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5일 오전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원희룡 최고위원에 대해 "자기가 소속된 당의 대표에 대해서 존경심은 바라지도 않지만 막말은 삼가야 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낸 뒤,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화났다. 자신을 향해 "이념병"을 거론한 원희룡 의원 때문이다. 박 대표는 어제(5일) 원 의원을 향해 "열린우리당 대변인이냐"는 식으로 따져 물은 뒤 최고위원회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대단히 섭섭했던 모양이다. 국가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선 자신에게 "이념병" 운운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박 대표 나름대로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해 대놓고 역정을 낸 것 같다.
그래도 박 대표는 공인이다. 제1야당 대표다. 감정 분출은 자제해야 하고, 언행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장을 "시체"로 비유한 이규택 의원, "국회의장의 모가지를 잡아 뽑아야 한다"고 말한 송영선 의원에 대해 박 대표가 어제처럼 역정을 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박 대표는 원 의원을 향해 "인신공격성 인터뷰가 도를 넘어섰다"고 했는데 보호돼야 할 인신에도 구별이 있던가?
원 의원이 자신을 향해 "편협한 국가정체성 이념에 갇혔다"고 비판한 게 일방적이고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여정부를 "전교조의 하수인"으로, 전교조를 친북 좌파 용공 집단으로 딱지 붙인 자신의 일방적 재단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보호돼야 할 인신에 '왕후장상'이 따로 있나
그렇다고 치자. 남과 나는 다르게 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그냥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짚어야 할 건 따로 있다.
박 대표는 지난달 15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한나라당 의원 한 분이 인터뷰에서 당의 장외집회에 반대하는 의원이 과반이 넘는다고 했는데 장외집회는 의총에서 결정한 것이다. 반대하는 분이 있다면 의사표시를 해달라." 장외집회를 비판한 고진화 의원을 향한 말이었다.
두 주 뒤인 지난달 28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장외집회 지속 여부를 놓고 의원 간에 격론이 오갔지만 박 대표가 연단에 나가 눈물 한 방울 흘리자 상황은 일거에 정리됐다. 자신의 이념적 편협성과 장외집회의 무모함을 지적한 의원들을 향해 북한의 총탄에 사망한 어머니와 자신의 대북 유화노선을 대비시킨 뒤 흘린 눈물이었다.
어제 최고위원회의 장면까지 포함해 모두 세 막으로 구성된 풍경은 한나라당의 상태가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대표가 한 마디 하면 추종하는 의원들이 맞장구를 치고, 그러면 판은 정리된다. 어제 최고위원 회의에선 이규택 의원이 원 의원을 향해 "당을 떠나라"고 했고, 지난달 15일 의총에선 심재철 의원이 "퇴출합시다"라고 동의를 구했으며, 지난달 28일 의총에선 박수가 터져나왔다.
원 의원은 오늘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딱지 붙이고 왕따 시킨다." 그래서일까? 익명을 전제로 장외집회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론에 말하는 의원은 적지 않은데 공개적으로 이 의견을 밝히는 의원은 찾기 힘들다.
소속 의원들을 도열시키고 생각이 다른 의원을 왕따 시키는 박 대표의 모습은 누군가와 닮아있다. '제왕'으로 통했던 이회창 총재 말이다.
지난달 15일과 28일, 올해 1월 5일의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