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창간 초심이 궁금하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여론매체부 폐지의 본심은 무엇일까

등록 2006.02.13 11:18수정 2006.02.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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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5일 오전 11시8분]

<한겨레>가 사고(社告)를 냈다. 조직을 혁신했다고 했다. 편집장-영역별팀제를 도입했다고 했다. "100여년 이어져온 우리나라 신문사 편집국 구조를 원점에서부터 뜯어고치기로 했다"며 "국내 신문사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고 자평했다.

성패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예측할 필요도 없다. 체계보다 더 중요한 게 운영이다. 운영 결과를 지켜보는 게 우선이다.

그래도 한 가지만 짚자. <한겨레>의 사고에는 포함되지 않은 변화상이 있다. 여론매체부를 없애기로 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여론매체부 산하 미디어산업담당자는 편집기획팀으로, 필진 관리는 논설위원실로, 방송담당은 문화편집장 아래로 보내 여론매체부를 없앤다고 한다.

여론매체부 폐지를 따로 떼어내 짚는 이유가 있다. 여론매체부가 <한겨레>의 창간 초심을 상징해온 곳이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유신독재 시절의 <동아>·<조선> 자유언론투쟁과 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의 적통을 계승한 신문사로 자처해왔다. 창간 멤버 대다수도 이 운동에 참여했던 언론인들이었다. 여론매체부와, 이곳에서 만든 미디어면은 '자유언론'의 결산으로, '대안언론'이 나아갈 바를 천명하는 방향타로 간주돼 왔다.

그런 여론매체부가 페지됐다. 그럼 <한겨레>의 창간 초심은 어떻게 되는 건가?


단정하긴 어렵다. 여론매체부 폐지가 곧 언론비평 기능 폐지를 뜻한다고 단정하는 건 섣부르다. 중요한 건 지면이다. 조직을 어떤 체계로, 어떻게 운영하는지는 <한겨레>의 문제다. 반면 지면을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공공의 문제다. 국민주 신문 지면의 공공성은 더욱 크다.

'여론매체부' 폐지의 본심은?


이 대원칙에 입각해 <한겨레>의 변화상을 검토하고, 그 방향을 가늠하자.

18년 전 창간 때와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많이 다르다. 언론자유는 신장됐고 언론시장은 다원화 됐다. 이 과정에서 보도 관행과 언론시장 실상이 많이 폭로됐고, 언론비평은 일반화됐으며, 언론문제의 담론은 다양화됐다.

이 현상은 뭘 뜻하는가? 여론매체부의 제한된 인력만으로 폭넓은 언론현상을 좇기엔 한계가 있음을 뜻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언론이 권력기관화 되면서 사회 각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서 나타난 결과가 사회 각 영역과 언론 영역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이다. '감시'에서 '개입'으로 언론의 촉수가 확장됐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 고유의 현상을 따로 떼어내 짚는 일은 한계가 뚜렷할 뿐 아니라 언론비평 본연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전방위적 언론비평'이다. 정치 담당 기자가 정언 유착을 감시하고 정치보도를 비평하며, 경제 담당 기자가 경언 거래를 폭로하고 경제보도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해당 기자가 해당 영역을 가장 잘 알기에 감시와 비평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방식은 유효하고 적절하다.

<한겨레>의 여론매체부 폐지가 이런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조치라면 굳이 색안경을 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창간 초심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공세적 조치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해석이다. 그것도 희망을 듬뿍 얹은 해석이다. <한겨레>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그런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실현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관건은 기자에 있다. 웬만큼 훈련된 기자가 아니고서는 해당 분야의 논리와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범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언론 비평을 놓아 버리는 현상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이 <한겨레> 편집국 곳곳에서 나타난다면 여론매체부의 폐지는 곧 '무장 해제'로 이어진다.

그래서 <한겨레>에 물어야 한다. 우선, 여론매체부의 폐지가 '전방위적 언론비평'을 위한 조치인지를 물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여론매체부 폐지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보완책이 뭔지를 물어야 한다.

아직 대답은 없다. 그래도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건 있다.

<한겨레>는 연초에 독자배가추진단장이던 홍세화 씨를 시민편집인으로 임명하면서 "<한겨레>와 독자들 사이에 서서 <한겨레>에 따끔한 소리"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홍세화 시민편집인은 "<한겨레>의 초심은 어디에?" 있느냐고 "따끔하게" 물었다. "<한겨레>가 사회변화 동력들에게 보내는 눈길은 자동차와 부동산에 보내는 시선보다 소홀하다"는 지적이었다.

이것만 놓고 보면 <한겨레>는 보완장치를 마련한 것 같다. 기자들이 자기 분야의 논리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이를 따끔하게 지적할 수 있는 내부 감시망 말이다.

창간 동력이었던 사회변화세력, 자동차와 부동산보다 뒷전에...

하지만 평가절상 할 이유는 없다. '시민편집인'이란 직함이 새롭긴 해도 그 기능면에서는 새로울 게 별로 없다. 방송사가 운영해온 '시청자위원회', 다른 신문사가 자율적으로 꾸려온 '옴부즈만 제도'와 형태상 별반 다를 게 없다. 방송사가 '시청자위원회'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일부 신문사가 '옴부즈만' 내용을 한 면을 털어 게재하는 모습과 비교해도 새로울 게 없다.

그 뿐인가. 홍세화 시민편집인 스스로 밝혔듯이 시민편집인은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에 규정된 독자권익위원회의 <한겨레>식 이름일 뿐이다. 여론매체부의 폐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내부 감시망을 갖췄다고 보긴 힘들다.

그래서 우려한다. 여론매체부의 존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기 비평'은 기본이지 전부는 아니다. 그건 <한겨레>를 향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언론사에 전할 당위의 요구다.

<한겨레>에 따로 묻고 요구할 게 있다. '상호 비평'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는 5월 창간 18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지면을 혁신한다고 하니 그것까지 지켜보고, 그래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으면 물어봐야 한다. 창간 초심은 어디로 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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