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잃은 기차들의 쉼터 철도박물관

[여행] 증기기관차부터 KTX까지... 철도박물관을 가다

등록 2006.02.28 10:00수정 2006.02.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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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는 화창한 봄날을 맞이하는 주말이라며 꽃망울 터지는 듯한 봄소식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겨울잠을 깨어나 막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개구리처럼 일요일 오후가 되서야 굼뜬 동작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멀리 가기는 그렇고 가까운데 어디 없을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경기도 의왕에 있는 철도박물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철도박물관 입구, 뒤 편으로 옛 무궁화 객차가 있습니다.
철도박물관 입구, 뒤 편으로 옛 무궁화 객차가 있습니다.문일식
철도박물관은 구한말 우리나라에 철도가 들어선 때부터 현실화된 시베리아 횡단철도, 더 나아가 철도의 미래상을 제시해 주는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 들어선 아이들이 저마다 신나서 열차사이를 열심히 뛰어다니며 웃음 짓기 바쁘고 어른들은 어렸을 적, 그리고 오래전 자신들이 보았던 열차들의 흔적을 찾아 구석구석 세심하게 둘러보기도 하고 쓰다듬으면서 오래전을 회상하는 듯했습니다.

의왕역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박물관입구를 통과하는 정면 멀리에는 철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아놓은 박물관 건물이 자리 잡고 있고, 왼편 너른 야외전시장에는 증기기관차부터 근래에도 사용되었던 열차의 원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국 조지 스티븐슨이 최초로 개발한 로코모션호 모형
영국 조지 스티븐슨이 최초로 개발한 로코모션호 모형문일식
기관차의 시초는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이 만든 로코모션호가 세계 최초이며, 아울러 1825년에 세계최초로 영국에서 기차가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후 74년이 지난 후인 1899년 노량진~인천을 잇는 경인선이 그 효시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는 아니겠지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카 161호 증기기관차였습니다. 증기기관차는 우리나라에 철도가 보급된 이래로 1967년까지 운행됐고, 6·25때 들어온 디젤기관차로 그 역사는 이어집니다. 어렸을 때 유명한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가 문득 떠오르면서 생전 타보지도 못했던 증기기관차에 대한 향수를 더듬어봤습니다.

초등학교 때 통학할 당시 타고 다녔던 전동차로 당시 경원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통학할 당시 타고 다녔던 전동차로 당시 경원선이었습니다.문일식
그 옆에는 70년~80년대를 음미했던 디젤전기동차가 증기기관차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 디젤전기동차는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는 기차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의정부 위에 있는 덕정에서 서울 면목동까지 통학을 했는데, 통학수단으로 이 기차를 탔습니다.

향수가 물씬 풍겨났던 비둘기호 객차 내부
향수가 물씬 풍겨났던 비둘기호 객차 내부문일식
성북역에서 용산까지의 국철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객차와 운행부가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독특했던 기차였고, 맨 앞뒤 칸이 이 열차였기 때문에 맨 뒤 칸 운전석에 앉아서 통학했던 기억도 납니다. 가운데 객차를 타게 되면 창문을 위로 올려놓고 머리를 내밀어 맘껏 바람을 맞았던 기억도 납니다.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수인선의 협궤열차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수인선의 협궤열차문일식
야외전시장에는 수인선이라 불리던 수원~인천을 다니던 미니열차 즉 협궤열차도 있었습니다. 이 열차는 소래포구를 드나들던 열차로 지금은 월곶에서 소래포구로 걸어 다니는 철길이 바로 이 협궤열차가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타고 다녔던 귀빈객차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타고 다녔던 귀빈객차문일식
또한 귀빈열차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에 내려갈 때 타고 다니던 열차의 객차로 내부에는 회의실, 침실, 주방과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어서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 전용기쯤 될 듯합니다.

시간이 참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최고의 기차로 여겨졌던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이제는 철도의 시공간에서 사라진 비둘기호와 통일호를 대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KTX가 생긴 때문일 겁니다. 더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KTX가 보통열차가 되는 그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덩치가 우람해서 인상에 남았던 파시5 23호 증기기관차
덩치가 우람해서 인상에 남았던 파시5 23호 증기기관차문일식
야외전시장 뒤쪽으로 더 가면 증기기관차중에서도 가장 규모도 크고, 위엄 있어 보이는 파시5 23호가 서 있습니다. 날렵하게 뻗은 몸체하며, 검은 기운으로 감싸고 있어 마치 기적소리 크게 울리며 떠나갈 듯했습니다. 증기기관차하면 몸체가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커다란 모습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카' '파시' '혀기' 등 기차의 명칭에 대해 매우 궁금했는데, 미카는 황제, 파시는 평화, 혀기는 협궤열차, 모갈은 거물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 장단역에서 폭격을 맞은 채 그대로 있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 장단역에서 폭격을 맞은 채 그대로 있답니다.문일식
박물관 건물 옆에는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장단역에 놓여져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 모형이 세워져 있습니다. 1950년 마지막날 개성에서 서울로 가다가 공습을 받고 50여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폐허가 된 채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78호로 지정되었고, 포스코에 의해 부식방지처리 등을 거쳐 보존된다고 합니다. 아울러 박물관내에 있는 모형은 지난해 포스코가 CF촬영을 할 때 제작한 것으로 기증되어 이곳에 놓여졌습니다.

박물관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박물관 입구의 첫 모습은 우리나라에 철도가 도입되던 1897년 경인선 기공식 때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철도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사진입니다. 1층은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인 경인선을 시작으로 경의선, 경부선, 군산선, 호남선, 경원선 등의 순서로 개통되게 되는데 개통과 맞물려 일제치하의 수난과 수탈 그리고 희생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역무원이 표를 끊을 때 사용하던 개표기로 날짜를 새기던 기계입니다.
역무원이 표를 끊을 때 사용하던 개표기로 날짜를 새기던 기계입니다.문일식
또한 객차와 화차, 기관차가 세월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2층에는 철도의 역사적 산물을 전시해놓은 공간으로 철도 민속전시관이라 해도 과인이 아닐 겁니다. 2층을 돌아보면서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아버지는 철도공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하시다 몇 해 전 명예퇴직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곳에서 보았던 많은 물품들을 보게 되니 더욱더 반가웠습니다.

미카3 129호 증기기관차 바퀴의 모습.
미카3 129호 증기기관차 바퀴의 모습.문일식
제복을 입고, 무궁화가 둘러진 모자를 쓰고, 열차를 향해 깃발을 흔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아련합니다. 철도박물관은 어른들에게는 힘찬 기적소리와 함께 출발했던 증기기관차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를, 어린이들에게는 기차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재미와 호기심을 안겨줄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족단위의 가벼운 외출장소로 적격인 것 같습니다. 일요일 오후, 가까운 곳을 찾아 나섰던 시간은 나름대로 유익했고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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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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