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작년에는 살아생전 그렇게 속을 썩이던 영감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예순이 넘도록 할머니를 귀찮게 하던 할아버지는 생의 끈을 놓기 직전에도 3년 동안 심부전증으로 병원신세를 지면서 할머니를 귀찮게 했다고 합니다. 시금치 농사만 30여 년을 넘게 짓고 있는 할머니, 돈 좀 모아두면 할아버지가 가져다 쓰셨다고 합니다.
"영감은 작년 7월 달에 죽었어라. 워--매, 워-매 내 고상을 얼마나 하고. 심부전증이라. 폐암 걸려서.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상은 고상대로 하고. 막 웁디다. (죽는 것이) 원통하다고. 그런 것 상상하면 일하기도 싫어."
할머니는 시금치를 캐던 바구니를 옆에 두고 옆 논두렁에 저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생전에 다정한 이야기 한번 안 했을 영감님. 이런 것을 미운정 고운정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할머니가 시금치 농사를 짓는 논은 과거에는 갯벌이었습니다. 옆에 바위에 앉아 운저리를 낚았다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 보아 오래되어야 40여년 정도 될 듯싶습니다. 시금치는 논 보다는 밭에서 자란 것이 좋다고 합니다. 특히 비나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논에 심은 시금치는 제값을 받기 어렵습니다. 잘 자라다가도 잦은 눈비를 맞게 되면 죽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려는 듯 앞을 보고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이럴 때는 미운 생각을 하는 것이 약입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좋은 구석은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평생을 살아온 영감이 아무리 미운 짓만 했다고 애틋함이 없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젊어서부터 좋게 하고 살아. 우리 영감은 그나제나 나를 뚜들어었어. 이런 것 해서 돈 좀 벌어놓으면 쓰면서, 그나제나 60 넘어서도 맞았단게. 그러다 병든 게 내 고상시키고."
얼른 다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할머니 겨우내 이렇게 해서 얼마나 버세요."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 총기가 아주 좋으십니다. 작년에 600만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가격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로 보아 1000만원 벌이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시금치 작업으로 할머니가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 4시 무렵, 비닐하우스로 만든 작업장에 불을 밝히고 전날 따 놓은 시금치를 다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작업을 해야 아침배로 시금치를 보낼 수 있습니다. 농협에서 마련한 트럭과 배를 이용해 할머니가 딴 시금치를 비롯해 비금도 시금치는 서울로 부산으로 전국의 농산물 시장으로 팔려나갑니다. 비금도 시금치는 '섬초'라고 농산물 시장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브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