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상황실은 왜 NSC에 문제 제기했나

<프레시안>, 국정상황실 문건 또 공개... 외교부의 '각서내용 수정' 의혹도 제기

등록 2006.02.06 17:43수정 2006.02.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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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전략적 유연성' 합의각서 교환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보고 과정에서 각서의 문안을 자의적으로 수정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6일 <프레시안>이 입수해 공개한 두 건의 국정상황실 문건(2005년 4월 15·18일자)에 따르면, NSC가 2005년 3월 국정상황실에 제시한 각서 내용이 실제 외교부가 미국측에 전달한 각서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외교부와 NSC는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각서 내용을 자의적으로 수정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6일 "외교부가 미국과 외교각서를 주고받을 때 여러가지 표현을 검토했다고 한다"며 "미국 측에는 (한국의 '제3국 분쟁개입' 문제가 포함된) 최종 검토한 표현이 전달됐다"고 해명했다.

즉, 국정상황실이 '외교부에서 미국 측에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한 각서의 문안은 외교부에서 검토한 "여러가지 표현" 중 하나일 뿐이며, NSC에서 국정상황실에 전달한 각서의 문안은 지난 2003년 10월 미국 측에 전달한 최종본이라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 의중 드러나자 외교각서 문안 자의적 수정?

2005년 4월 15일자 국정상황실 문건에 따르면, 원래 미국 측에 전달한 외교 각서에서 제3국 분쟁개입 관련 문안이 "한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in such a manner as to compromise or jeopardize the security of the Republic of Korea)"라고 표현돼 있다.


이와 관련, 국정상황실은 서주석 당시 NSC 전략기획실장이 지난 2005년 3월 26일 천호선 당시 국정상황실장(현 의전비서관)에게 "외교부가 미국에 전달한 문서"라며 제시한 각서의 문안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서주석 실장이 제시한 각서에는 "한국정부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분쟁에 개입되어 우리의 취약성이 증가되어서는 안된다(…in such a manner as not to increase the vulnerability of the Republic of Korea to the conflict situation in which the Republic of Korea is not directly involved)"라고 표현돼 있다.


국정상황실은 이 문건에서 "(NSC가 국정상황실에 전달한 외교각서 문안에는) 최근 대통령님이 가장 중요하게 판단하고 계신 '우리나라의 제3국 분쟁개입' 문제가 명시적으로 포함"됐다고 평가했다.

즉, 앞서 노 대통령이 2005년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을 청와대에 전달한 각서 내용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외교부가 모호한 표현으로 미국과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려다가 공군사관학교 발언을 통해 노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나자 서둘러 문안을 수정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게다가 외교안보팀이 2005년 3월 국정상황실의 문제제기가 있기 전까지 1년5개월간 외교각서 교환사실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정상황실도 이 문건에서 그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정상황실은 "NSC(외교부)의 주장대로 제3국 분쟁 개입 조항이 포함된 각서 문안을 (미국에) 전달했다면 미국이 왜 2005년 대통령의 발언('공군사관학교 발언'을 가리키는 듯- 편집자주)을 불쾌(disturbing)하게 받아들였는지 이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상황실은 "(대미)협상팀 입장에서 '제3국 분쟁 개입 조항'이 포함된 문안이 실제 미국에 전달됐다면,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알고 반영했다는 공이 있는데 왜 이를 당당히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 왔는지 의혹이 크다"고 외교안보팀의 '의도적 실책'을 거듭 제기했다.

'NSC 청문회'도 열렸으나 "문제 없었다"로 종료

지난 2005년 4월 3일 국정상황실은 이러한 외교각서 문안 수정 의혹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러한 국정상황실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노 대통령의 지시로 일종의 'NSC 청문회'가 열렸다.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이 중심이 된 '5인위원회'가 2005년 4월 6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NSC 점검작업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5인위원회는 "협상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며 NSC 점검작업을 종료했다. 최소 5개월간의 대통령 보고 누락 사실이 드러났으며, 심지어 외교안보팀이 1년5개월간 각서교환 사실을 노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사안에 대해 '문제는 없었다'고 결론내린 것 자체도 의문투성이다.

특히 국정상황실이 NSC 점검작업 종료 이후에도 외교안보팀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태도는 5인위원회가 'NSC 청문회'를 통해 외교안보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도 이를 덮으려고 했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정상황실이 2005년 4월 18일 작성한 '전략적 유연성 현안에 대한 국정상황실의 의견'이란 문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문건은 노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노 대통령이 문제제기의 전 과정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문건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상황실은 이 문건의 서두에서 "1·2차 회의를 거치면서 함께 정리해 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점이 있어 이를 정리해서 올린다"며 "꼭 읽어봐 주시고 판단에 참고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여기서 '1·2차 회의'란 5인위원회가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NSC 점검작업으로 추정된다. 즉,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제기된 의문이 NSC 점검작업을 통해 충분히 해소되지 못하자 국정상황실이 재차 의문점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국정상황실은 "금번 사안의 진실을 올바르게 규명하는 것은 앞으로 대통령께서 외교안보정책을 이끌어 나가실 수 있는 지휘계통을 바르게 정립하느냐 못하느냐를 좌우하는 문제"라며 "매우 엄격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국정상황실은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정보의 공급, 사안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바른 해석, 대응방안에 대한 신중하고 고도의 책임성 있는 제시 등 충실한 보좌를 할 수 있도록 외교안보라인을 정립하고 기강을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며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외교안보라인의 난맥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국정상황실은 "(대미)협상팀이 진행과정에서 NSC에 보고했는지 여부, 보고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핵심인물"로 위성락 전 외교부 북미국장(당시 NSC)를 지목한 뒤 위 전 국장에 대한 엄중한 조사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하지만 국정상황실의 끈질긴 문제제기는 결국 결실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당시 각서 교환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위성락 전 국장은 주미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로 영전했고, 보고누락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종석 NSC 사무차장도 통일부장관으로 발탁됐다. 이는 책임져야 할 인사를 중용한 노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청와대 "NSC 점검 통해 의문점 해소... 국정상황실도 납득했다"

청와대는 이날 두 건의 국정상황실 문건이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별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만수 대변인은 "엊그제 언론에 보도에 보도된 국정상황실 문건과 그 성격이 같다"며 "외교부와 NSC가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 대처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국정상황실의 비판적 접근이 담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대변인은 "국정상황실이 (NSC 점검작업 종료) 이후에 제기한 것은 이전에 제기하지 못한 내용"이라며 "국정상황실은 원래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곳"이라고 확대해석을 일축했다.

또한 김 대변인은 "2005년 4월 6일과 15일 두 차례의 회의 끝에 '문제가 없었다'로 결론이 났다"며 "이를 통해 NSC와 관련된 의문점이 해소됐으며 (국정상황실도) 다 납득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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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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