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 4~5억, 기초의원 5천~1억
돈은 사과·주스·곶감·고등어상자로 운반"

[한국의 검사들 ⑤] '선거전담' 서울지검 이현철 검사 1

등록 2006.05.25 13:44수정 2006.05.26 10:12
0
원고료로 응원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이현철 검사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이현철 검사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초단체장 공천권을 따내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5·31 지방선거 관련, 한나라당 김덕룡·박성범 의원 공천헌금 사건 등을 수사하고 있는 이현철(42·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가 지난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들려준 '공천헌금의 세계'는 놀랍기만 하다.

이 검사는 "현재 적발된 사례를 중심으로 보면 기초단체장의 경우 (공천헌금이) 4억원에서 5억원 가까이 되고, 시·도 의원 등 기초의회 의원은 한 단계 낮은 5천만원에서 1억원 정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검사는 "(공천헌금 규모를) 정형화 시키기는 힘들다"면서도 "적발된 사례를 중심으로 볼 때 당선이 확실하다 싶은 지역은 5억원, 당선이 불분명하다 싶은 지역은 2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김덕룡 의원의 부인 김모씨는 공천 희망자로부터 현금 4억3901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박성범 의원의 부인 신은경씨도 모피코트와 고급양주, 핸드백 등 1400여만원 상당의 고가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검사는 "이번 사건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며 "공천헌금을 누가 많이 내느냐에 따라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고 엄정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에서 비롯"


공천헌금 뿐만 아니라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난 3회 지방선거와 비교해 혼탁과열 양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현재 2196명의 선거사범이 입건됐고, 그 중 139명이 구속됐다. 3회 지방선거 때 같은 시기와 대비해서 입건자수는 72.61%, 구속자수는 15.8% 증가한 것이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도 1620건에 달한다.

선거 사범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 이 검사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른 엄격한 규제, 당내경선 관련 새로운 범죄유형 등장, 공천 관련 금품수수 사범 다수 발생 등이 원인"이라며 "특히 지방의회 의원의 유급화에 따른 예비 출마자들의 관심 증대 등 당내경선 이전부터 과열, 혼탁 선거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유형별로는 금품수수 사범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검사는 "최근 김제시장 공천 관련 공천헌금은 사과상자 2개로 옮겨졌고, 서초구청장 공천 관련 공천헌금은 주스상자 7개, 중구청장 공천 관련 공천헌금은 약상자 등을 이용했다"며 "지방특산물 상자인 안동간고등어상자, 상주곶감상자 등 다양한 (금품) 운반 방법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큰돈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은밀한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연구하다 보니 차떼기, 골프가방, 사과상자, 약상자 등 가지각색의 운반방법이 나온다"며 "현금에서 달러로 부피를 작게하거나 고가의 명품을 전달하는 등 갈수록 교묘한 방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열혼탁 양상이 심화되자 전국 검찰청 선거사범 전담수사반은 선거일까지 24시간 청내 대기 총력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고, 각종 선거사범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다.

한편 이현철 검사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2002년 농·수·축협 조합장 선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 2004년 6·5 보궐선거, 2005년 서울시교육감선거 등 각종 선거시 선거전담 검사로 활약, 큰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열린우리당 봉천동 당원모집 사건 수사를 맡기도 했다.

관련
기사
- [한국의 검사들 ①] '공안통' 김병현 검사

다음은 이현철 검사와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피의자의 인권 보장만 강조... 수사는 어떻게 하나?"

오마이뉴스 남소연
- 정상명 검찰총장이 선거전담 부장검사 회의에서 불법 선거사범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3월 6일부터 선거상황실을 설치하고 선거사범전담수사반을 편성했다. 특히 지난 16일부터 선거일까지 24시간 청내 대기 총력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또 각 선거관리위원회와 정기적 간담회 개최 등으로 긴밀히 협조하여 정보교환 및 휴먼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초동단계에서부터 적절한 증거수집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있다. 중요 사건 발생시 부장검사를 중심으로 팀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 선거사범 수사가 다른 수사와 달리 더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선거사범 중 기부행위 사건은 뇌물 사건과 동일하면서도 뇌물 사건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수사다. 뇌물 사건은 계속적으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반복적 뇌물공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좌추적 등 다양한 수사방법으로 적발할 수 있다. 반면 선거사범은 선거철에 단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고, 공소시효가 단기(6개월)여서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 수집이 어렵고, 기부행위를 하는 자와 받는 자는 일정한 연고가 있어 인정에 얽매여 사실대로 이야기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현재까지 국민들 인식이 '신고하거나 자백하는 것은 의리를 저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아가 그 지역에서 아주 떠나야 한다는 사고가 뿌리깊이 박혀 있다. 사실 신고를 하면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포상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 때문에 신고를 하거나 자수하는 사람이 적다. 개인적으로 공직선거법에 미국과 같이 허위진술죄 등 사법방해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국민들이 자수나 신고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 허위진술죄는 피의자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지 않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허위진술죄 도입을 논의했다가 '아직은 이르다'며 거부했다. 사실 우리나라같이 인정에 얽매인 상황에서 허위진술죄를 도입하면 문제는 있다. 모든 사람이 허위진술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내 친척, 이웃, 친구들이기 때문에 유리한 진술을 하게 된다. 결국 더 많은 범법자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나 그런 문화가 바뀌어져야 하고, 거짓말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하는 게 맞다.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부분만 자꾸 강조하면 수사는 점점 어려워진다. 수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상태에서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렇게 인권 보장 측면만 중요시하면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피의자의 인권보장과 아울러 허위진술죄 등 수사권보장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직선거법에 이러한 규정 도입이 필요하다."

- 4회 지방선거 사범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정된 공직선거법의 가장 큰 특징은 기부행위 제한 기간을 없앴다는 것이다. 법 개정에 따른 엄격한 규제, 당내경선 관련 새로운 범죄유형 등장, 공천 관련 금품수수 사범 다수 발생 등에 의해 선거사범이 증가한 것이다. 당내경선과 관련 당비대납, 당비보전, 공천비리 사범 등 새로운 유형의 선거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특히 지방의회 의원의 유급화에 따른 예비 출마자들의 관심 증대, 지방의원 중선거구제 및 기초의원 정당추천제 도입에 따라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인식 등으로 인하여 당내경선 이전부터 과열, 혼탁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 선거사범 유형을 간단하게 설명해달라.
"대표적 선거사범은 역시 금전선거사범이다. 공천헌금 사건도 결국 기부행위에 해당한다. 그 다음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불법선전, 허위사실공표, 후보자비방행위 등 사이버선거사범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불법 선전사범 등도 대표적 선거사범이다. 새로운 선거범죄 형태로는 당원모집 관련 당비대납 등 금품제공행위, 당내경선시 경선 선거인에 대한 금품제공행위 등이 있다. 공무원의 선거관여 및 공직수행 빙자 불법선거운동, 선거사무관계자 폭행 등의 선거사범도 빈발하고 있다."

- 공무원의 공직수행 빙자 불법선거운동의 경우 적발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과거에 경기도에서 홍보물을 만드는데, 통상적인 발행 분량을 훨씬 넘어 발행하면서 도지사의 업적을 홍보하는 내용 등이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선거법 위반이고 처벌받는다. 그러나 현직 단체장의 프리미엄이라고 할까?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기도 곤란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곤란한 경우가 많고, 또 그 점을 애매하게 이용한다. 위반의 정도가 심하면 모를까, 딱 집어내기 힘들다."

- 선거사범 수사를 하면서 가장 악질적인 사례나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다면?
"자기부죄금지 특권(자신에게 형사상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을 권리)이 있다고 하지만, 금품 살포 결과를 장부에 기재하고도 계획에 불과하다고 부인하는 악질적인 사례가 있었는데, 이는 수사기관의 인력을 낭비하는 결과가 되고 본인에게도 형이 중하게 선고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 선거사범 수사는 다른 사건 수사와 수사 방법 및 채증 요령이 차이가 있나.
"기부행위 등은 돈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특수수사 기법이 많이 활용된다. 계좌추적을 하거나 증거물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 등이 필요하다. 강력수사의 기법이 동원하기도 한다. 과거에 선거사범은 선거 전날에 이르러 일제히 돈을 뿌렸다. 그러면 현장을 덮쳐야 한다. 그야말로 도박사범 덮치듯이 인력을 많이 동원해서 순간적으로 덮쳐서 신속하게 범인들을 검거하고 조사해야 한다. 선거사범 수사는 모든 수사 기법이 총동원된다고 보면 된다."

"현금에서 달러로 부피를 작게 하거나 고가의 명품 전달"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 '차떼기'라는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금품을 운반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최근 김제시장 공천 관련 공천헌금은 사과상자 2개로 옮겨졌고, 서초구청장 공천 관련 공천헌금은 주스상자 7개, 중구청장 공천 관련 공천헌금은 약상자 등을 이용했다. 그밖에도 지방특산물 상자인 안동간고등어상자, 상주곶감상자 등 다양한 운반방법이 나타나고 있다. 또 선거구민에게 금품을 살포시 중간책임자는 비누곽, 편지봉투를 많이 활용한다.

결국 큰 돈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은밀한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연구하다보니 차떼기, 골프가방, 사과상자, 약상자 등 가지각색의 운반방법이 나오고, 현금에서 달러로 부피를 작게하거나 고가의 명품을 전달하는 등 갈수록 교묘한 방법으로 발전하고 있다."

- 공직의 지위에 따른 공천헌금 규모는 대략 어느 정도인가.
"글쎄, 현재 적발된 사례를 중심으로 보면 기초단체장이 4억원에서 5억원 가까이 될 것이다. 시도의원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을테고, 기초의회 의원은 5천만원에서 1억원 정도 할 것이다. 특히 적발된 사례를 중심으로 볼 때 당선이 확실하다 싶으면 5억원, 당선이 불분명하다 싶으면 2억원이 될 수도 있다. 꼭 정형화 시키기는 힘들다."

- 한나라당 김덕룡, 박성범 의원 공천헌금 사건을 수사했는데, 이번 사건이 다른 선거사범과 다른 특징이 있거나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수사중인 사건이어서 구체적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원칙론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공천헌금 사건은 공직선거법상 다른 기부행위 사건보다 액수가 거액이란 사실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일꾼을 뽑는 선거인데 공천헌금을 누가 많이 내느냐에 따라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는 없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 처벌이 필요하다."

- 공천이 당선인 지역구 예비후보자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당사자 모르게 악착같이 금품을 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처리하나.
"기부행위는 최소한 그게 돈인 줄 알고 받을 의사를 가지고 받아야 기소가 된다. 전혀 몰랐다면 처벌할 수 없다. 자기가 없는 사이에 가정부 등에게 선물이라고 맡겨두고 갔고, 확인해보니까 돈이어서 바로 신고를 했을 경우, 그 사실이 입증만 된다면 처벌을 안하는 게 당연하고 오히려 칭찬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방적으로 돈을 떠맡기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과연 상호간의 의사합치가 없이 일방적으로 돈을 가져다 놓을 수 있을까?"

- 선거사범들의 범죄 은폐 유형도 다양할 것 같은데.
"가장 대표적 사례는 상호간 말을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면 A 후보자가 선거구민 모임에 참석하여 식사를 제공한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가 시작되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일정액수의 회비를 모아 식대를 계산하였다고 말을 맞추고, 조사시에는 모임 참석자들이 하나같이 '내 돈 내고 밥도 못 먹느냐'는 식으로 발뺌을 한다.

그 다음으로 증거물 폐기, 컴퓨터 파일 삭제 등의 방법으로 범죄를 은폐하고, 재판과정에서는 새로운 증인을 만들어 피고인의 변소에 부합하는 증언을 하여 위증을 하는 방법으로 범죄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에서는 범죄 은폐 전에 전격적 압수수색 또는 관련자들을 일제히 소환 조사하는 방법으로 대상자들이 말을 맞추기 전에 신속히 수사를 하고 있다."

- 선거전담 검사로서 유권자들에게 어떤 후보자를 선택하라고 당부하고 싶은가.
"진정으로 정치할 의사가 있는 후보자라면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신이 있어야 된다. 또 선출직에 당선된 사람들은 직업, 직장이라기보다는 국민과 주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리로 생각해야 한다. 후보자가 선거운동기간 중 주민들을 대하듯이 지역주민을 섬기고, 봉사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기본적 요건은 충족된 후보자가 아닐까? 그 다음으로 공약사항을 꼼꼼히 따져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와 지역발전에 기여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언론기관에서 선거사범 예방활동에 앞장 서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홈페이지 선거범죄 신고센터(seoul.dpo.go.kr)나 신고전화(국번없이 1301+22)를 이용해 많은 신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당부드린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