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77회

등록 2006.02.28 08:10수정 2006.02.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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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모용가의 가주가 아닌 모용화궁 개인으로 말해도 역시 같소?”

구효기는 집요했다. 간단하게 모용화궁을 제압하면 그만인 것을 그가 왜 이리 집요하게 모용화천과의 관계를 캐묻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무리 모용화궁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음은 분명했다.


“..........!”

모용화궁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에 복잡한 기색이 떠오른 것으로 보아 그의 머리 속으로 많은 상념이 스치는 듯 했다. 그러다 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나와 같이 부친의 피를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소. 어쩌면 내 형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요.”

그 말에 좌중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미 뻔한 사실이 아니냐는 의미였다.

“만나 본 적이 있소?”


재차 이어지는 구효기의 질문에 모용화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이미 마음을 결정한 듯 조금 전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두 번 만난 적이 있소.”


그는 더 이상 부언하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 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엿보였다.

“모용가의 가주로서였소? 아니면 혈육으로였소?”

“두 번 모두 모용가의 가주의 자격으로 본 가에서 그를 만났소.”

좌중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띠었다. 왜 구효기는 저렇듯 모용화궁에게 자세하게 묻고 있는 것일까? 사실 어떤 연유로, 또한 어떤 자격으로 만났던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 이 안에서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몽화 하나였다. 이 모든 것이 몽화가 부탁한 일이었다. 잠시 말을 끊었던 구효기의 미간이 좁혀지더니 다시 불쑥 물었다.

“모용화천이 도대체 누구요?”

“...........!”

모용화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다문 채 구효기를 바라보았다. 아주 담담한 표정이었는데 정말 모르기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대답하기 곤란한 것인지 분간해 낼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구효기와 모용화궁의 눈빛만이 허공에서 엉켜들 뿐이었다. 그러다 모용화궁이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모르오.”

아주 애매한 대답이었다. 처음으로 구효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몽화를 한 번 보았는데 무슨 뜻인지 몽화의 고개가 가볍게 두세 번 끄떡였다. 그러자 구효기가 모용화궁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고생하시었소. 모용가주. 심한 고초를 겪게 해드려서 죄송하오. 정중히 사과드리겠소.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신다면 노부의 사지를 자른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소.”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갑자기 돌변한 구효기의 태도는 뜻밖이었다. 흉수로 단정되는 모용화궁에게 포권이라니.... 더구나 죽을 죄를 진 듯이 많은 사람 앞에서 사과라니.. 좌중의 얼굴에는 일제히 의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구효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흉수는 모용가주가 아니오.”

그러자 모두 의혹스런 표정과 함께 일부 인물들은 불만스런 기색을 보였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있는데 모용화궁이 흉수가 아니라니......

“무슨 말씀이오?”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철혈보의 보주 독고문이 나직하게 물었다. 진대관과 나정광의 얼굴에 노골적인 불만의 기색이 떠올랐다.

“이미 저 자가 모두 실토했다고 하지 않았소?”

나정광이 당황한 듯 말했다. 모용화궁이 흉수가 아니라면 제일 먼저 곤란해질 사람이 자신과 진대관이다. 흉수로 몰며 조롱까지 하지 않았던가? 진대관 역시 불만스런 목소리로 소리쳤다.

“구거사는 어떤 근거로 그러시는 것이오? 증거를 대지 못한다면 본 방주로서는 절대 인정하지 못하오.”

“물론...... 증거 없이 노부가 이러겠소? 일단 한 분을 더 모셔야 하는 게 순서일 것 같소.”

말과 함께 구효기는 옆에 서 있는 당중에게 눈짓을 했고, 거의 동시에 다시 천막의. 휘장이 걷히며 한 인물이 들어섰다. 그는 독혈군자 당일기였는데, 그의 옆구리에는 피투성이가 된 목득이 들려져 있었다.

또한 그가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당중은 자신의 얼굴에서 얇은 인피면구를 떼어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진대관의 얼굴에 당황스런 기색이 스쳤다. 그 순간 구효기가 손을 들어 진대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과 내통하고 단문주를 죽인 흉수는 바로 당신이오.”

“무...무슨 당치도 않은 말을....?”

구효기는 연자광을 힐끗 보았다가 다시 진대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자광과 목득은 같은 동향 출신이었소. 하지만 연자광은 토호의 아들이었고, 목득은 소작농의 자식이었소. 그 사실을 아는 당신은 연자광으로 하여금 목득을 설득하도록 시켰소. 단문주가 죽으면 목득이 반드시 천궁문의 문주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이오.”

“...........!”

“목득은 단문주와의 의리 때문에 망설였지만 죽여 버리겠다는 연자광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소. 어차피 목득 자신도 천궁문을 차지할 흑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소. 더구나 그가 할 일이라곤 찻잔에 봉미독을 발라 놓고 당신이 왔다가 간 사실을 눈감고 발설하지만 않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소.”

“흐흐... 본 것처럼 말하는구려.”

“당연한 것 아니겠소? 이미 목득과 연자광이 똑같이 진술했으니 말이오.”

진대관은 머리를 돌려 연자광을 바라보았다. 목득이야 그렇다 해도 연자광까지 모든 사실을 실토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한 연자광은 죽을지언정 실토할 인물이 아니었다.

허나 진대관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무쇠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도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 찾아오면 차라리 모든 것을 말하고 빨리 죽고 싶어진다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사실 연자광은 지독한 자였고, 당일기가 말한 특이한 독에 세시진이나 버틴 인물이었다.

만약 목득이 실토했다 하더라도 부인하면 그만이었다. 누명을 뒤집어씌운다고 펄쩍 뛰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자광까지 토설했다면 이미 끝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부인했다.

“흐흐.... 본 방주와 저들이 무슨 관련이 있소? 연자광은 모용가의 사람이오. 본 방주가 더 가깝겠소? 아니면 모용가주와 더 가깝겠소? 이것은 모용가주의 음모요. 여러분들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소?”

그 때였다. 천막에 들어와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당일기가 입을 열었다.

“그만 하시오. 노부가 왜 이리 늦게 왔는지 아오? 쓸만한 당신 수하들을 손봐주느라 늦었소. 이미 당신 수하도 모두 실토했소.”

그 순간이었다. 진대관이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들며 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내밀다가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그의 몸은 굳어 있었는데 이미 그의 어깨 쪽에는 무당의 장문인인 청허자(淸虛子)가 검을 뽑아 갖다댄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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