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말이라고 쉼터를 찾아온 친구들을 다독여 오랜만에 베란다 청소를 했습니다. 청소를 하려고 한겨울 동안 방치해 놨던 쉼터 베란다에 놓여 있던 화분들을 보니, 자라야 할 식물들은 없고 담배꽁초에 가래침, 쓰레기들만 수북이 있었습니다.
화분에는 작년에 심었던 선인장, 토마토, 장미의 흔적이 있었고, 겨울을 날 줄 알았던 귤 묘목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죽어 있었습니다. 일단 지난겨울의 흔적들을 없앤 후, 작은 화분들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화분들에 꽃을 심을까 하다가 꽃은 묘목을 사다가 나중에 심기로 하고 우선 새싹 무씨를 심기로 했습니다. 굳이 새싹을 잘라서 먹겠다는 생각보다는, 자라는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a
▲ 새싹 무씨를 심은 화분들이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 고기복
화분의 흙을 평평하게 한 후, 그 위에 묘목용 흙을 뿌린 후 무씨를 골고루 잔뜩 뿌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운 흙을 뿌려서 덮고는 약간의 물을 주는 것으로 봄단장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무씨를 뿌리는 걸 본 친구들 중에, 시골에서 자란 수나르또가 "목사님, 농사지어보지 않았네요. 씨는 그렇게 많이 뿌리면 못 써요"라고 훈수를 두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마당에 농사를 지어 보지 않았냐는 말에 웃음이 났지만, 뿌리를 먹기 위해 심는 것이 아니라, 새싹을 먹기 위해 뿌리는 거라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무는 뿌리를 먹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수나르또는 새싹을 잘라 먹기 위해 씨를 뿌린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러자, "그럼 나중에 토마토랑 고추도 그렇게 심어요?"라고 옆에서 누군가 거들더군요. "만일 토마토나 고추를 심고 싶으면, 나중에 시장에 가서 묘목으로 사면 돼"라고 말하자, 말릴 새도 없이 "오늘 장날인데 가서 사 올게요"라고 하며 잽싸게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묘목이 나오진 않았을 텐데 하면서도 혹시 화분에 심을 만한 것을 사올 수도 있겠거니 하고 놔두었습니다.
그리고 봄단장을 마친 베란다 벽에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써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천안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인상 깊게 보고 찍어 두었던 사진을 인쇄해 붙이려고 했습니다. 사진 속 팻말에는 '황금덩어리라도 놓고 가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말로 쓴 안내문이 호소력이 없을 것 같아 인도네시아어로 간단하게 써 붙였습니다.
a
▲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직접적인 말보다 더 와 닿는다 ⓒ 고기복
봄단장 말미에 한 일 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쉼터를 찾는 친구들이 쉼터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게 하지 못하니까,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꽁초를 화분에 버리는 경우가 많아 늘 주의를 주는데도 변화가 없어 글로 써 붙인 것입니다.
친구들은 써 붙인 글을 보고 멋쩍은지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사실 청소를 같이한 친구들은 달리 문제가 있어 쉼터를 찾은 친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 활동을 하는 친구들로 주말에 놀러 와서 쉼터에서 알아서 청소도 하고, 쉼터 규칙들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청소를 끝낸 후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합니다.
"여기 토마토도 자라고, 고추도 자라면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 없을 거예요."
"가래침은 어떨까?"
"그것도 글로 써 붙이면 좋은데"
"담배 안 피우면 가래침도 없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잘 말해서 이런 글 써 붙이지 않아도 되도록 해."
오랜만에 보드라운 흙을 만진 주말 오후, 볕이 잘 들지 않는 베란다지만, 가지런히 놓인 화분을 보니 봄이 한껏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