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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돌아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휠체어를 탄 채 귀국한 이건희 회장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왕의 귀환사'는 "소란'이었다. "지난 1년여간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고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에겐 X파일과 금융산업구조개선법,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유죄판결 등이 그저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일 정도에 불과했나 보다.
할 말이 많지만 참자. <경향신문>의 짧고 굵은 비판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자.
"우리가 보기에 이 사건들, 특히 X파일 사건은 '소란' 정도가 아니라 정치·경제·언론 권력이 한 몸뚱이가 되어 저지른 구시대적 악폐의 결정체이다…. 이 회장의 안이한 현실인식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이 회장의 현실인식은 <경향신문>이 질타했으니 여기선 다른 점을 짚자. 그의 해법이다. 이른바 "소란"에 대한 해소책 말이다.
[X파일 소란] 일단 모르쇠, 돈으로 잠재운다
이 회장은 이런 말도 남겼다. "국제경쟁이 심해 상품 1등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국내에서 비대해져서 느슨해져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 말을 두고 일부 언론은 이 회장이 구조조정 등 조직 개편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고 전망했지만, 아니다. 이 회장은 "작년 중반쯤이라도 (비대해지고 느슨해져 가는 것을) 느껴 다행"이라고 했다.
"작년 중반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세상이 다 안다. X파일 사건이다. 그래서 나라가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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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빈 자리 지난해 10월 국회 재경위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불출석해 자리가 비어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느꼈으니 이제 행동에 옮길 일만 남겼다. 뭘까? X파일과 구조조정은 상관성이 없다. 그럼 뭘까?
상당수 신문은 이 회장이 이른바 '사회공헌 사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회공헌 사업과 관련해 메가톤급 발표가 있을 것"이란 얘기, 그리고 양극화 해소에 일조할 수 있는 방안이 발표될 것이란 얘기가 삼성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데 따른 보도다.
역시 '돈'이다. 고용이든 기부든 결국은 '돈'으로 "소란"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하다. X파일 사건은 이미 수사가 종결됐고. 이 회장은 무혐의 처리됐다. 검찰이 무혐의 처리를 해 준 마당이니 이 회장으로선 달리 성의를 보일 방법이 없다. 그저 그 마당에서 놀면 된다.
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추가 재원 10조 5천억원 마련 방안을 놓고 사회가 세금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삼성의 덩치에 걸맞은 "메가톤급" 카드를 내밀면 어떻게 될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아니겠는가?
[금산법 소란] 즉각 행동한다, 헌법소원으로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작년 중반쯤"에는 X파일 사건만 있었던 게 아니다.
삼성은 작년 6월 28일,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속한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을 15%로 제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조항을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냈다. 관련 조항이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삼성이 헌법소원을 낸 이유가 금산법을 차단하기 위해서고, 궁극적으로는 소유구조 개편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란 게 당시의 일반적 분석이었다.
한 마디로 얘기해 "소유구조 개편 불가"를 선언한 시점도 "작년 중반쯤"이다. 그럼 어떻게 된 걸까? 거의 같은 시점에 이뤄진 두 사건에 대해 각기 다른 '느낌'과 '행동'의 차이는 뭘까?
당장 눈에 띄는 건 시차다. "작년 중반쯤"의 '행동', 즉 헌법소원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자마자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느껴' 즉각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X파일에 대해서는 "작년 중반쯤" 느꼈으면서도 즉각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긴 했다. 이 회장의 해외 출국과 부하들의 '모르쇠'는 즉각적으로 행해졌다.
이 회장의 '느낌'에 공감하지 못하고, "소란" 해소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이중적이다. "소란"의 원인은 거론치 않은 채 소란 해소책만 에둘러 암시하는 이 회장의 태도가 이중적이고, 같은 '소란거리'도 나눠 대처하는 '행동'이 이중적이다.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억울하신가?
이 회장이 "이중적"이라는, 어찌 보면 일방적일 수도 있는 비판을 잠재우고, 더 나아가 삼성을 둘러싼 "소란"을 해소하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X파일은 수사가 종결됐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은 아직도 수사가 계속 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의 네 자녀가 전환사채를 인수하기 위해 발행한 수표의 배서자 필적이 동일하다고 한다. 그래서 언론은 삼성 구조본의 조직적 개입을 의심하고 있다. 마침 이 회장은 "(소란의) 전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이 이중적이란 비판을 잠재우고 싶다면 뭘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더구나 검찰이 "이 회장을 당장 소환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니 그 '자명한 해법'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덧붙이자. 조중동을 뺀 나머지 신문들(조중동은 이 회장 귀국을 사설로 다루지 않았다)은 이 회장의 고해성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의 X파일 무혐의 처리와는 무관하게 이 회장이 나서서 정·경·언 유착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럴 것이었으면 5개월간 장기 외유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여야 원내대표가 X파일 특검법 처리를 강구하자고 합의했다니까, 차라리 여기에 기대는 게 더 현실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기대지수는 알아서 조절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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