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69회

등록 2006.02.16 08:18수정 2006.02.1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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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죽였으면 오히려 고맙지. 더구나 네 놈이 누구이던 무슨 상관이 있겠어? 어차피 죽을 놈인데....”

“.........?”


아마 당중의 얼굴에 어떻게 목득이 아닌 사실을 알았느냐는 의혹서린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자광은 느긋한 미소를 띠우며 다시 속삭였다.

“목득은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아. 내가 자리에 앉으면 그는 내 곁에 서 있지. 내가 술잔을 건네면 그는 무릎이라도 꿇으며 잔을 받았을 거야.....”

말과 함께 연자광은 왼팔을 구부려 당중의 가슴을 타고 올라 목 근처로 가져갔다. 목을 조른 뒤 꺾어 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는 흠칫하며 동작을 멈췄다. 언제 파고든 것일까?

자신과 당중 사이에는 쇠꼬챙이 같이 폭이 좁은 도가 파고들었고, 당중의 완맥을 잡고 있는 오른팔에 걸쳐져 있는 것과 동시에 목을 조르려던 그의 왼팔 팔목에 걸쳐져 있어 더 올린다면 오히려 자신의 팔목이 베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더구나 그의 고막을 파고드는 목소리는 낮은 저음이었지만 왠지 섬뜩한 느낌을 들게 했다.

“손재주가 좋군. 하지만 계속 그럴 것이라면 팔이 잘려도 원망하지 마라.”


허나 그 말은 하나마나 한 것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자광이 흠칫 하는 사이 이미 당중의 완맥을 잡고 있던 팔이 어깨서부터 잘려져 나가고 당중의 목을 조르려던 왼팔은 팔목이 잘려져 나갔다.

“악----!”


잘려진 팔과 손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짧은 순간 양 손을 잃은 셈이었다. 그제서야 침상 밑에서 상체를 드러낸 채 괴상한 도를 뻗고 있다가 몸을 일으키는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바로 광도였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네. 사흘씩이나 침상 밑에 숨어있으려니 온몸이 굳는 것 같더군.”

몽화가 예상한대로 분명 목득을 죽이러 올 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좀처럼 오지 않았고, 경각심이 풀어질 때쯤에서야 비로소 온 것이다. 그 덕에 광도는 사흘씩이나 목득의 침상 밑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기다려야 했다.

털썩---!

연자광이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진 채 미친 듯이 소리쳤다.

“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아마 경고를 했으면 베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니냐는 항의인 것 같았다. 광도는 고개를 흔들며 싱긋 웃었다. 동시에 연자광의 혈도를 제압하고, 지혈을 위해 몇 군데 혈도를 짚었다. 그럼에도 잘려나간 부위에서는 피가 여전히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붙여놓을 이유가 없더군. 어차피 우리가 필요한 것은 네 놈의 입과 머리지 팔이 아니거든. 더구나 네 손은 아주 무서운 흉기가 아닌가?

고통과 분노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자광의 얼굴에는 아직도 억울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광도의 말대로 그의 양손은 흉기였다. 광도 역시 그의 고절한 지공을 본 터라 망설임 없이 잘라버린 것이다. 광도의 말대로 연자광에게서 필요한 것은 그의 입과 머리뿐이었다.

허나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연자광 뿐만이 아니었다. 점혈 당해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굴리고 있는 당중의 놀람은 컸다.

(구양휘의 형제들은 모두 한 가닥씩 한다더니......)

광도의 깨끗한 솜씨와 과감한 결단력에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그의 귀로 광도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역시 예상대로 모용화궁이었나?”

------------

무림에 언제부터인가 내려오는 하나의 전설.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하나의 전설은 언제나 무림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두 가지의 꿈이었다.

-- 귀곡(鬼谷)은 민심(民心)을 동(動)하게 하고, 천동(天洞)은 천심(天心)을 행(行)한다.

존재하고는 있으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움직이고는 있으나 모습을 볼 수 없는 신비한 두 곳. 신산지묘(神算之妙)의 계책과 천상의 비술(秘術)과도 같은 무학을 가지고 있다는 두 곳이었다.

“이곳은 천동(天洞)이네. 무림의 수호문(守護門)이라는 천동이란 말일세.”

백결은 신음을 흘리듯 말했다. 무림에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무림을 구하는 곳. 그 존재를 스스로 나타내거나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움직여왔던 곳. 그런 연유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절대구마가 무림을 휩쓸었던 구마겁의 시기에 나타나 절대구마의 시대를 종식시킨 곳 역시 천동이었다. 천동의 오룡(五龍)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구마겁 이후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찾아 헤메던 천동이 연동과 함께 있었을 줄이야....!”

사실 일맥으로 전수되는 귀곡과는 달리 천동은 무림인에게 일종의 꿈이었을 것이다. 무림인들은 물론 수많은 문파 역시 천동의 무학을 얻을 수 있다면 천하제일문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 중원천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는 천동. 그곳을 찾기 위해 평생을 허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았음은 불문가지.

“구마겁으로 인해 천동의 맥이 끊겼으리라 생각했는데.....”

무림의 비사에 대해서는 백결만큼 아는 자도 드물었다. 백결의 스승이랄 수 있는 천심(穿深). 무림에서는 독부자(讀傅子)라 불렸으나 백련교 내에서는 신주귀안(神珠鬼眼)과 함께 지모(智謀)와 신산귀계(神算鬼計)로 쌍벽을 이루었던 인물인 천심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더구나 독부자는 중원 전체에 흐르던 괴이한 음모에 대해 가장 먼저 눈치를 챘던 인물. 그 때문에 살해당한 인물이 아니던가?

구마겁을 종식시킨 이후 천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오룡의 무학이 기재되어 있다는 오룡번으로 인하여 수십 차례에 걸쳐 무림에 소동이 일어났던 것.

“오룡번은 분명 오룡의 무학이 기재된 것이었지. 철혈대제가 오룡번을 얻은 것은 사실이었네. 하지만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지. 오룡번을 얻은 독고대제는 결국 주화입마로 미치광이가 되었다네. 왜 오룡은 완전치도 못한 무학을 기재한 오룡번을 무림에 흘렸을까?”

“............!”

“결론은 한 가지였네. 구마겁을 종식시킨 오룡들은 절대구마를 없애기는 했지만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었던 것이지. 그들 역시 천동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말이네. 뒤를 이을 후인마저 정하지 못하고 말이네.”

그만큼 절대구마의 힘은 강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무림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얼마나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그들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천상의 비술을 가지고 있다던 천동도 대가 끊기는 비극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룡 중 누군가가 죽어가면서 오룡번을 남겼다고 보아야 하네. 하지만 자신의 무학이야 제대로 남겼겠지만 다른 네 명의 무공들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겠지.”

“이곳이 천동이라면 그 추측은 분명 틀린 것이겠구려.”

맥이 끊겼다면 이곳에는 아무도 없어야 했다. 천과 깃발이 늘어진 지하광장의 중앙에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듣고만 있던 담천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네. 그 뒤 맥이 끊긴 이곳에 누군가가 들어와 천동의 광세기연을 얻은 것이라면 가능한 일이네. 지금의 상황은 분명 그렇다고 말하고 있네.”

천마곡을 빠져나가려 우연히 연동을 발견했던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천동에 설치된 기관 때문이었거나 천동의 비밀을 지키려던 천동의 인물들이 손을 썼을 것이다. 그동안 의혹스러운 일로 남아있던 일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헌데 그 순간 담천의의 뇌리에는 마차에서 했던 모용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바로 그것이다. 백결의 추측이 옳다면 맥이 끊긴 천동의 유학을 얻은 인물은 분명 그였다. 담천의의 입에서 신음처럼 한 인물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모용화천....!”

갑작스런 그의 말에 백결이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되물었다.

“모용화천이 천동의 기연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분명할 것이오. 모용수는 마차에서 모용화천이 모용가에서 쫓겨난 후 더 할 수 없는 광세기연을 얻었다고 했소.”

광세기연을 얻은 후 그는 원을 몰아내고 힘없고 굶주린 농민들을 위한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반원의 주축이 되었던 백련교에 가입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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