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강원도 땅인데 왜 이리 멀까?

<금강산 여행기 1>

등록 2006.01.11 10:11수정 2006.01.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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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아들 손자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갠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간다


대학 시절 많이 불렀던 노래 가사 중의 일부입니다. 평생의 소원이 금강산 구경이라는 가사처럼 통일을 갈망하던 때였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던 때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만큼 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높지 못했습니다. 냉혹한 분단의 장벽에 갇힌 채 신음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절망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새해, 금강산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통일부에서 주관하는 교사 금강산 체험 연수단의 일원으로 1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가게 된 것입니다. 강원 지역 국어과 사회과 교사 500여 명이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통일이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 분단의 장벽을 넘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는 마음에 며칠 전부터 들떠서 지냈습니다.

1월 7일 출발의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고 출발 장소로 갔습니다.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둘러맨 원주 지역의 교사들이 속속 도착을 했습니다. 강원도 각 지역별로 모여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 콘도로 집결하는 것입니다.

금강산 콘도에서 남측 출입국 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합니다. 거기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면 드디어 북한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분단된 남한의 최북단 고성에 있는 금강산 콘도 옆 해변
분단된 남한의 최북단 고성에 있는 금강산 콘도 옆 해변이기원
집결지에 도착하기 전 남한의 최북단 고성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원주에서 아홉시에 출발해서 12시 30분 쯤 고성에 도착한 것입니다. 점심은 황태 해장국이었습니다. 금강산 잘 다녀오고 올 때는 북한산 술 잊지 말고 사오라며 동료 교사들이 사준 술을 마신 교사들에겐 딱 어울리는 메뉴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금강산 콘도로 이동했습니다. 금강산 콘도에서 남측 출입국 사무소를 향해 출발하는 시간이 오후 2시 30분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많아 콘도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남한의 최북단 고성에서 북한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 콘도 주변의 바닷가를 둘러보고 콘도 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2시 30분, 출발하기 전에 버스 안에서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남측 출입국 사무소와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서 할 일에 대한 설명과 함께 북한에 가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남측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함부로 얘기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북한의 법을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동해선 남측 출입국 사무소
동해선 남측 출입국 사무소이기원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5분도 안 되어 남측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핸드폰이나 남한에서 출판된 책자 등은 가지고 갈 수 없다며 거두었습니다. 핸드폰 넘겨주기 전에 집에 연락해야 한다며 여기저기에서 가족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2박 3일간은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가족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국내여행이야? 국외여행이야?”

금강산 체험 연수를 떠나기 전 출장신청을 내면서 동료 교사들과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출장 신 청란에는 국내여행과 국외여행을 구분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국내여행이다 해외여행이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국내여행에 표시를 했습니다. 국외는커녕 같은 강원도 고성군에 속해 있는 산이 금강산입니다.

그런데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는 국외여행 이상으로 까다롭고 복잡했습니다. 남측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해서도 주의사항이 반복되었습니다. 가져간 짐과 함께 검색대를 통과했습니다.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에 잔뜩 주눅이 들어 금강산을 여행한다는 설렘과 흥분에서 벗어났습니다.

출국 수속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북측 출입국 사무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버스는 비무장지대를 지났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모습을 보면서 금강산 구경이라는 막연한 감상에서 벗어나 반세기를 넘어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현실이 느껴졌습니다.

북측 출입국 사무소에서도 까다로운 절차가 이어졌습니다. 남측 출입국 사무소에서 이미 경험했던 절차가 몸에 익은 교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절차에 따라 입국 절차를 마쳤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친 뒤 버스는 드디어 북한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육로 관광길을 따라 철망이 설치되었습니다. 관광객이 이동하는 길과 북한 주민이 사는 지역을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도 철망 너머로 북한 사람들이 사는 민가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북한 주민도 보였습니다. 어느 민가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녁 준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예전 우리가 살던 시골에서도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궁이 가득 나무를 꺾어 넣고 불을 피우면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북한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호텔 2층에 그려진 벽화
북한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호텔 2층에 그려진 벽화이기원
얼마를 달렸을까? 버스가 숙소인 금강산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9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 30분 쯤 도착한 것입니다. 아주 먼 곳을 여행한 것도 아닙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까지 이동에 걸린 시간입니다.

같은 강원도 내에서의 이동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숙소에서 방 배정을 받고 짐을 풀면서 금강산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분단된 행정구역 강원도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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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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