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삼성에 또 속는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삼성 '대국민 발표'의 허실

등록 2006.02.08 10:39수정 2006.02.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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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8일 저녁 7시5분]

a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가 입국한지 사흘만에 삼성은 '대국민발표'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가 입국한지 사흘만에 삼성은 '대국민발표'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역시 돈이 최고다. 너나 할 것 없다. 모든 언론이 돈을 머리로 삼았다. 삼성그룹의 대국민 발표문 내용 중에서 8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부분을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취급했다.

물론 적은 돈이 아니다. '억' 소리를 8000번 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그리 큰 돈도 아니다.

8000억? 밑질 게 전혀 없다

8000억 원 중 4500억 원은 2002년에 출연을 약속한 이건희 장학재단 돈이다. 이번에 새로 내놓겠다고 한 돈은 3500억 원이다.

이 3500억 원 중에는 이재용씨 남매가 내놓는 돈 1300억 원이 포함돼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으로 얻은 이득을 토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취지도 좋고 액수도 적잖지만, 따져보면 '과다 지출'이라고 볼 수 없다. 이재용씨 남매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을 통해 취득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100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당이득의 10분의 1만 토해내는 것이다.


그 뿐인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고, 이 판결에 힘입은 검찰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삼성이 대국민 발표를 한 바로 그날, 검찰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삼성 비서실이 개입했다는 결정적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남는 장사'다. 서로 물고 할퀴며 비리 폭로전을 벌이다가 검찰의 사법처리가 임박해지자 경영 일선에서 동반 퇴진한다고 선언한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그 덕에(?) 불구속 기소라는 선처를 받은 사실도 있지 않은가.


최소 성의에 최대 효과를 기대하는 조치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텐데, 언론은 그저 '억' 소리만 냈다. '조건 없는 기부'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언론의 '돈 놀음' 보도를 비판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본질적인 사안은 따로 있다.

삼성은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모두 취하한다고 했다. 재벌 금융사의 계열사 의결권을 15%로 제한한 공정거래법에 대해 낸 헌법소원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에 증여세를 물린 조치를 취소하라는 소송이 그 대상이다. 이와 함께 금융산업구조개선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입법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두가 삼성의 지배구조와 연관되는 사안들이라 의미심장한 발표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삼성은 밑질 게 없다.

법적 문제는 또 어떤가

a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내 수뇌부들이 7일 삼성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주 구조본부사장, 배정충 삼성생명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사장, 이종왕 법무실장.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내 수뇌부들이 7일 삼성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주 구조본부사장, 배정충 삼성생명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사장, 이종왕 법무실장. ⓒ 연합뉴스 백승렬

공정거래법은 재벌 금융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이지 소유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공정거래법 헌법소원은 금산법 입법 저지를 위한 시간끌기용, 여론조성용 소송이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삼성SDS건은 세금 관련 소송인만큼 돈으로 풀면 되지 소유권까지 건드릴 필요가 없다. 삼성이 이 두 건의 소송을 취하한다고 해서 지배구조에 즉각 변화가 오는 건 없다.

물론 금산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다르다. 입법결과에 따라 지배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올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추상적 가능성에 불과하다. 현실은 오히려 삼성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금산법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당론은 분리대응이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25.64% 중 5% 초과분은 처분토록 하되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2% 중 5% 초과분은 의결권만 제한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이 안이 그대로 입법화 된다면 삼성이 입는 타격은 거의 없다.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인 에버랜드의 지분을 삼성카드가 내놓는다고 해도 이재용씨 등 이건희 회장 자녀들은 여전히 에버랜드 지배주주로 남는다.

관건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초과지분이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지면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순환지배구조에 일정한 변화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자상하게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초과지분을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길을 열어놓았다.

금융지주회사법도 마찬가지다. 재정경제부가 지난달 24일 입법예고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개정 법률 시행 당시 금융지주회사에 해당되지 않는 회사에 대해 개정 전 법률의 '인가 취소에 따른 주식처분' 조치를 면제하도록 돼 있다. 개정안 부칙 제2조다.

2003년 말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등 계열회사 주식가액은 자산총액의 50%를 초과했다. 따라서 에버랜드는 금융감독위의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있었다. 이게 문제가 되자 에버랜드는 지난해부터 삼성생명 주식을 취득원가로 계산하는 방법으로 '자산총액 50% 초과'를 피해갔다.

이런 상태에서 재경부가 '인가 취소에 따른 주식처분' 조치를 면제해주는 길을 열었다. 에버랜드에 금융지주회사 지정을 피해갈 수 있는 면죄부를 발행해준 것이다. 재경부에서는 이 부칙 제2조가 자산 1천억원 미만인 회사에 한정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법조문에는 그런 명시적인 표현이 없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금산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입법안이 이럴진대 삼성이 굳이 입법 결과를 수용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입법안이 더 강화될 여지를 적절히, 보이지 않는 선에서 제어하기만 하면 된다.

구조조정본부 축소? 본질은 폐지다

a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상무. 이번에 삼성측이 새로 출연을 약속한 3500억 원 중에는 이재용씨의 돈 1100억 원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이씨가 애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통해 취득한 이익의 10%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상무. 이번에 삼성측이 새로 출연을 약속한 3500억 원 중에는 이재용씨의 돈 1100억 원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이씨가 애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통해 취득한 이익의 10%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침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대국민 발표문을 '환영' '지지'한다고 밝히고 나섰다. '비호감'을 '호감'으로 돌릴 수 있는 결정적 전기도 마련했다. 이미지 관리만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그룹 구조조정본부를 축소하고 금융계열사의 사외이사 수를 절반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건 효과적이다. 삼성의 투명경영 의지를 만방에 호소할 수 있는 유용한 카드다.

하지만 이미지와 실체는 다르기 일쑤다. 구조조정본부 또한 그렇다. 구조조정본부의 핵심은 구성원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IMF환란의 산물로서, 법적 권한도 없고 따라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는 임의기구인 게 구조조정본부인데도 총수의 후광을 입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본질은 축소가 아니라 폐지다. 그런데도 삼성은 축소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게다가 얼마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핵심 인력들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인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금융계열사 사외이사 확충 방안 역시 새로울 게 없다. 현행 법률은 자산 2조원 이상 보험사의 경우 비상장회사라 해도 사외이사를 전체 이사의 절반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삼성생명도 이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의 사외이사 과반수 이상 확충 방안은 좋게 평가해야 '준법' 수준의 조치다. 절반에서 한두 명 더 추가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추가 양보 없이 생색만 극대화하는 카드다.

실상이 이렇지만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생명보험사의 상장 문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계열사, 특히 삼성생명의 투명경영을 천명했으니 기대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건희는 입국 사흘만에 '삼성공화국 재건' 첫 삽을 떴나

'득'이 되면 됐지 '실'이 될 게 거의 없는 게 삼성의 대국민 발표다. 그런데도 <중앙일보> 같은 언론은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변신 노력'에 "합당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중앙일보)고 주문했다.

이런 추임새 덕에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귀국한 지 사흘 만에 '삼성공화국' 재건의 첫 삽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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