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중산층, 진보진영은 어찌 할꼬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그들의 이탈을 왜 지켜만 봤나

등록 2006.01.02 11:16수정 2006.01.0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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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출근길 새해의 첫 근무일인 2일 서울 청계천 광교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이 힘찬 한해를 시작하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언론의 새해 키워드는 경제다. 좀 더 범위를 좁히면 양극화 문제다.

진보·개혁성향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겨레> 설문조사 결과 한국 사회의 최대 현안은 양극화 해소였다. 응답률이 무려 62%다. <한국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새해 들어서도 생활형편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59%로 나왔다.

뭘 바꿔야 할지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나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중앙일보>는 "중산층을 되살리자"를 신년기획으로 들고 나왔다.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94년에 70.7%였으나 외환위기 직후(99년)에 45.1%로 급락했다가 약간 복구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56%(2005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언론의 새해 키워드는 '양극화 문제'

세 신문의 진단을 종합하고 나니 시선은 자연스레 또다른 여론조사 결과로 쏠린다. 각 언론사가 연말연초에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이렇다.

<한국일보> - 중도 37.5%, 보수 28.6%, 진보 33.2%
<서울신문> - 중도 45.7%, 보수 26.0%, 진보 20.0%
MBC - 중도 43.6%, 보수 27.0%, 진보 28.1%

이 조사 외에 국회 운영위원회와 <중앙일보>가 지난해 10월경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도 있다.

국회운영위 - 중도 39.9%, 보수 36.7%, 진보 23.4%
<중앙일보> - 중도 33.6%, 보수 35.9%, 진보 30.5%

조사기관별로 상당한 수치 차이를 보이는데다가 조사기법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론조사결과들을 단순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경향성만은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중도화'다.

<중앙일보>의 조사결과를 보면 2년 전(2003년) 같은 조사에 비해 '중도' 응답률이 6%포인트 정도 늘었다. 또 <서울신문>의 조사로는 1년새 '중도' 응답률이 17%포인트 늘었다.

이 지점에서 '관심'은 '의문'으로 바뀐다. 중산층의 몰락과 중도성향의 강화 사이에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서 엿볼 수 있다. 국회 운영위의 여론조사 결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는 물음에 무려 84.6%가 경제발전을 꼽았다.

더 있다. <문화일보>가 지난달 1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차기 정부에 바라는 이념성향이 '보수안정' 49.4%, '진보개혁' 46.0%로 엇비슷하게 나왔다. 새해 들어 KBS와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하다.

이를 두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이념적인 대립보다는 실용적 노선을 선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도화'와 '실용노선', 썩 그럴듯한 조합이다. 논리적으로도 맞는 귀결인 것 같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남아있다.

<중앙일보>는 '중산층을 되살리자'는 기획에서 이런 분석을 내놨다. "좌절한 중산층에서 반부자·반기업 정서가 싹트고, 이에 편승하려는 정치세력이 '가진 자'를 공격하는 인기 영합 공약을 쏟아내 계층간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

여과해서 들어야 할 소지가 다분한 분석이지만 시사점 하나를 분명하게 던지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것이다. 왜 진보세력은 몰락하는 중산층을 껴안지 못했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나니까 상황을 왜곡하는 것 같다. 바꾸자. 왜 진보세력은 몰락하는 중산층의 '우향우'를 맥없이 지켜만 봤는가?

중산층이 몰락했는데, 사회가 우향우한 이유는?

비록 이중성 위에 있다고 해도 중산층은 진보성향의 최대 결집처다. 그런 중산층이 몰락했다면 진보성향은 보다 강도 높은 진보개혁 바람으로 이어지는 게 순리일텐데 어째서 현실은 우향우 현상으로 나타난 것인가?

<한겨레>는 "성찰 없는 운동",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동"(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을 그 이유로 꼽았다.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비상체제가 이를 웅변한다고도 했다. <한겨레>는 더 나아가 진보진영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성장의 대안을 모색하되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들었다(김호기 연세대 교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석이요 전망이지만 문제가 있다. '공자님 말씀과'에 해당한다는 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누가 어떻게 추진력을 담보할 것인가 하는 점이 남아있다. 김호기 교수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들을 발굴하고 이를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훈수 뒀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를 통해 추진할 건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건 현실적인 문제다. 진보진영이 독자적으로 집권하기 힘든 사정을 고려해도 그렇고, 차기 정부의 이념성향에 대한 국민 바람이 반반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그렇다. 이런 현실에서 어느 정치세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개혁성과를 낼 수 있는지, 그 밑그림을 그리는 건 필수다.

그 중에서도 임기 2년을 남긴 참여정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맨 앞자리에 놓이는 과제다. 지나온 3년을 평가하면서 '중도개혁 정부'의 한계를 맹성토하는 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맹성토 후에 결별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 남은 2년 동안 참여정부 하의 '정책대안의 발굴 및 추진'을 포기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차기' 문제도 그렇다. <한겨레> 조사에 응한 진보·개혁 성향 학자 100명 중 34.5%가 차기대선후보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가장 선호한다고 꼽았다. 반면 가장 선호하는 정당으로는 65.6%가 민주노동당을 꼽았다.

'선호'와 '전략'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선호 후보'와 '선호 정당'의 차이가 너무 크다. <한겨레>는 이를 두고 "현재의 정당 구조에 대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적지 않은 불만"을 끄집어냈지만 그 불만의 끝이 뭔지는 불명료하다.

이 두가지 문제는 진보진영의 미래를 가늠하는 주요 척도다.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못잖게 중요한 실천력을 담보하는 문제다.

시간은 많지 않다. 몰락하는 중산층이 중도로 돌아섰다는 사실은 상황이 유동적이고 가변적임을 뜻한다. '남은 2년'과 '차기'에 대한 전망 여하에 따라 '중도'는 '보수' 또는 '진보'로 재분화하게 될 것이다. 보수진영이 이걸 모를 리 없다. <중앙일보>의 '중산층을 되살리자'는 신년 기획의 함의도 같은 맥락에 있다.

뭘 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보수나 진보 모두 지향점은 같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것이 올해 진보진영에 던져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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