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머슨과 소로우가 맺은 둘도 없는 우정

하몬 스미스가 쓴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를 읽고

등록 2006.01.20 20:35수정 2006.01.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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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겉그림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겉그림이레
물질문명을 가장 높게 사던 미국사회에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자연문명을 지킨 정신사적 버팀목이요, 비폭력무저항주의 원천으로 추앙받고 있다. 산을 깎고 들을 밀어내어 도시를 만드는 그 사회 속에서 그는 콩코드 숲과 강을 벗 삼아 자연 속에서 살림을 꾸려나갔고, 매사추세츠에 내야할 인두세를 내지 않아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전혀 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미국 사회에서 위대한 정신사를 이끈 큰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 혼자의 노력은 아니었다. 그를 곁에서 식구처럼 대해주었고, 학교 교사와 연필 공장에만 전념했을 그를 미국 문학계에 뛰어들게 하여 가장 뛰어난 인물로 만들었던 한 사람이 있으니, 미국 최고의 지성인으로, 당대 '초월주의'라는 직함을 얻고 살았던 에머슨(Ralpe Waldo Emerson)이 바로 그다.


물론 에머슨도 소로우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에머슨이 초월주의에서 점차 현실주의로 접어들게 했던 것은 그 자리에 소로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지만 점차 뗄 수 없는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두터운 우정 속에도 사상적인 간격은 자리했고, 그 때문에 둘이 갈라지는 듯하면서도 또 하나가 되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기도 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은 하몬 스미스가 쓴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서보명 옮김·이레·2005)에 잘 나타나 있다.

"소로우와 에머슨의 우정은 소로우에겐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에머슨에겐 매우 소중한 역할을 했다. 이 책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룬다. 1837년 4월 어느 오후 처음 만난 날부터 25년 뒤 소로우가 죽을 때까지 그 발자취를 따라갈 것이다."(감사의 말)

그만큼 이 책은 다른 전기작가들처럼 독립된 소로우를 그려내는 게 아니라, 소로우가 에머슨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또 소로우는 에머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서로들 주고받은 사상과 그들 사이에 주고받은 우정어린 관계를 그려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에머슨이 <자연>이란 작품으로 고심하던 차에 아내와 사별하게 되고, 두 번째 아내인 리디안 잭슨 에머슨을 맞이해 보스턴에서 19마일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숲에 신혼살림을 꾸리게 된다. 그 즈음 리디안의 언니 루시 브라운도 그곳 근처에 세를 얻어 살게 되는데, 바로 그 집이 소로우의 집이었던 것이다.


당시 소로우는 연필공장을 하는 집안 살림 때문에 가난한 대학생활을 면치 못했다. 그렇지만 모든 대학생들이 에머슨의 영향을 받았듯이, 그도 에머슨의 강연과 글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당시에 풍미했던 엄격한 칼빈주의 예정설에 묶여 있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했다. 그만큼 자유롭고 멋진 한 세상을 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소로우는 에머슨이 쓴 <자연>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고, 소로우의 집에서 세 들어 살던 리디안의 언니 루시 브라운은 자연스레 소로우와 에머슨을 엮어 주게 됐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소로우는 <자연>을 읽고서 정말로 열광했다. 갈팡질팡하던 자기 인생의 내적 방황을 드디어 끝낼 수 있게 됐다며, 너무나 흡족해 했기 때문이다.


"이미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로 이름이 날리던 그와 더 친한 관계로 발전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미래가 완전히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헨리를 봄방학을 마치고 케임브리지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와 에머슨의 사상을 폭넓게 이해해보기로 작정했다. 그 해 남은 기간 내내 그는 <자연>을 대학도서관에서 자주 대출했다."(22쪽)

그때를 기점으로 둘은 가까워졌고, 에머슨의 도움으로 소로우는 대학에서 장학금도 타게 된다. 더욱이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는 에머슨의 주선으로 좋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곳 학부모들의 간섭 때문에 소로우는 얼마 있지 않아 그 일을 그만 둔다. 그것을 계기로 소로우는 에머슨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으니, 둘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집에서 소로우는 집안일을 돌보며 에머슨의 자녀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물론 시간이 나는 대로 콩코드 강변을 따라 걷기도 하고, 틈틈이 일기를 썼는데, 이는 모두 에머슨이 일러준 덕택이었다. 그 사이 에머슨은 이곳저곳으로 강연을 나가고, 그 빈 구석을 소로우가 메우기 시작한다. 강연을 나간 에머슨은 소로우가 집안에 있으면서도 속히 자신만의 가치를 담아낸 문학작품을 써내도록 편지로 다그친다.

그래서 소로우는 몇 편의 습작을 쓰기도 하지만, 에머슨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소로우가 쓴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았던 까닭은 그가 쓴 글들이 짜임새가 없다거나 감동이 없다는 이유도 적지 않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에머슨이 품고 있는 초월주의 시각과 소로우가 품기 시작한 시각들 사이에 서서히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자연을 특정한 현상과 관련짓지 않고 추상적으로 다루지만, 헨리는 직접적인 관찰을 자기 스타일의 기초로 삼았다. 그러나 에머슨이 헨리의 글을 달갑게 보지 않는 건 그 이유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헨리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은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 인정하지만, 에머슨이 놀란 것은 그 에세이에서 둘의 지적 행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실마리를 읽었기 때문이다."(121쪽)

그렇지만 그러한 지적(知的) 틈새 때문에 에머슨도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때문에 언젠가는 소로우가 위대한 작품을 낼 것이란 기대 또한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에머슨은 훗날 자신이 산 땅에 소로우가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집을 짓고 살도록 땅을 내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로우는 1845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맞춰 월든 호수가로 옮겨가 살게 되었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에는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이란 작품을 써내고, 6년이 지난 1852년에는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인 <월든>을 펴내게 된다.

그처럼 미국 역사상 정신사적인 르네상스를 이끈 거장 소로우는 에머슨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에머슨 없는 소로우는 결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에머슨에게 소로우는 둘도 없는 제자요, 소로우에게 에머슨은 둘도 없는 스승이었던 것이다.

둘이 그토록 위대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겠는가? 성격도 한참이나 달랐고, 나이 차이 또한 14년이나 났던 그들이 어떻게 하나로 엮어질 수 있었던가? 제자와 스승의 관계에서 오는 오해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사상과 그것을 표현해 내는 글의 짜임새 때문에 경쟁관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던가? 그 끈끈한 밑바탕에는 도대체 무엇이 자리잡고 있었던가?

그것은 오로지 하나, "친구는 또 하나의 나"라는 진정어린 '우정' 때문이었다. 이는 에머슨이 <우정>이란 작품을 통해 밝힌 바 있듯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사는 귀족이나 귀부인과 맺은 우정들은 쉽게 변할 수 있지만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소로우와 맺은 우정은 결코 변질되거나 퇴색될 수 없다는 그 우정 때문이었다.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 미국 정신의 르네상스를 이끈 우정

하몬 스미스 지음, 서보명 옮김,
이레,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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