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에 대한 문제가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 패소 판결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오마이뉴스 안홍기
- 검찰 송무부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검사의 업무가 수사인 것은 맞지만, 공익 대표자로서의 역할이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서 법률상 대표자는 법무부 장관으로 규정돼 있고, 장관이 법무부 직원이나 각 청 검사·공익 법무관을 소송 수행자로 지정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검사가 국가 송무를 진행하는 것이고, 행정기관이 대상이 되는 행정소송도 법무부 장관이 지휘하도록 돼 있다."
- 1990년대 들어 친일파 후손들의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이 늘어난 배경은 무엇인가.
"대법원의 판례 변화가 있었다. 일제로부터 소유권을 확정받아 토지조사부에 올려놓는 것을 사정이라고 한다. 유신헌법 이전에는 사정의 효력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사정의 효력이 반드시 우월한 것은 아니라며 애매하게 배척했다.
그러다 1986년 대법원이 "토지조사부의 토지소유자로 등재되어 있는 자는 사정 내용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상대방이 입증하지 못하는 한 토지소유자로 확정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제의 사정은 1920년대고, 소유권보존등기는 1950년대 이후 일이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물권변동도 많았고, 한국전쟁 등으로 관련 서류가 많이 소실됐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사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바람에 일제시대 때 토지조사부상 사정받은 것을 이유로 조상 땅을 찾겠다는 소송이 늘어난 것이다."
-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례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대법원 판례가 꼭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국가라도 일제시대에 누군가 정당하게 취득했고 후손에게 내려왔는데 공부가 소실됐다고 해서 무조건 국가가 토지를 가져야 한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당시 대법원의 판례는 원고가 친일파가 아니었다. 친일파 후손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 한 건도 없었다."
- 대법원은 아니지만 1992년 이완용 후손이 낸 소송에 대해 서부지법은 "친일파 후손이라고 해서 소유권을 부당하게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결했는데.
"당시 피고 측은 '이완용 후손이 재산회복을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의관념에 반한다, 민법상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판부는 '재산권 제한에 대한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정의관념만 내세워 문제삼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피고가 패소해 이완용 후손이 시가 30억원 상당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회복했다.
이 소송은 국가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사인간의 소송이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공익적인 측면이 강하다.
2001년 친일파인 이재극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재판부는 헌법정신을 언급하면서 '반민족 행위는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 사건 소는 정의와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기 때문에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민족감정이나 국민정서 등 추상적인 사유로 특정 범주의 사람이 청구하는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다'며 이를 다시 파기환송했다."
- 담당했던 2004년 친일파 이근호 후손의 토지소송은 기존의 '재산권보호 우선' 판례를 뒤집는데 분기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소송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던 계기는.
"법무관 시절 1년간 일제시대 토지 반환소송 업무를 전담하면서 속이 많이 상했다. 자료도 옛날 것이고 위조된 흔적도 보이는데, 그것을 밝힐 만한 단서가 없었다. 많게는 수만 평의 땅을 그냥 내주고 있었다.
그런 관심이 많은 터에 2004년 8월 공판송무부를 지원했고, 2개월 뒤 친일파 후손이 낸 소송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뒤집어야겠다, 뒤집진 못하더라도 친일파 재산 문제가 입법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가패소 판결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
-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민법의 일반원칙인 신의칙 위반 내지는 소권남용, 권리남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논거를 개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판결을 연구해보니 이재극 후손이 낸 소송 1심판결에서 재판부가 헌법정신을 언급했다. 그것이 계기가 됐다. 속된 말로 헌법정신이라는 얘기가 나오니까 '이거 되겠다'는 느낌이 딱 오더라.
그동안은 친일파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됐다. 그러다보니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법원에서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국회에서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에 친일파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규정돼 있었다. '을사조약, 한일합병조약, 그밖의 국권을 침해하는 조약을 체결하거나 조인 또는 이를 모의한 행위,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행위'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패소한 사건은 (원고 조상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경우다. 적어도 친일파라는 개념은 똑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가 취득했던 재산을 찾겠다는 후손들의 주장을 어떻게 배척할 것인지 검토했다. 현행 헌법의 입장은 '친일파 재산의 몰수와 국유화'를 건국강령으로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은 헌법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