜구 금지 요청과 수호(修好) 수립, 일본의 금구책(禁寇策)에 대한 치사(致謝) 및 범구자(犯寇者) 처벌, 왜사(倭使)의 귀환 호송, 항왜(降倭)의 배신에 대한 책유(責諭), 표류인(漂流人)의 호송에 대한 치사, 국왕ㆍ대장군(大將軍)ㆍ도주(島主) 등의 조위경하(弔慰慶賀) 및 예물(禮物) 증여, 상역(商易)ㆍ어업 표류민(漁業漂流民)ㆍ피로인(被擄人)ㆍ세견선(歲遣船) 등의 협의 등 통신사행의 목적과, 정사(正使)ㆍ부사(副使)ㆍ종사관 내지 서장관 등 통신사 일행의 구성, 그리고 그 일행의 예물ㆍ증수(贈受)ㆍ노정(路程)ㆍ종류와 성격, 영접례의 절차 및 그 영향 등이 주내용을 이룬다.

고려 말에서 조선 시대에 걸친 우리나라 대일(對日) 외교와 당시 형편을 살필 수 있어 동양사 연구와 동양 외교사를 연구하는 데에 귀한 자료이다. 현재 민족문화추진회(http://www.minchu.or.kr/)의 고전국역총서 메뉴에서 <해행총재> 전 책에 대한 국역과 원문 텍스트, 그리고 원문 이미지를 읽어볼 수 있다.
(민족문화추진회의 해행총재 안내를 참조로 작성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
정장식 지음. 고즈윈 펴냄(2005)

덧붙이는 글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
정장식 지음. 고즈윈 펴냄(2005)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 - 400여 년 전, 조선과 일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정장식 지음,
고즈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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