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 마애불은 충주시와 가금리를 오가는 길목 그 사이에 있습니다. 이 표지판을 따라 작은 산을 올라가면 그 언덕 가파른 곳에 있습니다.권성권
충주는 본래 백제의 근초고왕 5년(A.D.350)부터 백제 땅에 속했다. 그 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장악한 이후, 장수왕 63년(A.D.475)에는 국원성이라 이름 지었고, 신라 문무왕 13년(A.D.673)에는 국원성 자체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 뒤 신라 경덕왕 16년(A.D.742)에는 그 이름을 중원경으로 바꿨다가, 고려 태조 23년(A.D940)이 돼서야 충주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충주박물관에 들어가면 모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충주와 관련된 역사적인 내력들이 도표 하나에 전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왜놈들을 맞이해 싸운 신립장군의 초상화라든지, 임경업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렬사도 볼 수 있다. 더욱이 충주 지역 인근에서 내놓은 전통 민속품들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없는 게 있다. 바로 중원 창동(倉洞) 마애불이 그것이다. 중원이란 본래 충주를 둘러싼 옛 지역 모두를 일컫는 것이고, 창동은 마애불이 있는 그 동네 이름이다. 그곳은 충주시와 가금리를 오가는 그 사이에 놓여 있는 동네이다. 그 동네 앞에는 드넓은 남한강과 목계 나루터가 자리 잡고 있고, 동네 뒤로는 병풍처럼 펼쳐진 큼지막한 산이 하나 놓여 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은 동네를 한 바퀴 싸 감아 돌아 동네 뒤 산등어리를 타고 시원스레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