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서 지낸 일주일이 되레 감사한 날이었다

연탄 보일러가 터지자 일주일째 집 밖에서 지냈는데....

등록 2005.12.28 19:31수정 2006.01.0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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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에 갑자기 집을 비워야 했다. 여태껏 기름보일러를 때고 살았는데, 그것이 그만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며칠 앞서서는 연탄보일러도 함께 연결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 아이들 몸을 씻길 때는 급탕으로 해서 기름보일러를 때고 또 느긋할 때는 연탄보일러를 때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것이 갑작스레 확 터져버렸던 것이다.


그게 터지자 우리 식구들은 이불 꾸러미와 짐 꾸러미 몇 몇을 챙겨 교회 옆 건물 지하실로 옮겼다. 이른바 따뜻한 곳을 찾아, 온 식구들이 피신한 셈이었다. 언제까지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들을 고치든지, 아니면 새로 바꾸든지 해서 그것들을 잘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그곳으로 피하기 위해 짐을 옮기던 그날 참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을 맞아가며 그곳으로 피하던 길목이 나와 아내에게는 씁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마냥 눈을 좋아하며 히죽거리던 딸아이에게는 신나는 일이 됐다. 더욱이 연거푸 넘어지는 길목이었는데도 딸아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훌훌 털며 일어났다.

보일러가 터지자 집밖을 나서서 옆 건물 지하실로 옮겨가던 모습이에요. 그래도 언젠가 다시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습니다.
보일러가 터지자 집밖을 나서서 옆 건물 지하실로 옮겨가던 모습이에요. 그래도 언젠가 다시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습니다.권성권
우리 집과 그곳 지하실 사이는 그리 멀지 않는 까닭에 가끔씩 집을 오가곤 했다. 대부분 집에 드나들었던 것은 연탄보일러가 잘 돌아가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고, 나머지 하루 두 번씩 들렀던 것은 점심과 저녁밥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이른바 세 끼는 못한다 하더라도 두 끼만이라도 해결해야 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뜯고 고치기를 되풀이했다. 어디선가 새는 것 같으나 좀체 그것을 잡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땅 속으로 물이 새들어갔던지 그 물줄기를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일을 하는 아저씨들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그 때문에 괜스레 내가 더 미안하기도 했다.

그 일주일 동안 나와 아내는 점심밥과 저녁밥을 집에서 해 먹곤 했다. 그나마 날씨가 풀릴 때는 집을 오가는 게 괜찮았지만 날씨가 정말로 추울 때에는 집을 오가는 일마저도 좋지 않았다. 방이 완전히 냉방인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나야 남자로서 어디에 앉아도 괜찮다지만 셋째를 가진 아내를 그 냉방에서 밥을 지어 먹게 한다는 게 결코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쯤 나와 아내는 노숙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씩 교회를 드나들며 구걸하던 사람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한 푼 두 푼 돈을 청하는 사람들, 라면 몇 봉지라도 좋다며 부탁하는 사람들, 처와 자식에게 해 먹일 쌀이 없다며 호소하는 사람들, 떨어진 옷이라도 좋으니 입을 거리 몇 가지만이라도 주었으면 하는 사람들….

그 힘든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연탄보일러가 잘 돌아간다. 땅 밑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땅 밖으로 새어 나와 그 물꼬를 완전히 잡았고, 그 때문에 연탄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방이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기름보일러를 때던 예전 모습에 비하면 연탄을 가는 일이 조금은 고생스런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연탄을 때면서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기름이 없어서 냉방에다 전기담요 하나를 둘러쓰고 자는 사람들도 많고, 연탄도 넉넉지 않은 지역에서 사는 탓에 그마저도 못 때면서 자는 집들도 많고, 집 밖에서 노숙하며 사는 사람들도 정말로 많기 때문이다.

비록 연탄을 때는 집이라 할지라도 그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생각해 보면 집 밖에서 지낸 그 일주일간이 되레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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