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을 만나다

눈꽃과 얼음조각으로 휩싸인 겨울 태백산 2

등록 2006.01.25 11:09수정 2006.01.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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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위에서의 새들의 착지와 비상.
주목 위에서의 새들의 착지와 비상.예티
주목은 나무 중에서 수명이 가장 길다. 그래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길게 1만 2천 년까지도 산다고 말한다. 안내책자에 의하면, 태백산에는 주목 3900여 그루가 산자락과 정상 부근에 흩어져 있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산꼭대기에 이르는 길 좌우로 평균 나이 200년(30년~920년)인 아름드리 주목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마다 다른 몸부림으로 오랜 세월 비바람·눈보라를 견뎌온 거목들이다. 정말로 장엄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자태의 주목. 거의 껍질만 남은 듯이 보이는 나무도 줄기에서는 붉은 빛이 선명하고, 가지엔 짙푸른 새잎들이 무성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속이 성지 못한 나무들도 많았다. 일부 속이 빈 나무들은, 좀 더 오래 버티도록 하기 위해 속을 메우고 시멘트 모양의 물질을 덧씌워 놓았다.


600백여년 동안 풍상을 이겨온 주목, 수고 9m  흉고둘레 3.5m  주목은 고산지역 자생하는 상록교목이다. 천년은 거뜬히 살기를 소망해 본다.
600백여년 동안 풍상을 이겨온 주목, 수고 9m 흉고둘레 3.5m 주목은 고산지역 자생하는 상록교목이다. 천년은 거뜬히 살기를 소망해 본다.문봉재

한발 더 가까이 갔더니, 세상에. 비바람에 꺾여서도 한껏 푸르름을 발하고 있는 주목에게서 한국인의 강한 생명력을 읽는다.
한발 더 가까이 갔더니, 세상에. 비바람에 꺾여서도 한껏 푸르름을 발하고 있는 주목에게서 한국인의 강한 생명력을 읽는다.문봉재

분명 죽은 것만 같은 나무건만. 고목에 꽃이 피다, 아니 줄기에 붉은 빛이 돌고, 가지엔 짙푸른 새잎이 무성해 신비감까지 든다.
분명 죽은 것만 같은 나무건만. 고목에 꽃이 피다, 아니 줄기에 붉은 빛이 돌고, 가지엔 짙푸른 새잎이 무성해 신비감까지 든다.문봉재

정말 몇 번을 보아도 멋진 자태의 주목,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감동과 감명이 밀려온다. 대오각성한 성자의 모습이 아닌가?
정말 몇 번을 보아도 멋진 자태의 주목,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감동과 감명이 밀려온다. 대오각성한 성자의 모습이 아닌가?문봉재
주목은 그 이름처럼 나무 껍질이 붉은 빛을 띠고 속살도 유달리 붉어 주목(朱木)이란 이름이 붙었으며,'적목(赤木), 적백(赤栢)'이라고도 한다. 주목의 잎은 개비자나무나 솔송나무를 닮았다. 잎이 좁고 길지만 부드러워 손을 찌르지는 않는다. 잎색깔은 진한 녹색이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 나무의 열매다.

가을에 콩알 만한 크기로 빨갛게 익는 열매는 한가운데가 움푹 파이고 그 안에 든 씨가 드러나 보여 마치 술잔이나 종지 속에 씨앗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씨앗을 싸고 있는 과육 부분을 가종피(假種皮)라고 하는데, 이는 종자껍질과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는 뜻이다. 이 가종피는 물이 많고 단맛이 있어서 아이들이 따먹기도 하는데 독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게 된다.

삶과 죽음.  숨 쉴 공간 하나만 있어도 살아있다고 소리치는 주목의 짙푸른 아우성.
삶과 죽음. 숨 쉴 공간 하나만 있어도 살아있다고 소리치는 주목의 짙푸른 아우성.문봉재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아름다운 주목.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아름다운 주목.문봉재

주목 위에 있는 백설이 마치 사뿐이 내려앉은 학의 모습이다.
주목 위에 있는 백설이 마치 사뿐이 내려앉은 학의 모습이다.문봉재
주목은 생장이 몹시 느리다. 100년을 자라도 고작 직경 10cm 정도 자란다. 대기만성을 신조로 삼는 나무랄까? 그러나 다른 나무의 그늘에서는 백년이고 이백 년이고 자라서 마침내 그늘을 벗어나고야마는 생명력이 어지간히도 질긴 나무다. 다른 나무 그늘에서 웬만큼 자라고 나면 그때부터는 생장이 조금 빨라져서 1천 년을 우습게 알만큼 장수를 누린다.

또한 주목은 성질이 고고하여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산꼭대기에 산다. 한라, 지리, 태백, 설악, 오대, 덕유, 소백, 치악, 화악, 발왕산, 울릉도의 팔백 미터가 넘는 곳에 자라고, 설악산에는 줄기가 옆으로 뻗어 정원수로 인기가 있는 눈주목이 자란다.

울릉도에는 주목과 닮았으나 잎이 더 넓은 화솔나무도 자생한다. 그러나 주목은 욕심 많은 사람들의 손에 다 잘려나가고 이제 나라안에 모두 수 천 그루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슴 뿔같은 나뭇가지 때문인지,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는 노천명의 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세월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 숨쉬고 있는 주목, 사슴처럼 고고해 보이지 않는가?
사슴 뿔같은 나뭇가지 때문인지,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라는 노천명의 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세월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 숨쉬고 있는 주목, 사슴처럼 고고해 보이지 않는가?김형태

쓰러져 누워 눈 감는 순간까지도 태백산을 지키겠다는 터줏대감의 살아 있는 정신에 그만 감동하고.
쓰러져 누워 눈 감는 순간까지도 태백산을 지키겠다는 터줏대감의 살아 있는 정신에 그만 감동하고.문봉재
주목은 수형의 아름다움도 경탄할 만 하지만, 목재의 재질이 붉고 향기로우며 치밀하면서도 단단하여 모든 재목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느티나무가 남성적이라면 주목나무는 상대적으로 결이 곱기때문에 여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성지(盛志)>라는 옛 문헌에는 '주목은 형기가 좋아 관을 만드는데 쓰며 값이 무척 비싸다. 마를 때 쪼개지는 성질이 있으나 땅에 들어가면 도로 아물어 붙어서 굳기가 돌 같다'고 적혀있다. <동집(東輯)>이라는 책에도 '탄력이 좋고 빛깔이 고우며 돌처럼 단단하고 결이 치밀하여 재목으로 으뜸'이라고 써 놓았다.


주목의 목재는 절에서 부처나 염주를 만드는 데나 최고급의 가구재로 귀하게 썼다. 문갑, 필청갑, 바둑판, 지팡이, 얼레빗을 주목으로 만들었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활을 이 나무로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신사(神社) 안에 모신 신상이 들고 있는 홀(笏)을 주목으로 만든다. 이 나무의 심재에서 붉은 색 물감을 뽑아내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주목의 붉은 빛이 악귀를 쫓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벽사의 의미로 주목으로 만든 그릇이나 부적, 지팡이를 사용했다. 특히 주목지팡이는 가볍고 튼튼하고 휘어지지 않아 좋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팡이의 붉은 빛이 귀신을 쫓아내고 무병장수하게 해 주는 힘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 선조들은 주목 지팡이를 선물하는 것을 노인들한테 가장 큰 효도의 하나로 여겼다.

한국토종약초연구학회 최진규 회장의 말에 의하면, 주목은 최근에 와서야 이 나무의 껍질에 들어 있는 택솔이라는 성분이 항암제로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적의 항암제'니 '금세기 최고의 약용식물'이니 하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우리 나라 토종 주목이 다른 나라 주목보다 택솔 성분이 적어도 스무 배가 넘게 들어 있음이 최근의 한 연구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주목은 원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 약성을 처음 발견하여 염증치료의 비약으로 써오던 것이라고 서양에서는 말하고 있으나, 우리 선조들도 아득한 옛적부터 신장염, 부종, 소갈병 등에 민간약으로 써왔다. 다만 주목에 독성이 있고 흔치 않았던 까닭에 널리 쓰이지 않았을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좋은 사진을 제공해 주신 '나사모산우회'에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좋은 사진을 제공해 주신 '나사모산우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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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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