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5단체 "인권위, 노사문제 간섭말라"

"권고안에 진보세력 주장만 반영... 경제 기본틀 해칠 우려"

등록 2006.01.17 18:09수정 2006.01.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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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5단체 회장단을 대표해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고용 억제 등을 담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마련한 것과 관련, 경제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경제5단체 회장단을 대표해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고용 억제 등을 담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마련한 것과 관련, 경제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배재만

지난 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인권정책기본 권고안을 두고, 경제계가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반영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재계는 인권위에 대해 '비전문적' '독선적 결정' 등의 용어를 써가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해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5단체장은 1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인권위 권고안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을 밝혔다.

이들 5단체장들은 "소수자의 인권보호가 인권위의 기능인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권고안은 국가 차원의 인권정책을 제시한 것이라기 보다 우리 사회의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반영해 균형감각이 결여돼 있어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권고안이) 실정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조차 무시하고 국민정서와 일반적인 법감정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면서 "권고안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될 경우 우리 사회에 크나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재계는 ▲인권위 권고안 전면 재검토 ▲헌법질서에 배치되거나 경제여건·노사관계 현실에 맞지 않는 권고안에 대한 정부의 거부권 행사 ▲인권위의 활동범위·역할 재검토와 노사문제 불간섭 등을 제안했다.

이수영 경총 회장은 "인권위 권고안의 내용을 보니, 경제의 기본틀을 해칠 우려가 있어 경제계의 입장을 밝히게 된 것"이라며 "재계가 침묵하고 있으면 정부안으로 채택될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확대와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면서 "기업들도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비정규와 중소기업 근로자의 처우개선 등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는 지난 2001년 한국정부에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해 올 6월까지 유엔에 보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 작성기관으로 선정했다.

인권위는 그동안 각종 공청회와 세미나 등을 통해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 지난 9일 확정해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세부시행계획을 최종 수립해 오는 6월 30일까지 유엔에 보고할 예정이다.


다음은 '국가인권정책 기본 계획 권고안'에 대한 경제계 입장 전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9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확정,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권고안은 정부가 일단 유엔에 보고하면 국제사회에 대한 국가차원의 약속이 되기 때문에 사회적 타당성과 이행가능성 등을 고려하고 각계의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매우 신중히 검토되었어야 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라도 경제계의 의견을 밝혀 두는 것이 이 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경제인의 도리라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제계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경제계는 소수자의 인권보호가 인권위의 기능인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금번 인권위가 발표한 권고안은 국가차원의 인권정책을 제시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반영하여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고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실정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조차 무시하고, 국민정서와 일반적인 법감정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어, 만일 동 권고안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될 경우 우리 사회에 크나큰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

기본적으로 인권은 안보와 안정적인 사회질서 하에서만 보장이 가능하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장소·시간제한의 폐지 등은 안보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인권의 존립 기반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준수해야 할 국방의 의무를 종교적 신조나 양심을 구실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 이를 이유로 거부권을 인정할 경우, 이미 병역의무를 이행했거나 하려는 사람은 종교적 신념이 없거나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매도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허용할 경우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권위는 권고안이 유엔 규약 등 국제기준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공무원에게 정치헌금 기부 등 제한적 정치활동만 허용하고 있으며 교사의 정치활동도 금지하고 있고, 일본 역시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인권위는 '헌법 위의 기관'이 아니다. 종교적 신념 등에 의한 병역거부 인정 및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범위 확대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이미 그 부당성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인권위가 헌법정신과 보편타당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단에 거스르는 권고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국가기관 스스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집회와 시위의 장소·시간·방법에 대한 규제를 사실상 철폐하자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시위문화가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지에 대해 검토했는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

평화적 시위를 보장하는 현행 규정도 지키지 않아 불법·폭력 시위가 난무하여 경찰의 희생이 속출하고, 희생당한 전·의경의 부모들이 폭력시위를 추방하는 집회까지 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불법·폭력 시위로 인하여 희생당한 경찰과 부모의 인권보호에 대한 권고안은 왜 없는지 묻고 싶다.

또한 집회로 영업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집회에 따른 교통마비로 피해받은 시민의 권리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이제는 불법·폭력적인 시위가 국경을 넘어 홍콩에서까지 자행되어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실 하에서 권고안은 무분별한 시위를 조장하여 사회질서를 더욱 혼란케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

또한, 필수공익사업장 파업에 대한 직권중재제도의 폐지와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완화, 그리고 비정규직 고용억제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등은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지극히 이상론적인 '노동인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발상으로서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만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자녀에 대한 양육받을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양육비와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체제를 구축하라는 주장은 장기 불법체류와 정주화를 조장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여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해 파업을 허용하면 근로자들의 파업권은 일정 부분 보호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지하철·전기·가스·병원·통신 등 국가 중추기관산업이 파업으로 중단될 경우에 침해될 국민의 인권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가?

경제계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시장경제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1. 인권위의 권고안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성급히 발표하는 것은 어느 일방에게는 너무 가혹할 수가 있다.

1993년 채택된 '비엔나 선언과 실행계획'도 국가인권기본계획 수립에 있어 각 국가는 자국의 상황을 반영하여 정책을 개발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국가인권기본계획을 진정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시킬 요량이라면 편파적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주장만 여과 없이 반영할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여론을 수렴해 보다 현실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수십 차례에 걸쳐 간담회, 공청회 등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단지 절차를 이행했다는 면피성 공청회는 무의미하다.

특히 권고안은 '감시·단속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하였으나, 이미 지난 2005년 5월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이들에게 2007년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는 도대체 인권위가 동 내용의 입법화사실을 알고나 있었는지 그 전문성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2. 정부는 헌법질서에 배치되거나 경제여건과 노사관계의 현실에 맞지 않은 권고안에 대해서는 과감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제현황과 노사관계 현실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하지 않은 채 인권위의 권고안대로 시행할 경우에, 우리 경제와 사회는 총체적인 혼란으로 인해 엄청난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3. 인권위의 활동범위와 역할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노사갈등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인권위가 더 이상 노사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권을 내세워 개입해서는 안 될 문제까지 인권위가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난해 4월에는 노사정간 자율적 대화를 통해 비정규 보호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시점에 인권위가 나서서 잘못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노사정간 대화구도를 무너뜨리고 갈등을 촉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적이 있다.

또한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간 논의가 시작될 시점에 인권위는 또다시 직권중재 폐지, 불법쟁의 형벌 완화, 쟁의대상 범위 확대, 긴급조정 발동 제한 등 노사관계 선진화에 역행하는 권고안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노사간 갈등만 증폭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 각 부처에서 담당하고 있는 각종 차별시정 업무를 비전문적인 인권위가 모두 맡도록 한 것도 문제다. 고용상 차별에 있어서 직무, 능력, 성과에 따른 차이와 불합리한 차별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성 없이 무조건 인권이라는 잣대로 차별을 규정하고 비현실적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기업 인력운영의 자율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같은 인권위의 독선적 결정을 막기 위해서는 인권위의 기본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차기 인권위 위원의 재구성시에는 균형된 시각과 사회적 덕망을 쌓은 인사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사회 환경 속에서 인권의 신장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 만들기이다. 현재 노동시장 안에 들어와 있는 일자리를 가진 근로자들의 인권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밖에 있는 실업자들의 일자리와 생존권 보장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정규직근로자가 중소기업 경영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고, 대기업의 비정규직근로자가 중소기업의 정규직근로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비정규직근로자 보호문제를 인권의 일률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경제적 현상마저도 이념적 영역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설령 인권위와 노동계의 주장대로 우리나라 근로자의 반에 달하는 840만명의 비정규직근로자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그것은 이미 인권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물론 양극화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문제는 인권신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는 기업들의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우리 경제계는 기업들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가 곧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인식하에 보다 투명하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는 한편,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통해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정규·중소기업 근로자의 처우개선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2006년 1월 17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강신호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재철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김용구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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