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63회

등록 2006.02.08 08:19수정 2006.02.0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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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구마의 후인들 역시 그들 사이에는 형제와 같은 정이 흐르고 있었다. 회마의 처참한 죽음을 본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장마가 그 구멍으로 사라지자 나머지 인물들도 뛰어들려 했다.

"그만들 두게. 쯧… 성급하긴……"


방백린의 손짓에 뇌마 과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는 방백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너무 딱딱하게 굳은 방백린의 표정 때문에 은근히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과노인은 방백린을 존경하면서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백린에게 체벌이나 심한 추궁을 받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점이 방백린이 가진 독특한 기질이자 장점이었다. 방백린을 처음 보는 사람은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몇 번 대면하면 대하기 매우 어려운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를 알기 시작하면 그 만이 가지고 있는 기질과 성품에 존경과 함께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의 수하라면 더욱 그랬다.

"곰같이 우둔해 보이는 사람이 만약을 위해 토끼굴 하나는 파놓았군."

방백린은 고개를 저었다. 장철궁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도망갈 구멍을 파놓을 것이라는 사실은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에 한 줄기 짜증스런 표정이 스쳤다.

"등자후(鄧玆厚)… 그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방백린은 입술을 씹으며 신음을 토하듯 중얼거렸다. 아무도 그 벽 속에서 나타나 대군에게 일격을 가한 인물이 누군지 몰랐지만 방백린은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여섯 번째 사제인 등자후. 피부가 검은 관계로 흑의를 즐겨 입는 사제.

"잠시 그를 배제한 것이 실수로군."


송하령에 대한 사랑으로 열병을 앓고 두문불출하던 사제였다. 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나고자 이곳 천마곡에 들어와서는 무공 정진에만 매달리고 있었던 사제였다. 그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불찰이었다. 방백린은 텅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누가 그를 움직였을까? 누가 저 안에 있었던 것이지?"

그 짧은 순간에 회마를 끌어당겨 제압하고 요서보검으로 벽에 꽂아놓을 정도의 인물은 과연 누구였을까? 아무리 회마가 장철궁과의 혈투로 지쳐있었다 하나 회마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은 자신의 사형제 정도의 인물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천마곡 내에 남아있는 사형제는 거의 없었고, 장철궁과 등자후를 제외한다면 그럴 인물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그는 다급하게 부서져 내린 벽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악마의 아가리처럼 시커먼 어둠을 머금고 뚫려져 있던 바닥의 구멍 속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울렸다.

"어억---!"

숨이 끊어지는 비명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 구멍 위로 하나의 물체가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바로 그 구멍 속으로 따라 들어갔던 장마였다.

털썩---!

장마는 이미 절명해 있었다.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눈을 치뜨고 있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속절없이 당했던 것일까? 장마의 목젖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가슴에는 불에 지진 듯한 검흔이 한 줄기 그어져 있었다. 피가 뭉클거리며 뿜어지는 것으로 보아 정확히 심장을 가른 상흔이었다.

장내에 있던 인물들의 눈에 경악과 함께 지독한 분노가 떠올랐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회마가 죽고, 장마마저 죽은 채 튀어나오다니…. 모두들 금방이라도 장마가 다시 튀어나온 그 구멍으로 들어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허나 방백린이 손을 들자 그들의 움직임이 한 순간에 멈췄다.

"성하구구검…!"

방백린의 입에서 탄식과 같은 어조가 흘러나왔다. 회마를 요서보검으로 관통하여 벽에 걸리게 하고 장마를 이렇게 짧은 순간에 죽일 수 있는 인물은 그리 흔치 않다. 하지만 섭장천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장마의 심장에 그어진 검흔은 분명 성하구구검의 흔적이었다.

"섭노야…! 분명 천마곡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일을 망쳐 놓을 줄이야…."

늙은 생강이 맵다고 섭장천이 연락을 끊고 갑작스럽게 몸을 감춘 이유는 이제야 분명해졌다. 그의 얼굴근육이 갑자기 요동치듯 꿈틀거렸다. 너무 장철궁 만을 의식했었다. 이미 걸림돌이 될 강명을 밖으로 내 보낸 후라 다른 인물들을 경시한 탓도 있었다. 그동안 섭장천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무슨 일인가 꾸미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등자후까지 움직였다면 분명한 일이었다.

"좌상(左相)……! 일이 꼬이는군."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어쨌든 곡주 아니 장철궁이 도망친 이상 이곳은 주공의 손에 장악된 셈입니다. 닷새 이내에 걸림돌이 될 자들은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방백린은 이마를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매우 실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내심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교내의 인물들 대부분은 처리해 놓았지만 등자후와 섭장천이 같이 움직이고 있다면 좌상 과노인 만으로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심하게 부상당해 당분간 움직일 수 없다 해도 장철궁이 살아있고, 등자후가 있었다. 그들 역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 그들이 숨어있는 곳을 색출해 낸다 해도 섭장천을 상대할 고수가 필요했다. 결국 자신 외에는 상대할 인물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직 폐관(閉關)을 끝내지 못한 우상(右相)을 불러야 하나? 매우 중요한 시기에 내부를 단속하지 못해 일이 자꾸 지연되는군.)

방백린은 생각을 멈추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요서보검을 주어들고는 누워있는 당새아 쪽으로 걸어갔다.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던지 방백린이 다가오자 당새아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수고했다."

방백린의 말은 아주 간단했지만 당새아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방백린의 칭찬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비중이 있었다. 방백린은 당새아의 어깨를 만졌다.

우드득---

탈골된 당새아의 어깨뼈가 맞춰지자, 방백린은 빠르게 당새아의 몇 군데 혈도를 짚더니 손바닥을 그녀의 아랫배에 대고 잠시 진기를 주입하는 듯 했다. 그러자 하얗게 탈색되었던 그녀의 얼굴에 한줄기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방백린이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키자 당새아가 힘겹게 몸을 추스르며 방백린에게 절을 올렸다. 주인의 손길은 언제나 그녀를 감격하게 만든다. 주인의 한 마디는 그녀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그녀는 건네주는 요서보검을 받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하옵니다."

"일시 방편일 뿐이다. 약을 보내 주마. 운령아씨를 모시고 거처로 돌아가거라."

방백린은 힐끗 운령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던 운령의 눈에는 독기가 떠올라 있었다. 입을 앙다물고 방백린을 주시하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것이었다.

더구나 방백린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운령의 차가운 눈빛 속에 한줄기 섞여있는 비웃음이었다. 형제를 배신한 것에 대한 멸시와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소가 섞인 것이었다.

"휴우----!"

방백린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만두고는 탄식을 불어냈다. 그리고는 훌쩍 몸을 돌려 그곳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계기만 주어진다면 또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방백린이었다. 다만 유항의 우려대로 운령은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유일한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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