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의 구속... 지난 2003년 2월 22일 저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주)SK 회장이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서울지검을 나서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 당시 재계 서열 3위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을 직접 심문하기도 했는데, 조사태도 등은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최 회장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직접 조사를 하고, 조사 끝난 다음엔 사적인 대화도 많이 했는데… 굉장히 조용하고 점잖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있는 재벌 2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재벌 2세하면 거들먹거릴 수도 있고, 남에 대한 배려도 적고,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나. 그런데 최 회장에 대한 조사를 하루만 한 것이 아니니까 그 사람의 품성을 느낄 수 있었다. 선대 회장이 상당히 교육 부분에 많이 신경쓰신 것은 느낌을 받았다."
- 당시 SK 분식회계 사건 수사로 결국 최 회장을 비롯해 손길승 회장까지 구속했고, 이후 SK그룹은 지배구조 등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주임 검사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수사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과정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때 우리가 SK에 대한 수사를 했을때 혹자는 SK 그룹이 망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 이후에 저 개인적으로나 수사팀에서 SK그룹이 잘 되기를 기원하고, 잘하고 있는지를 계속 봤다. 그래야 저희 수사가 제대로 된 의미의 수사가 되는 것이니까.
결과적으로 SK 수사에서 가장 큰 수혜를 누린 것이 어딜까? 결국 SK이고, SK 최태원 회장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근거도 있다. 첫째 주가다. (주)SK 주가가 결국 SK 그룹을 대표하는 주가인데, 우리가 수사할 즈음에 주당 6000원이었다. 지금은 6만원 정도 한다. 10배 정도 올랐다. 소버린이라는 외국자본이 들어와 지분 경쟁 때문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10배까지 오르지는 않는다.
그 얘기는 뭔가. 그룹의 분식회계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분식에서 회수한 금액이 1조5505억원정도 였는데, 분식을 해결함으로써 오히려 투명한 회사가 됐고, 신인도가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소버린이 빠져나간 뒤에도 주가가 그대로 있는 것 아닌가. 의사입장에선 굉장히 잘된 치료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봐도 최태원 회장은 그룹의 분식회계가 해결됐기 때문에 집단소송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나중에 보니까 사회봉사 활동도 굉장히 많이 하더라."
"SK 수사할 때 그룹 망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나"
- 최근 현대차 수사와 관련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이 정 회장의 입국을 종용하면서 "대기업 수사는 하면 할수록 혐의가 늘어난다"고 했는데, 많이 해본 입장에서 정말 그런가?
"모든 수사가 열심히 하면 (혐의는) 늘어날 수 있지 않겠나. 수사는 수사자와 피조사자 사이에 형성되는 인간적인 네트워크의 일종이다. 대기업 회장이라 어느 정도 믿어서 출국금지도 안 시켰는데, (출국을 했으니) 서로의 기본적인 예의를 안지켜버린 것이 되는 것 아닌가."
- SK 수사 당시에는 최 회장에 대한 출금 조치를 했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사건은 어차피 총수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였다. 비자금 수사는 위로 올라가봐야 알지만, 우리 수사는 총수가 당사자였다. 기업의 부분적인 비리가 아니라 총수 개인의 불법주식거래 당사자니까, 본인이 모를 가능성은 없지 않나."
- 재벌이나 기업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실제 기업측이나 지인들로부터 로비가 있지 않나?
"중요 사건에 소위 말하는 로비가 있든 부탁이 있든 법률적인 설명이 있든, 당연히 있다."
- SK 수사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찰이 대기업과 재벌그룹 수사에 한계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사건은 사실은 수사한 검사가 속사정을 제일 잘 안다. 검사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에서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부분과 수사하는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많이 차이가 있다. 외부에서 우리를 좋게 봐서 검사는 수사하면 똑딱똑딱해서 다 자백하고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정말 국민에게 보여지는 조금한 성과를 얻어가기 위한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
고민과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많은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성과가 안나왔다는 것을 가지고 재벌에 굴복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과가 부족한 것만 가지고 재벌에 약한 것 아닌가. 이제는 삼성에는 약하고 어디에는 강하다고 구분해서 얘기하더라. 이렇게 되면 너무 결과만 놓고 이야기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참 억울하다."
- 외부에서는 과정을 알 수 없고, 어차피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일이라는 것이 밸런스(형평성)에 맞게, 상황과 타당성에 맞게 해야 한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봐라. 과거 몇 년 전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좀 미흡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수용할 수 있겠지만, 많이 변했고, 검사들도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하고, 내부 시스템 자체도 압력이나 로비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먹힐 수 있는 구조가 안된다. 내부도 전향적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그 부분은 전혀 평가가 안되고 딱 결과만 놓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검사로서 섭섭할 수 있다."
- "검찰이 경제를 걱정하면 수사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검찰이 대기업이나 재벌그룹 수사를 하면서 '국민 경제'를 걱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제를 생각하면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을 우선시 생각해야 한다. 항상 대기업 수사를 하다보면 경제 문제가 얘기 나온다. 그 쪽이 방어하는 논리인 경우가 많다. SK 수사 때도 일각에서는 SK그룹이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SK 그룹이 망했나. 잘 하고 있지 않나.
원칙은 그 위법성이나 범죄 행위가 갖는 무게, 파급성 등을 보고 거기에 맞는 처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를 전혀 생각 안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선후 관계가 있는데, 그것이 흔들리지 말자는 것이다."
- 재계에서는 검찰에 대해 특정기업을 겨냥한 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하곤 한다. 이번 대검 중수부의 현대차 수사에 대해서도 그런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표적수사는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전제가 틀렸다. 밖에서는 검찰이 맘만 먹으면 저 기업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업정도 되는 곳의 범죄 행위를 찾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대 전제가 우리가 아무나 수사해서 비리를 꺼낼 정도의 증거를 항상 가지고 있으면 그런 말이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까 말했듯이 SK 그룹도 그런 계기나 고발이 있었으니까 가능했지, 평소에 들고 있다가 갑자기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상태가 안된다. 전제가 안되니, 표적수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업 투명성은 나아지고 있지만, 기업인들은 못 따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