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뉴스에 이의 있습니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지금'도 '내일'이 없는 과거완료형 뉴스는 회상일 뿐

등록 2005.12.27 10:19수정 2005.12.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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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감초는 역시 '10대 뉴스'다. 올해도 어김없다.

너무 익숙한 터라 존재의 이유에 대해 달리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의문부호의 사열식을 보게 된다. 왜 10개여야만 할까? 왜 '사건'이어야만 할까? 선정기준은 뭘까?

내친 김에 더 나아가 보자. 뉴스 10개를 관류하는 기준을 찾긴 쉽지 않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건 '크기'다. 파문과 충격파의 크기, 그에 비례하는 기억도의 크기다. 결국 돌출된 현상을 어림수로 재어 '찬거리'를 추려낸다는 얘기다.

이런 식의 접근법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맥락'을 뽑아 없앤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안'은 '사건'으로 개별화 되고 시제는 과거완료형으로 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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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은 되고 콘크리트로 덮인 청계천이 47년만에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사진은 개방 첫날인 7월 1일 오전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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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은 안 되고 천성산과 지율스님을 살리기 위한 촛불집회가 지난 2월 2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앞에서 5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청계천 복원은 되고 천성산·방폐장은 아닌 이유는?

예를 들어보자. 모든 언론이 '10대 뉴스' 가운데 하나로 뽑은 게 '청계천 복원'이다. 언론은 이 '사건'에 '친환경적 개발'의 전범을 보였다는 평가를 달았다. 그럴까?

청계천 복원사업엔 두 가지 검토사항이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정말 '친환경적 개발'의 전범을 제시한 것인가, 그리고 이명박 서울시장의 불도저식 추진방식은 환경과 개발의 갈등을 조정하는 실천매뉴얼인가 문제다. 이 두 가지 물음은 '청계천 복원'이란 사건을 관류하는 본질적 '사안'이다.

이렇게 화두를 던지고 보니 '청계천 복원' 옆자리에 놓일 뉴스가 적지 않다.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과 이어진 천성산 터널공사 환경영향공동조사, 방사성폐기물 부지 선정을 들러싼 갈등과 이어진 주민투표, 환경과 개발의 보완적 관계를 강조한 새만금 간척사업 항소심 판결내용 등이 그것이다.

국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면에서 청계천에 결코 뒤지지 않고, 추진과정의 적절성에 관해서도 청계천 못지않은 얘깃거리를 남긴 사안들인데도 뒤로 밀렸다.

또 있다. 대다수 언론은 '전방 GP 총기난사'를 '10대 뉴스'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후에 발생한 '인분 사건'이나 '고 노충국 씨 사망사건'을 동렬에 놓은 언론은 거의 없다.

세 사안 모두 군 장병의 기본권, 즉 인격권과 의료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는데도 간택된 건 하나다. 사건의 파격성 정도, 사망자 숫자의 차이 외에 다른 질적 차이를 찾을 수 없는 사안인데도 운명은 갈렸다.

앞의 사례가 '횡렬'의 붕괴를 대표한다면, 이어지는 사례는 '종렬'의 단절을 대표한다.

올해의 10대 뉴스 중 하나인 '8.31 부동산대책'은 지난해 10.29 부동산대책이 업그레이드 것이다. 그래서 짚어야 했던 것은 '과정'이다. 8.31 부동산대책을 이끌어낸 집값 폭등이 어떻게 10.29 대책의 바리케이드를 뚫었는지를 '종'으로 짚었어야 한다. 그래야 8.31부동산대책 '이후'가 이어 나온다. 하지만 언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0대 뉴스 맨 앞자리에 놓이는 'X파일'도 마찬가지다. 정·경·언·검 유착 실태를 보듬고 있는 X파일을 그 자체로 조망하는 건 문제가 있다. 최소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수수 및 수사 실태와의 상관성 속에서 들여다봐야 유착 구조와 부실수사의 원인을 짚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역시 개별화했을 뿐이다.

'X파일'은 있지만 2002년 불법대선자금은 없다

'사건'을 '사안'에서 떼어내 개별화하는 접근법으로는 '지금'을 포착할 수 없고 '내일'로 이어갈 수 없다. 이런 접근법으로는 '송구영신'과 동의어인 '계승과 혁신'의 교차지점을 포착할 수 없다.

물론 '개별'을 통해 '일반'을 조망하는 접근법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기에는 언론이 10대 뉴스의 발문으로 뽑아낸 내용은 너무 적고 파편적이다. 기껏해야 400자 안팎의 글에 과거완료형의 사실을 담아낼 뿐인 이런 접근법으로는 한국사회의 '공론'을 범주화하기 어렵다.

단지 '그땐 그랬지'라는, 비전없고 다짐없는 회상만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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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은 들어가고 검찰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구조본부장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민주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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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불법대선자금은 빠지고 불법대선자금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는 지난 2003년 11월 LG홈쇼핑을 압수수색한 뒤 박스 2개 분량의 서류를 압수해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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