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은 왜 굴러온 특종을 차버렸나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언론사의 존재 이유를 흔드는 진실 은폐 의혹

등록 2005.12.29 10:28수정 2005.12.29 12:02
0
원고료로 응원
a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논란에 대한 서울대 자체 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진행되는 서울대 수의대 건물앞에 YTN 중계차가 대기하고 있다. 취재윤리 의혹을 제기하며 MBC < PD수첩 >에 치명타를 가했던 YTN은, 하지만 약 보름만에 거꾸로 진실을 은폐했다는 부메랑을 맞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복기할 게 있다. 40여 일 전으로 돌아가자. 11월 17일, 이 날은 < PD수첩 >이 1차 DNA 검사결과를 황우석 서울대 교수에게 전한 날이다. 장소는 황 교수의 위촉으로 '심판관' 역할을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비슷한 시점에 또 하나의 DNA 검사가 시도됐다. MBC와 CBS의 보도에 따르면 11월 중순 YTN이 고려대 법의학연구실에 DNA 검사를 의뢰했다.

황 교수가 12월 16일 2차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도 이같은 상황과 연결돼 있다. 황 교수는 이날 "11월 18일에 배아줄기세포가 미즈메디병원 것과 바꿔치기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황 교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때쯤 YTN이 의뢰한 DNA 검사결과도 나왔다는 얘기가 된다.

MBC < PD수첩 >의 DNA 검사결과에 대해 불신감을 표한 황 교수였던 만큼 바꿔치기를 확인하는 작업의 계기를 YTN이 부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윤현수 한양대 교수는 바꿔치기가 황 교수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비슷한 시기 두 언론사의 DNA 검사, 취재방향은 정반대

a

지난 4일 YTN의 김선종·박종혁 연구원 인터뷰 보도 화면. 맨 아래 사진이 지난 1일 안규리·윤현수 교수와 함께 미국으로 가면서 1만 달러를 운반한 김진두 기자다. ⓒ YTN 화면캡처

여기서 중점적으로 짚고자 하는 건 다른 문제다. 바로 YTN의 사전인지 여부다. MBC와 CBS의 보도에 대해 YTN은 펄쩍 뛰고 있다. "줄기세포의 진위 문제가 아닌 단순 검사과정의 문제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YTN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의문은 남는다. YTN은 11월 중순을 전후로 해서 최소한 줄기세포의 DNA 검사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바로 이게 문제다.

이 시점은 < PD수첩 >이 황 교수 관련 의혹을 공개(11월 21일)하기 전이다. 진위 의혹은 고사하고 윤리 의혹조차 제기한 적이 없던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YTN은 줄기세포 DNA검사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기자라면 응당 의문을 품을 만한 사실을 접한 것이다.

그 의문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이언스>에 의해 공인됐고, 그래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배아줄기세포의 DNA를 굳이 재검사해야 할 이유가 뭐였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취재에 착수했다면 특종을 얻을 수도 있는 터였다. 하지만 YTN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YTN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그렇다.

또 있다. YTN은 12월 1일, 안규리·윤현수 교수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해 그 내용을 4일 방송했다.

YTN이 인터뷰 내용을 방송할 즈음에 상황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황 교수 관련 의혹이 윤리 문제를 넘어 진위 문제로 확산돼 있던 터였다. < PD수첩 >은 배아줄기세포 DNA 검사결과를 공개하면서 진위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더구나 YTN은 그 어느 언론사보다 먼저 배아줄기세포 DNA 검사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YTN은 심층취재 대상을 김선종 연구원 한 명으로 한정했다. '3각 교차확인'을 강조한 저널리즘 원칙을 운위할 필요도 없이 일반 상식으로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YTN이 시급히 해명해야 할 사항은 바로 이것이다. 이 의문은 YTN이 < PD수첩 >을 향해 던진 취재윤리 문제보다 더 중한 문제다. 진실 은폐 의혹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취재윤리보다 더 중한 진실은폐 의혹

조금만 더 나가 보자. 지금까지는 YTN의 주장에 기초해 복기를 했지만, MBC와 CBS의 보도를 근거로 복기를 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두 방송사의 보도를 종합하면 YTN은 11월 중순 즈음에 배아줄기세포 DNA가 환자 체세포 DN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검사결과를 접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계기는 황 교수가 부여했다. 황 교수는 "제3의 언론기관에 DNA 검사를 의뢰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그 어느 언론사에 의해서도 보도되지 않은 '알짜배기 특종'을 거머쥐고도 YTN은 보도하지 않았다. 진위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DNA 불일치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채 오히려 김선종 연구원의 인터뷰 내용을 일방적으로 내보내 진위 의혹을 제기하는 < PD수첩 >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 과정에서 YTN은 김선종 연구원이 < PD수첩 >에 중대증언을 한 적이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황 교수와 강성근 교수가 줄기세포 2개의 사진을 10개 이상으로 만들라"고 했다는 김 연구원의 말은 '중대증언'으로, 11월 중순에 접한 DNA 불일치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YTN은 "중대증언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김선종 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의혹은 더 증폭된다. 황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YTN은 DNA 검사사실을 알고 있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런데도 왜 황 교수는 YTN과 김 연구원을 연결해 줬을까?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부상한 김 연구원에게 돈을 전달한 행위는 오해를 살 소지가 충분했다. 그런데도 왜 황 교수는 YTN 기자에게 1만 달러 운반을 부탁했을까?

사생결단의 각오로 '억울함' 밝혀야

a

MBC 뉴스데스크는 28일 "YTN이 < PD수첩 >과는 별도로 황 교수팀 배아줄기세포에 대해 DNA 분석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왜 그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는지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YTN에 쏠리는 의혹의 핵심은 '결탁'과 '은폐'다. 황 교수와 '결탁'해 진실을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게 여러 언론에 의해 제기된 의혹이다.

이는 언론사로서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언론사의 존재 이유를 근저에서 부정하는 의혹 제기다. 그렇기에 YTN으로선 사생결단의 각오로 '억울함'을 밝혀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응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왜일까? YTN의 이후 행보가 그래서 궁금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