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으로 알려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오전 웃으며 의원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2일 열린 한나라당 당원 행사에서 "5억 원을 김정일 개인 계좌로 주면서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 주니까 (DJ는)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한 게 6·15선언 아니냐"는 말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깎아 내리기 위해 치매 환자 운운한 것도 대단히 놀라웠지만, 한 나라의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얼마 전까지 제1야당의 대변인으로 계셨던 분이 치매 노인을 '아무런 생각이나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부류'로 매도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 의원께서 '장애인처럼 얼어서 서 있었다'는 표현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분명 장애인을 폄하하는 의미였겠지요. '치매 노인처럼'이란 표현 역시 치매 노인을 폄훼하는 말임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전여옥 의원, 당신이 치매를 아십니까?
전여옥 의원께 묻고 싶습니다. 치매를 아십니까? 치매 노인이 어떤 삶을 살고 계신지, 그 가족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 의원은 아십니까? 만약 알고도 남을 폄훼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면 이는 더욱 용서하지 못할 겁니다.
올해 여든 살이 되신 저의 엄마는 지금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올해로 치매 7년차이니 전 의원의 표현대로 '치매 노인'이십니다. 치매 7년에 접어든 저희 엄마는 순간순간의 기억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 의원께서 함부로 말하듯 아무 생각 없는 쓸모 없는 노인이 아닙니다.
치매에 걸린 지금도 어머니는 "조금 손해 보고 살아라, 손해 본 사람은 다리 뻗고 자지만 남에게 해 끼친 사람은 두다리 못뻗고 잔다"는 말씀을 하실 뿐만 아니라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철학적인 가르침도 주십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재산이 30만 원이라는 '명언'을 했을 때 "그럼 감옥 보내야지"라는 명쾌한 답을 내리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치매 걸린 엄마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치매에 걸린 후에도 제게 너무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신 어른이십니다.
사람의 지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많이 배우고 배우지 못함을 떠나, 한 사람이 살아온 수십 년간의 삶의 연륜과 삶의 노정은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노인에게도 똑같이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치매는 '아이가 되어가는 병'일 뿐
많은 이들이 치매에 걸렸다고 하면 오줌 똥 가리지 못하고 판단의 능력이 아예 전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매 환자에게도 기쁨과 슬픔은 물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한 인간의 지혜가 그분의 잠재력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치매는 병일 뿐입니다. 바로 '아이가 되어가는 병'이지요. 전 의원께서는 그 무엇 때문에 불치병에 걸린 노인을 운운하며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고 했습니까?
저는 전여옥 의원과 비슷한 연배로 아직 노인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치매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7년 세월 치매 엄마와 살면서 치매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노인·여성 문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치매는 병이라는 것, 조금 어렵지만 주변의 사랑으로 더 나빠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치매 환자와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 등등 너무나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의 대가로 저는 삶의 일정 부분을 버려야 했습니다. 많은 치매 가족들이 자신의 삶을 양보하고 희생해가며 치매 부모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치매 부모를 살아가는 많은 치매 환자 가족들에게 전 의원의 말은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전여옥 의원께서는 치매 노인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전여옥 의원의 의식 속에는 치매 노인은 '망년 든 노인네'라는 등식이 있는 듯합니다. 국민의 삶을 살펴 아픔과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이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사회의 약자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일삼는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치매노인이 엄마가 했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