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유시민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황우석 파문'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질

등록 2006.01.03 10:13수정 2006.01.0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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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이 2일 오후 청와대에서 4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에서는 이날 개각에 대해 반발하는 기류가 완연하다. ⓒ 연합뉴스 백승렬


당·청 갈등이 예사롭지가 않다. 싸움이야 다반사니 그렇다 치자. 중요한 건 싸움의 내용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당·청 갈등의 내용은 인사권이다. 그래서 예사롭지가 않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오로지 대통령만이 향유하는 이 절대 권한에 열린우리당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정세균 의장 '차출'에 반발하고 있고, 유시민 의원의 '등용'을 반대하고 있다. 중진과 비상집행위원들이 어제 심야회동을 가졌고, 오늘 오전엔 재선의원들이 모여 입장을 취합한다고 한다. 반발 행위가 직접적이고 반대 내용이 직설적이다. 청와대에선 대통령의 권능을 부정하는 정면 도발로 볼 수도 있는 모양새다.

10.26 재선거 패배로 당·청 갈등이 빚어졌을 때도 이 정도로 직접적이진 않았다. 열린우리당 안에서 청와대 비서진 교체 요구가 나오긴 했지만 그건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차원이었다. 인사권 침범이라기보다는 건의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강력한 당의 반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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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개각에서 산자부 장관으로 내정된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그의 입각에 대해서도 당 내에서는 내심 불만 섞인 모습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원칙과 기준이 가장 큰 원인이다. 범위를 좀 더 좁혀서 말하면 일관성의 문제다.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유시민 의원 '등용' 유보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당내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했으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예의를 갖춰 당 지도부와 협의하는 절차를 거친 뒤 내정할 것이다."

김완기 수석의 입에서 '예의'가 나오니까 의아하다. 이 점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10.26 재선거 패배 이후 비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당내에 비상집행위원회가 가동되고 있고, 정세균 의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런 비상상황에서 당 의장을 장관으로 차출했다. 이런 인사가 당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예의'에 해당할까?

평의원의 '등용'에 대해서도 당 지도부와 협의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한 청와대다. 그럼 당 의장을 '차출'하는데 대해서도 예의를 갖춰 협의하는 절차를 거쳤을까? 그렇다면 왜 당 중진과 비상집행위원들이 심야에 모여 대책을 숙의했을까?

일관성의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명 과학기술부총리를 경질한 데에는 황우석 파동이 작용했다. 언론이 나서서 과학계를 검증하는 건 부당하다는 사고를 바탕에 깔고, 수백억의 연구비를 지원하면서도 제대로 관리·검증하지 않고, 논문 조작 의혹이 짙어지자 서울대 정운찬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위원회의 발표 축소를 시도한 게 경질 이유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래서 오명 과학기술부총리의 경질에 토를 다는 언론은 거의 없다.

유시민의 'PD수첩 비난 발언' 어떻게 봐야하나

황우석 파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유시민 의원이다. 유시민 의원은 지난 7일, 한 강연에 나서 < PD수첩 >을 맹비난한 바 있다. 당시의 발언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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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초부터 개각과 관련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유시민 의원. 노무현 대통령의 뜻은 확고해 보이지만 열린우리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PD수첩 프로듀서가 황우석 교수를 검증하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내가 가서 검증하는 것과 똑같다. 기자나 나나 생명공학에 대해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는 보건복지위원을 2년이나 했기 때문에 좀 안다. PD수첩이 부당한 방식으로 과학자를 조지니까 방송국이 흔들흔들 하고, 광고 끊어지고 난리 아니냐."

새삼스레 유시민 의원의 발언을 상기하는 이유는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의 사고와 태도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가 < PD수첩 >의 "부당한 방식", 즉 취재윤리 위반행위를 지적한 건 타당하다. 하지만 그가 한발 더 나아가 "터무니없는 검증"을 운위한 건 문제다.

유시민 의원이 이 발언을 한 시점은 MBC의 취재윤리 위반 사과 성명에 이어 '브릭'이 연구사진 조작의혹을 제기한 직후였다. 즉 취재윤리 위반에 대한 비난여론과 함께 검증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유시민 의원은 검증의 부당성을 강한 톤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너희들이 뭘 아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유시민 의원이 문제의 발언을 한 시점은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취득과정의 문제가 공개된 뒤였다. "좀 아는" 유시민 의원이라면 이 점부터 지적했어야 옳았다.

이런 식의 사고와 태도를 갖고 있는 유시민 의원이 장관이 된다면 생명윤리법과 관련된 국가행정 전반을 책임져야 할 보건복지부의 업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장관 인선 기준의 하나라는 전문성은 이것과는 전혀 별개의 사항인가?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비슷한 사고와 태도를 보인 두 인물에 대해 경질과 등용의 상반된 카드를 꺼냈다. 이게 일관성을 제기하는 두번째 이유다.

심화되거나 또는 봉합되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이해 못할 인사원칙으로 당청갈등은 다시 불거졌다. 남은 문제는 하나다. 갈등은 심화될 것인가, 아니면 봉합될 것인가.

청와대가 할 일은 마땅히 없다. 청와대야 이미 칼을 빼든 마당이니 다시 집어넣기가 쉽지 않다. 과거 김혁규 의원을 총리로 앉히려다 포기한 적이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성격이 다르다. 그때는 야당, 특히 한나라당이 반대의 선봉에 섰었다. 그래서 퇴각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식구가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뒤로 물러설 명분이 별로 없다. 퇴각을 결정하는 그 순간 열린우리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난다.

열쇠는 열린우리당 내 지도그룹, 특히 김근태·정동영 두 전직 장관이 쥐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정치행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당 위상 제고 카드를 꺼내든다면 당·청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다. 2.18 전당대회를 앞둔 상태에서 청와대와의 대척점에 서는 건 그리 유용한 선택이 아니다. 게다가 유시민 의원은 당내에 일정한 세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덮을 수도 있다.

심화든 봉합이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해소'는 없다는 것이다. 해소하기엔 쌓인 게 너무 많고, 청와대의 명을 무조건 받들기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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