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조항 손봐야 '통일 개헌'이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영토는 법 아닌 역사성과 힘으로 지켜내야

등록 2006.01.04 11:43수정 2006.01.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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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는 지난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개헌 논의에선 통일을 대비하는 부분까지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며 영토조항 수정을 전제로 한 통일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3일 저녁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 환영만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이해찬 국무총리.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박항구

개각파동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이 시선을 떼지 않는 게 있다. 개헌이다. 권력구조 개편문제가 아니다. '통일 개헌'이다. 연초에 이해찬 총리와 고건 전 총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제기한 개헌 주장 중에서 보수언론은 유독 이해찬 총리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이해찬 총리는 지난 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개헌 논의에선 통일을 대비하는 부분까지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이 눈에 힘을 준 건 바로 이 대목이다. 보수언론은 지난해 10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개헌이 논의되면 영토 조항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 사실을 한 데 묶어 경고음을 보냈다. 물론 그 내용은 '불가'다.

<세계일보>는 오늘 '통일 개헌' 논의가 "정체성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고, <중앙일보>는 어제 "국론의 극심한 분열만 초래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신문은 "불가"만 외쳤을 뿐 "불가" 이유는 대지 않았다. 이들 신문과 달리 나름의 근거를 댄 곳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오늘자 사설에서 이렇게 비난했다. '이 정권 사람들이 통일을 염두에 둔 개헌 운운하는 것은, 습관처럼 통일이란 말을 달고 다니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통일의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주장에 세 개의 근거를 댔다. ▲서독이 우리의 헌법격인 '기본법' 23조에서 "기본법은 우선 서독 지역에 유효하고 독일의 다른 부분(동독)에서는 편입 이후에 발효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동독이 '남의 땅'이 아님을 명시했고 ▲헌법재판소가 1996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남북한 사이에 국가 승인 효력을 발생시킨 건 아니다"고 결정한 바 있으며 ▲'휴전선 이남만 남한 땅'이라고 바꾸면 북한 정권이 무너질 경우에도 개입이나 통일 주장의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조선>의 통일 개헌 반대 논리는 흡수통일론에 바탕

나름대로는 탄탄하고 치밀하다. '통일 개헌'의 가장 큰 근거라 할 수 있는 '바뀐 시대상'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겉모습은 그렇다.

그럼 실제는? 아니다.

<조선일보>의 '통일 개헌' 반대 논리는 흡수통일론에 터 잡고 있다. <조선일보> 스스로 첫째 근거로 제시한 서독의 '기본법'이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며, <조선일보>가 예감하는 북한의 정변사태도 흡수통일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상 상황이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가 제시한 근거는 '희망'과 '가상'이지 실제가 아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고 선언했고 "남과 북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자주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공동선언은 지난해 말 여야의 합의로 재차 확인됐다. 여야는 '남북관계발전법'을 통해 남과 북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헌재의 1996년 결정도 이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이게 실제다. 흡수통일이 아니라 남북상호공존에 기반한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이 여야가 공히 채택한 통일노선이다. 따라서 '통일 개헌' 논의의 출발점도 이것이 될 수밖에 없다.

영토 조항을 달리 볼 수도 있다. 헌법에 주권이 미치는 범위, 즉 영토 관련 조항을 넣는 건 필수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상당수 국가가 헌법에서 영토조항을 빼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남북 상호공존을 명시하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통일 개헌) 발상의 이면에 설익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전제된 이른바 '연방제 개헌'과 맥이 닿아 있는 것 아니냐"고 핏대를 세웠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한다면 나머지는 머리도 열고 가슴도 열어 논의하면 될 일이다.

물론 변수가 있다. <조선일보>가 예감한 북한의 정변사태가 그것이 될 것이다. 이런 사태가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과정을 저해할 수도 있다. 비록 가상이지만 통일 시나리오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다. 그러니까 영토조항을 손대지 말라는 건 비약이다. 영토조항을 손대면 북한 지역을 다른 나라에 뺏길 수 있다는 주장은 더 큰 비약이다.

영토조약 손대지 말라는 건 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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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헌법의 영토조항에 관해 언급한 1월 4일자 <조선> 사설.

영토는 법조문 하나로 담보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더 큰 담보력은 역사성과 힘이다. 북방 4개 도서를 놓고 일본과 러시아가 수십 년째 으르렁대는 이유는 역사성과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어도를 놓고 일본과 중국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 하는 이유도 같다.

역사성은 검증이 필요 없는 항목이다. 문제는 힘이다. 북한 지역에 미칠 수 있는 현실적 힘을 강화하는 게 과제다. 해법은 하나밖에 없다. 남북 상호공존의 토대를 확장하고 그 위에서 교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중국 자본이 대거 북한에 유입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교류의 절박성은 더 커진다.

그러기 위해선 현행 헌법의 영토조항을 손봐야 한다. 영토조항을 젖줄 삼아 상호공존을 깨려는 시도가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북한의 정변사태를 우려하면서 "그러니까 영토 조항을 손대지 말라"고 했지만 실제는 정반대다. 그러니까 손대야 한다.

<세계일보>는 '통일 개헌' 논의가 "정체성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남북관계발전법을 만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사학법조차 국가정체성 문제와 연결시키는 한나라당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정체성 논란을 피해가긴 어렵다.

더 있다. 정체성 논란을 우려하면서도 정체성 논란의 논리를 제공하는 언론이 있는 한 정체성 논란을 피해갈 순 없다.

피해갈 수 없는 거라면 효율을 생각해야 한다. 최대한 집약해서 논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국론을 모을 방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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