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운동 하다 죽어도 좋아요?"

저는 한때 '운동의 노예'였습니다

등록 2006.02.17 14:54수정 2006.02.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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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주석아! 뛰어!"


유아 운동 교실에서 신나게 달리고 있는 네 살짜리 조카 주석이를 보고 있노라니 저도 함께 숨차게 달리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옵니다. 2002년부터 조카 주석이를 돌보느라 지금은 운동에서 멀어졌지만 그전의 저는 의사가 걱정할 만큼, '운동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홀린 황홀한 몸짓, 에어로빅

10여년 전, 둘째아이를 출산하고 임신으로 불었던 살들이 빠지지 않아 고민하던 제가 처음 만난 운동은 바로 '에어로빅'이었습니다. 아파트 부녀회가 주축이 돼 창설한 에어로빅 강습단의 창단 멤버가 된 거지요.

빠른 리듬에 경쾌한 동작을 녹여내는 에어로빅은 예나 지금이나 주부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재미로 시작한 운동에 점차 욕심을 내기 시작한 때는 '에어로빅장의 법칙'을 알게 되면서였지요.

에어로빅장에서는 잘하는 사람은 시범 선생님과 거울이 잘 보이는 앞줄에 서고 초보자는 뒷줄로 밀립니다. 에어로빅장의 '꽃'인 앞줄 멤버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매달 바뀌는 작품에 대한 이해와 순서 암기, 매끄럽고 아름다운 동작은 물론 은근한 자리 텃새까지 무마시킬 수 있는 친화력까지 겸비해야 합니다.


이때부터 앞줄 진출을 위한 제 노력은 시작됐습니다. 남들처럼만 해서는 주목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저는 오전 9시와 10시, 저녁 8시 하루 세 번에 걸쳐 에어로빅 강습을 뛰었습니다. 그때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김수희의 '남행열차'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얼마나 개운하던지. 우리 아파트 주부팀은 시에서 연 주부에어로빅대회에 출전해 3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4년을 보내던 제가 에어로빅을 그만두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오른쪽 발목의 염좌 때문이었습니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살짝 삔 줄 알았던 발목 부상이 생각보다 오래갔고 의사는 뛰는 운동을 계속하면 안 된다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숨이 턱에 차도 운동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저는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다음에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준선수 실력을 마스터했던 저는 한 달 만에 초급반을 마스터했고 고급반으로 올라간 뒤에는 마치 돌고래인 양 좀처럼 수영장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a 오마이뉴스 마라톤 대회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습니다.

오마이뉴스 마라톤 대회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꾀가 나기도 하고 '내일은 운동을 걸러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자동으로 헬스클럽으로 직행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의 경쟁심도 꽤 작용합니다. 그렇게 맛을 들이고 나면 그야말로 운동에 '몰입'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수영장에서 보통 한 시간이면 25m 레인을 스무 바퀴 이상 도는데 1000m를 헤엄치는 셈입니다. 자유형에서 시작해서 개인혼영, 물갈퀴를 끼고 하는 핀수영까지 쉬지 않고 이어서 1000~1500m를 마칠 때쯤이면 머릿속의 산소가 희박해지는 듯 어질어질하고 멍한 상태가 옵니다. 신기한 것은 금방 죽을 것 같은 그 고통 속에서 짜릿한 희열을 경험한다는 거지요. 그걸 맛본 뒤에는 그 상태에 다다를 때까지 운동을 멈출 수 없게 됩니다.

주객전도! 운동의 노예가 되다

이게 바로 운동을 끊지 못하게 한다는, 전문가들이 마약중독과 같은 '운동중독'이라고 하는 상태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운동이 격해져 호흡이 멎을 것 같은 '죽음의 한계점'인 사점(Death point)을 지나 편안한 상태인 세컨드 윈드(Second wind)로 넘어가면 '베타엔돌핀'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평상시보다 최대 5배 많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죽음의 한계를 넘어선 제2의 호흡'이라는 의미의 세컨드 윈드에서는 유쾌함뿐만 아니라 묘한 행복감을 느끼는 '운동 무드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상태는 마약을 복용한 것과 같아 한 번 느끼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운동에 빠져들게 합니다. 오히려 운동의 종류와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어버린 거죠.

한창 운동할 때 저의 하루 일과표는 정말 빡빡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복싱 1시간, 근육운동 중심의 헬스 40분, 수영 1시간을 한 다음에는 사우나를 1~2시간 합니다. 오후 2, 3시쯤에 늦은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돌아오는 5시경에 집으로 귀가. 아이들 챙기고 남편 저녁을 차려놓은 다음 8시에 다시 조깅을 하러 나갑니다.

밥 먹고 운동을 하면 배가 아프고 옆구리가 당기기 때문에 저녁은 거의 걸렀습니다. 신기하게도 운동에 빠지면서 음식을 잘 먹지 않게 됐습니다. 워낙 아침은 커피나 우유로 해결했고 저녁은 밥 대신 과일이나 음료로 했기 때문에 점심 정도나 챙겨 먹은 거지요.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저녁이면 나가서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뛰고 거의 탈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샤워만 하고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운동으로 흥분된 상태라 누워도 잠이 오진 않았지만요.

5년 운동 뒤에 남은 건 '망가진 나'

이렇게 5~6년 정도 살았을까요? 여성이면 누구나 다달이 거쳐야 할 생리가 사라지는 일이 저에게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독한 수영장 물과 잦은 샤워 때문에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했고, 피부도 건조해져 주름과 잡티가 올라왔습니다. 처음 운동할 때는 적당히 살이 빠져 보기 좋다고도 했지만 살이 너무 빠지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기고 혈색도 나빠져 건강은커녕 병색이 있어 보인다는 소리까지 듣게 됐습니다.

사실 수영장이나 사우나장, 헬스장에서 쓰러져 실려 나가는 주부들도 적지 않습니다. 자신의 적정 운동량을 알지 못하고 무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처럼 과도한 운동 욕심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함께 운동하던 멤버 중 60대 '언니'가 있었는데 그분은 제가 하는 것에다 사이클 2~3시간을 더했습니다. 허벅지가 저의 2배 정도는 됐는데 은퇴한 남편과 종일 집에 같이 있기 싫어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아침부터 나와 저녁까지 먹고 귀가했는데 결국 사우나에서 쓰러지셨죠(남편 보기 싫어서 운동하러 나오는 나이 든 언니들을 꽤 봤는데 그분들은 찜질방까지 거친 다음 밤늦게 귀가하더군요).

놀라운 것은 다 죽어가는 것처럼 실려 나갔던 사람이 다음날이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헬스장을 찾는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치의의 조언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도 무시합니다. 내가 좋아 운동하는데 죽거나 말거나 상관 말라는 얘기지요.

과유불급! 누가 나 좀 말려줘요~

"이렇게 하다가는 운동하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협박 아니에요. 정말 운동하다 죽어도 좋아요?"

4년 전 종합건강검진 후 의사가 저에게 했던 경고입니다. 사십대 초반인 저에게는 서너 시간의 수영과 헬스, 달리기 등이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는 거였습니다.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시작했던 운동이 이제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중독 상태가 되어 건강을 위협하는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죠. 때마침 조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아이를 제가 키워야 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그 운동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지금도 운동중독이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센터로 돌아갈 시기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햇볕이 따뜻해지면 조카를 자전거에 싣고 두세 시간씩 달려 체력을 축적한 뒤 조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 다시 스포츠센터 붙박이 아줌마로 등록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의사는 뭐라고 하냐고요? 사십 대 중반의 체력과 체중 등을 고려했을 때 일주일에 두세 번씩,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천천히 걷기와 스트레칭 정도가 적당하답니다. 그 이상 욕심내면 조기폐경은 물론 관절염, 골다공증 등 노화와 함께 큰 질병을 얻게 될 거라는군요.

정말 운동하다가 죽기 싫으면 의사의 조언을 따라야겠죠? 하지만 운동에 대한 유혹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을지 저조차도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 같아서는 전처럼 심하게 운동에 빠져들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게 제어가 안 되니 문제지요.

다시 운동을 시작해도 운동의 노예가 되어 휘둘리지 않게 저도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만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변을 보세요. 이미 운동중독에 접어든 분들이 꽤 많을 걸요? 운동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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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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