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홍해에서 재난을 목격하다

인샬라의 나라, 이집트 허가다에서

등록 2006.02.20 09:03수정 2006.02.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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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나이 서른. 12월이 되니 문득 두려워졌다. 나를 위해 산 것인데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보니 내 자신이 없었다. 내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나는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아까운 이십대. 접자. 훌쩍 떠나보자. 정말 내 인생의 2막은 진실로 열어보자. 돈, 능력, 그런 겉모습 말고 내 영혼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1월 1일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안일함에 대한 공격은 극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집트, 인샬라의 나라에서. 그 아름다운 홍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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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허가다란 곳은 홍해에 위치한 관광지이다. 투명한 홍해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이빙을 하거나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 나는 아주 오래 전 이집트의 수도였던 록소(Luxor)에서 6시간에 걸려 버스를 타고 사막을 지나 허가다에 들뜬 마음으로 도착했다. 그러나 내가 접한 것은 비참한 소식. 바로 이틀 전(2월 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떠단 배가 침몰하여 1천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종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배는 수심 800미터보다도 더 깊이 가라앉아 실종자조차도 생존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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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그러나 나의 일행에게 그것은 아주 먼 얘기처럼 들렸고, 모두들 깨끗한, 투명한 홍해만을 상상했다. 이곳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기 전까지는. 문득 음식을 시켜놓고 밖을 보니 바로 건너편이 허가다 병원이다. 이곳이 사고 난 지점에서 가장 가깝고 인근병원 중에서 가장 커서 대부분의 시신들이 이곳으로 운반되어 온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시신을 공개하지도 않고 사망통보도 아주 천천히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실종자의 가족들은 병원 광장에 이렇게 앉아서 삼일째 숙식을 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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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좀 전에는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분개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슬픔을 방관한 채 주어진 휴가를 누리는 수영복의 관광객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초조하게 밥을 기다리고 있는 이 음식점에도 오늘 아침에는 굉장한 협박과 쏟아지는 돌멩이들 때문에 영업이 힘들었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여기서 선글라스를 끼고 홍해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들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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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경찰차가 보인다. 폭동을 진압하기 위함이다. 경찰을 찍으면 안 된다. 달려와서 사진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고 한다. 자세히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마음 한쪽이 우울해진다. 나는 신나게 놀 수도 없다. 썩어가는 시체 냄새 그리고 부패를 막기 위한 방부제 냄새가 진동을 하고 그 죽음의 앞에서 나는 더 이상 관광객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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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드디어 가족을 찾은 사람들, 관에 넣어 이렇게 오열하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린다. 이렇게 세워져있는 차들 안에는 사람들이 마치 생선가게의 생선들처럼 포개져서 자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렇게 고요해 보이는 차 속에서 그들은 숨죽인 채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일까. 그냥 아주 고요히 기다리고 있다.

무섭다. 낯선 무슬림들의 옷들 그리고 투박한 표정들, 슬픔. 한참 무섭다가도 나는 그들과 하나가 된다. 그들과 나의 공간 사이에 무언가 슬픔의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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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밤이 되었다. 천막을 치기 시작한다. 저기 보이는 저 천막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뜬 채 누워 있다. 천막 안에도 못자면 이렇게 길에서도 잔다. 내일이면 소식이 들릴까. 기다리는 소식이 사망 확인일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적을 믿는 것일까. 그래도 구두만큼은 깨끗하게 벗어놓고 길바닥에서 자는 이들, 내일이면 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배에 타고 있던 가족의 소식을 알고 집으로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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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이른 아침, 나는 일행을 따라 여정을 따라 홍해로 페리호를 타고 들어가고 만다. 아! 그렇게 수천 명의 생명을 집어 삼키고도 아주 고요히 태평하게 깨끗하여 감탄하고 만드는 홍해. 그래 산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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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우리는 이미 지쳤다. 이집트에서 지낸 몇 주 동안 이집트 역사, 유물들을 공부하느라 힘들었다. 그래서 일행들은 하루뿐인 이날을, 홍해의 바람을 슬프게 보고 싶지 않은가 보다. 멀리서 찍어도 물밑의 물고기가 보인다. 돌고래가 따라온다. 아주 깊은 홍해 속 빨갛게 빛을 발하는 산호초들 그 아름다움에 나는 그냥 넋을 놓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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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솔지

요즘은 참으로 재난, 참사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로만 들었지 그 슬픔을 몸소 본적이 없었다.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다. 더군다나 수천 명이 숙식하던 광장의 삶의 내음과 홍해에서 건져온 죽음의 향기가 어우러질 때 그리고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고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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