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의 '좌고우건'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언론마저도 헷갈린다

등록 2006.02.15 10:35수정 2006.02.1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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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각설하자. 우선 크게 갈라보자.

<중앙> "5.31 지방선거 관여 않겠다"
<조선> 고건 본격 정치참여 결심 왜…
<한겨레> 고건 "지방선거 어이 할꼬"


크게 가르면 가지런해지는 게 보통이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 더 헷갈린다. 언론이 각기 다르게 장단을 맞추니 국민은 '엉거주춤'을 출 수밖에 없다. 도대체 진실은 뭔가?

되돌아보자. 열린우리당 의장 경선에 나선 김근태 후보가 지난 8일 고건 전 총리를 만나 범양심세력 연대에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어제(14일) <조선일보>는 고 전 총리가 다음달 초에 '새시대 정치연합'을 구성한 뒤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을 아우르는 선거연합을 추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오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고 전 총리가 결심을 굳힌 것으로 봤다. 하지만 아니었다. 고 전 총리는 <조선일보> 보도를 즉각 부인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고 전 총리의 대변인격인 김덕봉 전 총리 공보수석은 "새정치 패러다임의 구현을 위해 '새시대 정치연합'을 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고 전 총리 측근들도 느슨한 형태의 정치연합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언론이 각기 다른 장단을 맞추는 걸 뭐라 탓할 수 없다. 언론이 아니라 고 전 총리측에서 혼란의 원인을 찾는 게 타당하다.


참여파와 신중파

언론의 '제각각 장단'에도 불구하고 공통되게 보도한 내용이 있다. 고 전 총리를 돕는 사람들이 두 입장으로 갈려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참여파와 신중파다.


참여파는 지방선거 적극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김근태 후보가 공개적으로 협력을 요구하기까지 했는데도 팔짱만 끼고 있다가 지방선거 이후에 정치에 참여하면 무임승차했다는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신중파는 손해를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선거에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성과가 나지 않을 경우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 있으니까 거리를 유지하다가 지방선거 이후, 특히 여권 내 지각변동 결과까지 본 뒤에 선택을 하자는 것이다.

공통된 보도 내용이 하나 더 있다. 입장이 엇갈리는데도 불구하고 이른바 '범여권'을 묶는 느슨한 정치연합을 지방선거 이전에 시도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이 두가지 공통 보도 내용을 토대로 삼으면 대충 정리되는 게 있다. 고 전 총리가 '좌고우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새시대 정치연합'을 세워 느슨한 정치연합을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유·불리 관점에서 상황을 재고 있다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칠기삼'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는가

이해 못할 건 없다. 구애를 받는 입장에선 상대방을 감질나게 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목마른 사람에겐 한 방울의 물도 달다. <조선일보>가 어제 보도를 하자마자 김근태 후보측이 "반한나라당 대연합의 동참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황도 녹록하지가 않다. 참여파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방선거에 본격 참여한다면 그 파트너는 김근태 후보다. 본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대권 경쟁의) 기득권도 내던질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는 김근태 후보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게다가 같은 전북 출신으로, 지역 기반이 겹친다.

사정이 이러니 김근태 후보의 '러브콜'을 화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으련만 위험 부담이 크다. 열린우리당 의장 경선에서 김근태 후보는 정동영 후보에 처져 있다. 이게 문제다.

이런 상황에선 '모호한 성의'와 '느슨한 연합'이 최고다. 그것이 '치고빠지기'든 '애드벌룬 띄우기'든 나중에 "내 맘은 그게 아니었다"고 주장할 여지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맘대로 해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행여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면 "그게 내 맘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고민 중"이라는 고 전 총리의 행보는 '실용적'이다. 노회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용적'이라고 해서 위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아니다. 실용적인 태도가 정치적 입지를 다져줄지는 모르지만, '책임 있는 지도자'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란 평가까지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비례 결과를 빚어낼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고 전 총리도 도박을 하고 있다. '운칠기삼의 종합예술'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은 아무도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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