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소란'을 피웠다... 해소법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한 손에 돈, 한 손엔 헌법소원 든 이건희 회장

등록 2006.02.06 09:59수정 2006.02.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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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ont color=a77a2>왕이 돌아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휠체어를 탄 채 귀국한 이건희 회장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왕이 돌아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휠체어를 탄 채 귀국한 이건희 회장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왕의 귀환사'는 "소란'이었다. "지난 1년여간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고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에겐 X파일과 금융산업구조개선법,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유죄판결 등이 그저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일 정도에 불과했나 보다.

할 말이 많지만 참자. <경향신문>의 짧고 굵은 비판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자.

"우리가 보기에 이 사건들, 특히 X파일 사건은 '소란' 정도가 아니라 정치·경제·언론 권력이 한 몸뚱이가 되어 저지른 구시대적 악폐의 결정체이다…. 이 회장의 안이한 현실인식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이 회장의 현실인식은 <경향신문>이 질타했으니 여기선 다른 점을 짚자. 그의 해법이다. 이른바 "소란"에 대한 해소책 말이다.

[X파일 소란] 일단 모르쇠, 돈으로 잠재운다

이 회장은 이런 말도 남겼다. "국제경쟁이 심해 상품 1등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국내에서 비대해져서 느슨해져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 말을 두고 일부 언론은 이 회장이 구조조정 등 조직 개편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고 전망했지만, 아니다. 이 회장은 "작년 중반쯤이라도 (비대해지고 느슨해져 가는 것을) 느껴 다행"이라고 했다.


"작년 중반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세상이 다 안다. X파일 사건이다. 그래서 나라가 "소란"스러웠다.

a <font color=a77a2>왕의 빈 자리 지난해 10월 국회 재경위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불출석해 자리가 비어 있다.

왕의 빈 자리 지난해 10월 국회 재경위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불출석해 자리가 비어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느꼈으니 이제 행동에 옮길 일만 남겼다. 뭘까? X파일과 구조조정은 상관성이 없다. 그럼 뭘까?


상당수 신문은 이 회장이 이른바 '사회공헌 사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회공헌 사업과 관련해 메가톤급 발표가 있을 것"이란 얘기, 그리고 양극화 해소에 일조할 수 있는 방안이 발표될 것이란 얘기가 삼성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데 따른 보도다.

역시 '돈'이다. 고용이든 기부든 결국은 '돈'으로 "소란"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하다. X파일 사건은 이미 수사가 종결됐고. 이 회장은 무혐의 처리됐다. 검찰이 무혐의 처리를 해 준 마당이니 이 회장으로선 달리 성의를 보일 방법이 없다. 그저 그 마당에서 놀면 된다.

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추가 재원 10조 5천억원 마련 방안을 놓고 사회가 세금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삼성의 덩치에 걸맞은 "메가톤급" 카드를 내밀면 어떻게 될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아니겠는가?

[금산법 소란] 즉각 행동한다, 헌법소원으로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작년 중반쯤"에는 X파일 사건만 있었던 게 아니다.

삼성은 작년 6월 28일,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속한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을 15%로 제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조항을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냈다. 관련 조항이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삼성이 헌법소원을 낸 이유가 금산법을 차단하기 위해서고, 궁극적으로는 소유구조 개편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란 게 당시의 일반적 분석이었다.

한 마디로 얘기해 "소유구조 개편 불가"를 선언한 시점도 "작년 중반쯤"이다. 그럼 어떻게 된 걸까? 거의 같은 시점에 이뤄진 두 사건에 대해 각기 다른 '느낌'과 '행동'의 차이는 뭘까?

당장 눈에 띄는 건 시차다. "작년 중반쯤"의 '행동', 즉 헌법소원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자마자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느껴' 즉각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X파일에 대해서는 "작년 중반쯤" 느꼈으면서도 즉각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긴 했다. 이 회장의 해외 출국과 부하들의 '모르쇠'는 즉각적으로 행해졌다.

이 회장의 '느낌'에 공감하지 못하고, "소란" 해소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이중적이다. "소란"의 원인은 거론치 않은 채 소란 해소책만 에둘러 암시하는 이 회장의 태도가 이중적이고, 같은 '소란거리'도 나눠 대처하는 '행동'이 이중적이다.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억울하신가?

이 회장이 "이중적"이라는, 어찌 보면 일방적일 수도 있는 비판을 잠재우고, 더 나아가 삼성을 둘러싼 "소란"을 해소하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X파일은 수사가 종결됐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은 아직도 수사가 계속 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의 네 자녀가 전환사채를 인수하기 위해 발행한 수표의 배서자 필적이 동일하다고 한다. 그래서 언론은 삼성 구조본의 조직적 개입을 의심하고 있다. 마침 이 회장은 "(소란의) 전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이 이중적이란 비판을 잠재우고 싶다면 뭘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더구나 검찰이 "이 회장을 당장 소환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니 그 '자명한 해법'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덧붙이자. 조중동을 뺀 나머지 신문들(조중동은 이 회장 귀국을 사설로 다루지 않았다)은 이 회장의 고해성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의 X파일 무혐의 처리와는 무관하게 이 회장이 나서서 정·경·언 유착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럴 것이었으면 5개월간 장기 외유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여야 원내대표가 X파일 특검법 처리를 강구하자고 합의했다니까, 차라리 여기에 기대는 게 더 현실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기대지수는 알아서 조절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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