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신사의 조선인 유골, 반환해야 하는 이유

[중-일, 패권경쟁 달아오른다 13] 야스쿠니 참배, 왜 문제가 되는가? 9편

등록 2006.01.22 15:46수정 2006.01.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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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사는 '야스쿠니 편'의 마지막 기사다. 지금까지는 야스쿠니 문제의 개괄적인 부분을 다루었고, 향후 대(對)일관계의 상황 전개에 따라 이 문제의 세부적인 부분을 취급하고자 한다. 그리고 14회 기사부터는 중-일 간 영토분쟁에 관한 시리즈 기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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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신사에는 누가 '모셔져' 있을까?

이 시리즈의 6회 기사인 '야스쿠니신사에는 누가 '모셔져' 있을까?'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01년 10월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조선 출신 2만1181위와 대만 출신 2만8863위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전사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야스쿠니신사 안에서 침략전쟁의 '희생자'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들이 '대일본제국'의 건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거룩한 영령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과 또 이들이 전범들만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안에서 일본인들의 호국신으로 추앙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인 희생자들도 야스쿠니신사에서 침략전쟁의 가해자와 '동급'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신사에서 호국신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하여 결코 자랑스러워 할 일은 아니다. 11회 기사에서 소개한 도쿄대학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논문에는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된 조선인·대만인들의 유족이 보인 반응이 기술되어 있다.

"붉은 종이(입영 통지서, 인용자 주) 한 장으로 일본의 전쟁에 끌려가 죽음을 당한 동포에게 보상도 하지 않은 채, 흰 종이(합사 통지서) 한 장으로 끝내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 1978년 2월, 대만인 전사자들의 야스쿠니신사 합사에 반대하는 도쿄 집회에서 나온 발언.

"아버지는 군속으로 끌려간 채 돌아오지 않았고, 필리핀에서 전사했다고 하지만 공문 하나 오지 않았다. 1970년에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었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그러나 반강제적으로 끌려간 한을 안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민족 종교인 야스쿠니신사 안에 멋대로 모셔진 것을 한탄하고 계실 것이다. 대만 사람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 1978년, 일본을 방문한 대만인 유족의 말.

"침략해 온 나라의 호국 영령으로 친족이 모셔져 있는 현실은 견디기 어려운 굴욕"
- 2001년 6월, 도쿄지방법원을 상대로 조선인 분사를 청구한 한국인 55명의 소송서류에서.



위의 반응을 정리하면, 일제 침략 당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침략전쟁 현장에서 전사한 조선인·대만인을 야스쿠니신사의 호국신으로 안치해 놓은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유족들에게도 심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식민통치의 피해자인 사람들을 가해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집단이 무고한 시민을 납치하여 단순한 범행 도구로 이용한 뒤에 그 시민이 범행 현장에서 사망하자 그를 자기들 집단의 영웅으로 떠받든다면, 이는 해당 피해자는 물론이요, 그 유족에게도 심대한 불명예가 될 것이며 나아가 사회윤리적으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에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호국신으로 추대되고 있다고 하여, 혹시라도 그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피해자 본인은 물론이요 그 유족에게도 치욕과 모욕이며, 나아가 한국·북한·중국·대만 모두에게 불명예가 되는 일이다.

그럼, 야스쿠니신사에서 조선인·대만인을 분사(分祀)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일본측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전사한 시점에서는 일본인이었으므로 죽은 다음에도 일본인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병사로서, '전사하면 야스쿠니에 모셔진다'는 생각으로 싸우다가 죽었으므로, 유족들이 말하는 대로 합사를 취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본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협력하게 해 달라고 했고 또 일본인으로서 전쟁에 참가해 준 이상, 야스쿠니신사에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아사히신문> 1987년 4월 16일.


전사한 시점에서는 일본인이었고, 또 그들이 침략전쟁에 협력하게 해 달라고 했고 또 일본인으로서 전쟁에 참가해 준 이상, 그들을 야스쿠니신사에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아사히신문>의 표현은, 일제의 강제동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과거의 죄악에 대해 여전히 진실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일본이 아직도 과거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식민지 희생자들에게 보상하거나 사죄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자신들과 동급의 '범죄 영웅'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하겠다.

그래서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도 논문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야스쿠니신사는 식민지로부터 '반강제적'으로 전쟁에 동원하였고 전후 오랫동안 전사 통지는 물론 유골 반환도 하지 않은 채, 유족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방적으로 합사된 사람들의 합사취하 요구를 거부해 왔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들을 그 가해자와 하나로 뭉뚱그려 놓고는 내내 일본의 가미(신, 인용자 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표현 가운데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일본이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골'도 반환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그들을 식민지배의 가해자로서 야스쿠니신사에 안치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 안에 조선인 2만1181위가 안치되어 있는 것은, 한일관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현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또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희망한다면, 일본은 다른 외교적 현안들은 물론이고 야스쿠니신사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야스쿠니신사에서 조선인 2만1181위의 위패를 철거함은 물론, 수습 가능한 범위에서 그들의 유골을 유족이나 남북한 정부에게 반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정부 역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조선인 위패의 철거는 물론 유골 반환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기사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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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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