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타던 자동차를 아버님께 팔았습니다

75세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신 아버님

등록 2006.02.04 15:51수정 2006.02.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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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말, 아버님께서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셨습니다. 이번 설날 시댁을 찾은 저는 유난히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아버님의 운전면허증을 몇 번이고 만져보면서 진심으로 아버님께 축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저와는 대조적으로 남편은 아버님 운전면허 취득으로 인하여 앞으로 부딪쳐야 하는 크고 작은 일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듯 보였습니다.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아보지도 못한 아버님께서 75세라는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3년이라는 기간을 투자하여 취득하신 운전면허증입니다. 몇 번이나 필기시험에 실패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새벽1시에 일어나 문제집을 풀면서 손에 쥔 운전면허증입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신 과정을 인간승리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텐데도, 남편은 과연 아버님의 바람대로 자동차를 구입해 드려야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아버님이 자식들에게 차를 사달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고, 아버님 스스로 생활비를 절약해 300만원 가량을 마련해 놓으셨지만 아버님의 연세 때문에 걱정했던 것이죠.

이제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말씀조차 꺼내시지 않으시던 아버님이십니다. 그런 아버님께서 두 딸들과 큰 아들에게 자동차 구입을 이야기했을 때, 모두 한결같이 반대의견을 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연세가 지금 얼마인데, 위험하게 자동차를 운전하려 하시냐고,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느냐고, 그냥 지금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라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운 날은 택시타고 다니시라고, 택시타고 다니시는 것이 훨씬 돈도 절약되고 경제적이라고.

결국 아버님께서는 막내아들인 남편에게 제일 마지막으로 자동차 구입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의논하신 것입니다. 그동안의 일련 과정을 남편은 모두 알고 있기에, 다른 형제들처럼 절대 자동차 구입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설날 새벽에도 시댁 마당을 서성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남편까지 아버님께 안 된다고 말씀 드렸다가는 아버님께서 느끼실 실망감과 어쩌면 아버님께서 마련해 둔 돈으로 당신이 직접 자동차를 구입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설날을 보내고 돌아 온 남편은 잘 알고 지내는 중고자동차 사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동차를 부탁했습니다. 중고자동차 사장님께서 우리 사무실로 가져 온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본 남편은 도저히 그런 차를 아버님께 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준비하신 300만원에 차를 맞추려다 보니 자동차 상태가 남편의 마음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결국 남편은 제가 몰고 다니는 승용차를 아버님께 300만원에 팔자고 제의했습니다. 1999년식인 저의 차라면 우리들이 차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아버님께서 최소한 5년 이상은 마음 놓고 운전을 하셔도 괜찮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남편의 차를 가지고 다니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가끔 이용하는 남편의 차는 구형 중형차로로 사실 제가 운전하기에는 마음의 부담이 큰 차였습니다. 길 양쪽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좁은 곳을 운전하기에도, 그리고 좁은 공간에 주차하기에 부담이 되었기에 저는 아예 손도 대지 않던 차였습니다.

결국 남편은 그 차를 처분하고 제가 손쉽게 운전할 수 있는 차를 새로 구입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했습니다.

a 지난해 생신 때 케이크의 촛불을 끄시는 아버님

지난해 생신 때 케이크의 촛불을 끄시는 아버님 ⓒ 한명라

지난 2월 1일이었습니다. 모처럼 시댁의 2녀 2남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두 누나들과 형님에게 자신의 결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은빈이 엄마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를 드리기로 했다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시누이들은 절대 안 된다고 반대 의견을 이야기했고, 시숙 또한 아직 결정을 내리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뜻은 어느 때보다도 강경했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힘들게 고생해서 면허증을 취득한 만큼, 아버지 소유의 차를 가지고 싶고 운전하고 싶은 마음도 얼마나 강하겠느냐고. 그리고 이제까지 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그 어떤 것이라도 요구해 본 적이 있더냐고. 자동차도 자식들에게 무조건 사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농사짓고 자식들이 준 용돈을 절약해서 300만원이나 모아서 사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구요.

그런데도 자식들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의 삶이 있는데, 자식들이 나서서 안 된다고 한다면 아버지의 설 자리가 없다고. 막내인 자신에게 몇 번이고 진지하게 자동차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자기까지도 아버님께 안 된다고 거절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남편은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의견들이 당연히 자식 된 도리로 아버님께 자동차를 구입해 드려야 한다고, 돈이 없으면 자식들이 빚을 내서라도 사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75세이라는 연세에도 무언가를 하겠다고 목표를 정하고, 드디어 그 목표를 어렵게 이루었는데 그 성취감 또한 얼마나 크겠냐고, 자식들의 삶이 있듯이 아버님께도 아버님 나름대로의 삶이 있는 것이라고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아버님께 전화를 해서 자동차 구입은 절대로 안 된다고 이야기하겠다는 누나들에게 남편은 그러지 말라고 단단히 부탁을 했습니다. 결국 시누이들이나 시숙은 남편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제 저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모두들 반대하고 원하지 않는데 아버님께 자동차를 장만해 드렸다고 누나들이나 형님에게 우리 미움 받은 것 아니야? "

남편은 단 한마디로 잘라 말합니다.

"그런 미움은 받아도 괜찮다."

결국 어제 우리 부부는 두 대의 자동차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중고자동차를 맞이했습니다.

제가 부담스러워 하는 남편의 구형 중형차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중고 자동차가 사무실 옆 주차장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손때가 묻은 흰색 소형차는 아버님께 전해 드리기 전에 몇 군데 손을 보기 위해서 카센터로 보내졌습니다.

일요일인 내일 오전이면, 우리 부부는 각각 차를 운전하고 남해 고속도로를 달려 시댁으로 갈 것입니다. 아버님과 마주 앉아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아버님께 저의 소형차 키를 전해 드리고, 운전을 하시면서 몇 가지 조심하셔야 할 이야기와 자칫 발생하기 쉬운 문제점도 진지하게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운전하고 다니면서 비록 사소하게 몇 군데 긁힌 적이 있긴 하지만, 저를 도와 많은 일을 함께 했던 승용차가 이제는 아버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아버님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고, 아버님께서 길을 나설 때 편안하게 함께 갈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항상 마음으로 빌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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