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는 행복

이생강 명인의 다악음반 '풍적' 나오다

등록 2006.02.02 09:24수정 2006.02.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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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강 명인의 다악음반 '풍적' 표지
이생강 명인의 다악음반 '풍적' 표지신나라
요즘 많은 사람이 차를 즐기고 있다. 차는 건강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맛과 향과 색깔을 즐기는 묘미는 즐겨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윽한 차향에 푹 빠져 그 고요 속에 잠기면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차향 속에서 가까운 벗과 이야기를 나누는 맛도 기가 막힐 일이다.

지난 1월 나는 살아있는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순천 금둔사 주지 지허 스님을 뵈었다. 같이 간 20여 명의 회원과 함께 스님의 '산중다담(山中茶談: 산중에서 즐기는 차와 이야기)'을 소중하게 느끼고 온 것이다. 그때 우리에겐 스님이 직접 덖은 '천강월(千江月: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잎차' 맛도 기가 막혔지만 간간이 들리는 대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차맛을 한층 돋우는 것이었다.


이처럼 차맛을 가름하는 것은 차 자체의 맛이 물론 우선일 테지만 같이 이야기할 사람과의 따뜻함 그리고 주변의 풍광도 한몫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 여기에 덧붙여질 금상첨화는 바로 '다악(茶樂)'이다. 차를 마시며, 그윽한 음악을 듣는다면 차 마시는 이의 마음속엔 아름다움 바로 그것이 있을 터이다.

'다악'이란 차를 마실 때 듣는 음악을 말한다. 그런데 차를 마실 때 음악을 연주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악의 전성기는 차 마시기가 생활화되어 있던 고려시대일 것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의 차 마시기를 본 중국 사람들이 이를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즉, '늘 차 마시듯 하는 일'이라는 말로 표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특히 고려의 차문화는 불교를 중심으로 꽃피웠는데 사찰에서는 명선(茗禪), 즉 차 끓이기를 겨루는 풍습이 있었다. 이로 미뤄볼 때 고려의 다악은 불교적 색채가 강한 음악을 중심으로 연주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방일영 국악상을 받는 이생강 명인
방일영 국악상을 받는 이생강 명인김영조
하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불교가 쇠퇴하고, 유교가 번성하면서 차문화는 무너졌고, 그저 절간 스님들의 전유물로 남아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다. 동시에 절간에서 차를 마실 때 다악이 연주되었다는 기록 역시 찾기 어렵다. 불교음악의 백미라고 일컫는 영산회상은 재를 지내는 데 쓰이는 음악일 뿐 다악과는 관계가 없다. 또 불가에서 의식이 아닌 참선 수행시 별도의 음악은 쓰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다악은 조선시대 때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이다. 19세기 해남의 대흥사를 중심으로 혜장 스님, '동다송'을 지은 초의 스님과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문인들이 차문화를 일으켰지만 다악이 함께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차와 전통음악의 만남은 지난 1998년 한국창작음악연구회가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현대적인 새로운 삶의 음악이란 깃발을 내걸고 '차와 우리음악의 다리놓기-다악(茶樂)'이란 제목으로 공연을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담백한 차문화의 세계와 음악의 어울림을 통해 음악과 차문화 속에 들어있는 전통의 멋을 끄집어내 현대인에게 선보인 공연으로 대성황을 이뤘으며 이들 공연에 연주된 곡들은 8차례에 걸쳐 음반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들 다악은 정악계열의 창작곡들이 대부분이며, 다례 가운데 주로 궁궐에서 행하던 궁중다례나 불교 다례에 염두를 둔 음악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에 현재 대금 산조의 명인으로 사람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죽향(竹鄕) 이생강(李生剛) 명인의 음반 '다악(茶樂)-풍적(風笛)'이 새롭게 출시되었다. 이생강 선생은 대금 산조의 시조로 알려진 박종기 선생과 명인 한주환 선생에게서 산조를 이어받아 거기에 높은 기량의 연주 기법을 통한 가락을 덧붙여 대금 산조의 새로운 바탕을 마련한 인물이다.

또 이생강 명인은 대금뿐만 아니라 피리, 단소, 태평소 따위의 모든 관악기에 두루 능란하고, 특히 단소 산조를 부활시킨 것은 물론 국악과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실험적인 연주를 최초로 시도하여 국악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는 등 이 시대 최고의 국악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18일 제12회 방일영국악상 받았다.

이번 음반 '풍적(風笛)'은 신나라(회장 김기순)를 통해서 나온 것으로 수록된 곡은 청산유수(靑山流水, 대금), 회상(단소), 금강산의 만물상(소금), 시골길(피리), 풍엽(風葉, 대금), 청수(淸秀, 대금), 일월(日月, 퉁소), 초승달(단소), 정영(情影, 소금), 화용도(華容圖, 대금) 등이 수록돼 있다.

제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이생강 명인
제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이생강 명인김영조
죽향 다악의 특징은 대금, 피리, 소금, 단소, 퉁소등 관악기 독주의 평조선율(솔-라-도-레-미의 5음으로 구성되며, 솔로 마치는 선법)로 차향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점, 평조선율이 갖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주 사이 사이에 징 등 타악기로 은은하게 받쳐줌으로써 음악적 안정감을 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어느 누구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퉁소 등 관악기를 과감하게 다악에 끌어들였다는 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 건강에 대한 화두인 '느림의 마학'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던 정악적인 접근방식을 과감하게 탈피하고, 음악적 동기의 범위를 민중의 음악, 즉 민속악까지 확장하여 곡을 만든 점도 눈에 띈다. 정악적 분위기에 익숙했던 감상자들에게는 조금 까다로울 수 있겠지만 이는 우리의 차문화가 화려함과 소박함 두 가지를 모두를 가졌다는 것을 음악에 적극 반영한 결과이다.

이 시대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은 아마도 참살이(웰빙)일 것이다. 참살이야말로 큰돈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여유만으로도 가능할 일이다. 특히 차와 음악의 만남이야말로 조금의 관심만으로 참살이를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차와 함께 이생강 명인의 '풍적'을 듣는 한해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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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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