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따라 사뿐히 내려앉은 마른 단풍잎,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별처럼 아름답습니다김형태
시인의 눈으로 볼 때, 눈은 춥고 가난한 동네에만 내립니다. 춥지 않고 잘 사는 동네에는 눈 대신 비가 내립니다.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무조건 좋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밖으로 뛰어나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면 얼굴 가득 눈이 내렸습니다. 눈(眼)에 내린 눈(雪)은 눈물이 되고, 입 안에 들어오는 눈은 미소가 되었습니다.
동무들과의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눈썰매 타기 등 아름다운 동심이 묻어 있는 하얀 눈!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무조건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며 조금이라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리던 유아기가 누구에게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와 자식 사이는 밀착 관계입니다. 날 떼어놓고 부모님이 어디를 간다고 하면 나도 따라간다고 떼를 쓴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가 더 좋고, 사춘기가 되면서 이성에, 또는 나 자신에 골몰하였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니, 어느새 부모님과의 거리는 한참 떨어져 있었습니다.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우는데, 열 자식은 부모 하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합니다.
전설과 동심을 주렁주렁 안고 내리는 햐얀 눈이 현대 도시에서는 불청객이듯, 요즘 세상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존재가 더 이상 반가운 손님이 아닌 듯 합니다.
한때는 '동방예의지국'이라 자랑하던 우리나라에서 "차라리 아들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 노인학대 위험수위(노컷뉴스), 한겨울 온기 없는 방 '어둠속 방치'(한겨레신문), 노인학대 80% "친족에 당해" 아들이 1위(쿠키뉴스) 등 걸핏하면 노인 학대와 관련된 기사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니 말입니다.
언제쯤이면 다시 하얀 눈을 동심의 눈으로, 부모님을 어린아이처럼 대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요?
우리도 멀잖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