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니깐 게 뭘 알어?

<음식사냥 맛사냥 64> 나른한 봄날, 원기 북돋워주는 '유황오리 참숯구이'

등록 2006.03.02 20:17수정 2006.03.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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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봄철, 해독과 보양에 탁월한 '유황오리 참숯불구이'

봄철, 해독과 보양에 탁월한 '유황오리 참숯불구이' ⓒ 이종찬

맛과 풍경은 오랜 추억과 같이 논다

이름난 맛집을 찾아나서는 길은 늘 몸과 마음이 설렌다. 특히 오랜만에 따사로운 봄볕이 푸르른 강물 위에 유리구슬처럼 쏟아져 찬란한 윤슬을 톡톡 굴리는 이른 봄날, 건강에도 좋고 입맛까지 되살려주는 맛집으로 달려가는 길은 몸과 마음이 들뜨다 못해 절로 입가에 웃음기가 삐죽삐죽 비어져 나온다.

그 집이 도심의 허름한 골목길 외진 곳에 꼭꼭 숨어 첫눈에 보기에도 퍽이나 초라하게 보여도,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찬 도심 한가운데 찬란한 네온사인을 달고 궁궐처럼 으리으리하게 보여도 그 무슨 상관이랴. 어디 뛰어난 맛이 겉으로 드러난 초라함과 화려함으로, 겉으로 드러난 그 집의 크기와 작기에 따라 어찌 달라질 수 있으랴.


하지만 그 이름 난 맛집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북적대는 도심보다는 봄햇살이 부서져 은빛으로 잔잔하게 출렁이는 강물을 스쳐가는 길목에, 보리가 푸르게 푸르게 자라나는 널찍한 들판을 끼고 있는 고향같이 아늑하고 조용한 시골에, 짧은 여행까지 즐길 수 있는 1~2시간 거리에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랄 게 있겠는가.

게다가 그 이름 난 맛집이 어릴 때 자주 들렀던 외할머니댁의 초가집처럼 정겹다면, 외할머니댁 뒷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그 장독대까지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면 얼마나 살갑겠는가. 외할머니댁 안방처럼 굵은 나무를 가지런하게 대고 붉은 황토를 발라 만든 천정을 바라보며 오랜 벗들끼리 나눠 먹는 그 음식 맛은 또 얼마나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겠는가.

a 고향 같은 아늑한 풍경이 있는 집

고향 같은 아늑한 풍경이 있는 집 ⓒ 이종찬


a 유황오리 참숯구이 드세요

유황오리 참숯구이 드세요 ⓒ 이종찬

봄철 잃어버린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유황오리

"봄철 잃어버린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유황오리는 일반 집오리에게 유황과 보리밥, 몇 가지 한약재를 섞어 만든 특수한 사료를 먹여 기른 오리를 말하지요. 예로부터 유황은 양기가 부족한 것을 다스리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궤양과 염증, 냉증을 비롯한 각종 부인병, 소아병 등에 약으로 썼다고 합니다."

지난달 24일(금) 오후 4시. 이승철(48) 시인, 한복희(48, 옛 '탑골' 주인) 여사 등과 함께 들렀던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유황오리 참숯불구이 전문점 '내고향'.

널찍한 황토마당. 흥부네 지붕처럼 짚으로 이엉을 엮어 올린 초가지붕. 어릴 때 내 고향집 부엌 앞에 매달려 있었던 것 같은 오래 묵은 부엌문. 곳곳에 놓인 동글동글한 통나무와 커다란 장독대. 통나무를 걸쳐 황토를 발라 만든 천정 등. 그래. 이 집은 굳이 간판을 '고향집'이라 내걸지 않아도 정겨운 내 고향집 같은 곳이다.


한때 문예지 <자유문학> 발행인과 <한국문협>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던 이 집 주인 김여옥(44, 시인)씨는 나그네와 일행들이 들어서자 오랜 벗을 정말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게 맞이한다. 식당 안 곳곳에는 주말과 저녁시간이 아닌데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둘러앉아 유황오리를 숯불에 지글지글 구워먹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a 독이 독을 푼다?

독이 독을 푼다? ⓒ 이종찬


a 유황오리는 일반 오리와는 달리 비린 맛이 전혀 없다

유황오리는 일반 오리와는 달리 비린 맛이 전혀 없다 ⓒ 이종찬

유황오리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감칠맛


기자가 유황오리에 대해 묻자 김씨는 "오리는 뇌수(腦髓) 속에 강력한 해독물질이 있어서 각종 독성 물질을 먹여도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 "바로 그 해독물질 때문에 사람이 먹으면 해독이 되고 보양, 보신이 된다"며 "지금까지 오리 외에는 그 어떤 동물도 유황을 해독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는 그만큼 유황의 독성이 강하다는 것. 또한 최대의 독을 가지고 있는 유황이 결국 오리의 해독물질을 통해 천하의 명약으로 거듭난다는 것. 하긴 그러고 보면 복어도 그렇지 아니한가. 복어국이 해독과 숙취에 좋은 것 또한 복어에 들어있는 독성 물질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 온갖 약을 다 쓰고도 살아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극약을 쓴다고 했지, 아마.

외할머니댁 안방 같은 예스러움이 물씬 풍겨나는 실내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김씨가 밑반찬 서너 가지와 유황오리(1마리 2만3천원) 불고기를 들고 나온다. 밑반찬으로 나온 연초록빛 무쌈과 묵은 김장김치, 양파무침, 마늘, 싱싱한 풋고추와 파릇파릇한 상추 등이 보기에도 맛깔스럽게 보인다.

김씨가 참숯불 위에 유황오리 불고기를 척 올리자 '치익칙~' 소리와 함께 이내 갈빛으로 익어가기 시작한다. 잠시 뒤 김씨가 이제 다 익었다며 맛을 한 번 보라고 한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유황오리 참숯불구이 한 점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자 쫄깃쫄깃 거리는 게 다른 불고기와는 달리 독특한 감칠맛이 그만이다. 그저 입에 넣는 순간 살살 녹아내린다고나 해야 할까.

a 유황오리는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유황오리는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 이종찬


a 살살 녹아내리는 봄눈 맛

살살 녹아내리는 봄눈 맛 ⓒ 이종찬

오리뼈 24시간 고아낸 국물로 만든 녹두죽 맛도 일품

"오리, 그 깐 게 뭘 알어?"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리는 아예 유황오리 근처에도 올 수 없단 그 말이지? 그만큼 유황오리 고기맛이 일반 오리고기 맛과는 다르다는 거지. 예전에도 이 집에 홍일선(시인), 김영현(작가) 형과 같이 와서 이 고기를 먹었는데, 느끼한 맛이 전혀 없고 소화도 잘 되는 게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들어가더라구."


쉴 새 없이 소주를 홀짝거리며 유황오리 참숯불구이를 마구 집어먹던 이승철 시인이 한마디 한다. 그때 주인 김씨가 "유황오리는 첫째가 해독이고 둘째가 보양"이라며, "어제 약주를 많이 드셔서 몹시 지친 것 같은데, 그럴 때일수록 유황오리를 많이 먹으면 피로가 싹 풀리면서 그것(?)이 되살아난다"며 볼을 발그스레 붉힌다.

유황오리는 그저 맛나게 즐기는 그런 음식이라기보다 몸이 허약할 때 먹어줘야 하는 일종의 보약이라는 투다. 하긴,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리고기는 약으로 쓰이는데, 간은 혈(血)을 보하고, 눈을 밝게 하며, 기름은 허한 기를 북돋우고 한열(寒熱)과 수종(水腫) 등을 다스린다"고 되어 있으니, 그 말이 맞다.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입에 당기는 유황오리 참숯불구이를 다 먹어갈 때쯤이면 파르스름한 녹두죽이 나온다. 오리뼈를 24시간 이상 고아낸 국물에 곱게 빻은 녹두를 넣어 만든 담백한 녹두죽 맛도 유황오리 참숯불구이의 감칠맛 못지않게 기막히다. 후식으로 참숯불에 구워먹는 해남 호박고구마도 이 집의 후한 인심만큼이나 달다.

a 자! 한 입 드세요

자! 한 입 드세요 ⓒ 이종찬


a 참숯에 구워서 그런지 뒷맛이 참 깔끔하다

참숯에 구워서 그런지 뒷맛이 참 깔끔하다 ⓒ 이종찬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지난 겨울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던 몸이 봄눈 녹듯 스르르 풀리면서 온몸이 나른해지고 입맛까지 떨어진다. 이럴 때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들녘으로 나가 새롭게 일어서는 봄기운을 흠뻑 마시며 유황오리 참숯불구이를 먹어보자. 지난 겨우 내내 몸속에 쌓였던 숙취가 스르르 풀리면서 온몸에 찬란한 봄꽃 같은 기운이 활짝 피어나리라.

a 오리뼈를 24시간 고운 물에 끓여낸 녹두죽

오리뼈를 24시간 고운 물에 끓여낸 녹두죽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강변역-워크힐-강변북로-토평나들목-수석동 버스정류장-유황오리 참숯구이 전문점 '내고향'

※'U포터뉴스' '시골아이 고향'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 서울-강변역-워크힐-강변북로-토평나들목-수석동 버스정류장-유황오리 참숯구이 전문점 '내고향'

※'U포터뉴스' '시골아이 고향'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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