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252m '문악칠봉(文岳七峰)'의 애환

[제주의 오름기행⑨〕산자와 죽은 자의 쉼터, 민오름

등록 2006.03.07 09:59수정 2006.03.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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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민오름 정상에 마련된 쉼터

민오름 정상에 마련된 쉼터 ⓒ 김강임

“민짝하다고? 민짝이 무슨 말인데?”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산책로를 걷다가, 앞서가는 제주토박이 친구에게 민오름의 특징 ‘민짝’의 의미를 물었다.
“민짝? 민짝이란 제주 사투리는 미끈하고 밋밋하다는 말이야.”

a 민오름은 '민둥산'이라지만, 오름 전체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오름은 '민둥산'이라지만, 오름 전체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 김강임

민오름 중턱 통나무 길에 이르자, 평소 제주사투리를 잘 구사하는 그녀는 “야! 이 통나무길 참으로 민짝 하다야!”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제주시 오라동 산 28번지 일대. 정말이지 민오름은 민짝했다. 일명 문악, 무악, 민악이라 일컬어지는 민오름은 온통 소나무 숲이었다.


“민둥산이라더니 소나무 밭이네!”
민오름은 민둥산을 의미한다지만,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쑥쑥 커가는 소나무 숲을 걸으면서 소나무 키에 주눅이 들었다. 1950~1960년대 식목행사로 심어놓은 이 소나무의 나이를 가히 짐작 할 만 하다.

a 소나무 숲에서 피어나는 꽃잎은 진통의 아픔을 겪고 있다.

소나무 숲에서 피어나는 꽃잎은 진통의 아픔을 겪고 있다. ⓒ 김강임

생명을 잉태하는 소리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니 식은땀이 났다. 3월의 봄기운인지 가파른 계단을 걷고 난 뒤의 에너지의 활동인지 온 몸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봄이 이만치에서 다가오고 있나 보다. 느린 걸음으로 걷다보니 보이는 것이 모두 보물단지처럼 느껴진다.

민오름 소나무 숲에는 많은 생태계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소나무 숲에서 갓 태어 난 듯한 꽃잎이 부스럭 소리를 내더니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난다. 꽃잎에 땀방울이 맺힌 걸 보니, 식물도 사람이 태어나는 것만큼의 아픔과 진통을 겪고 태어나는가 보다. 3월의 민오름 중턱은 생명이 잉태하는 소리로 들썩거렸다.

a 제주오름이 주는 선물

제주오름이 주는 선물 ⓒ 김강임

보석처럼 영롱한 꽃봉오리, 유리알처럼 투명한 광채, 그리고 꽃 속에 돋아난 가시들, 이렇듯 제주의 오름은 모든 생명의 고향이자 보금자리이다.

a 제주오름엔 역사의 아픔이 있다.

제주오름엔 역사의 아픔이 있다. ⓒ 김강임

오름에서 ‘못 내려 온 사람’들의 이야기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에는 늘 아픔이 뒤따른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아픈 역사를 말하는 민족. 수많은 생명이 잉태하는 민오름 중턱에서 잠시 역사의 뒤안길을 걸었다.


어떤 이는 제주의 오름을 ‘오름에 오른 사람은 오름에 내린 사람보다 많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오름에 왔다가 못 내려간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오름을 올랐다가 못 내려간 사람들. 해발 252m의 봉우리는 이들의 고통을 알까?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 죽은 자의 무덤에 꽃이 피어나듯, 3월의 민오름 정상은 머무나 평온했다. 산자를 위해 마련한 운동시설, 그리고 온갖 편의시설과 쉼터가 ‘오름에서 못 내려 온 사람들의 아픔을 무색케 한다. 쉼터로 활용되고 있는 정자. 화구 주위에 피어나는 온갖 생물들. 그래서 제주의 오름을 두고 ‘산자와 죽은 자의 터’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a 민오름 정상에서 돋아나는 봄향기를 한웅큼 뜯었다.

민오름 정상에서 돋아나는 봄향기를 한웅큼 뜯었다. ⓒ 김강임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듯 정자에 앉아 봄바람에 살갗을 태우니 코가 간질거린다. 평평한 정상을 한바퀴 돌아보니 솔바람에 젖고 봄나물 향기에 취한다.


a 민오름 정상에서 본 사라봉과 제주시 풍경

민오름 정상에서 본 사라봉과 제주시 풍경 ⓒ 김강임

해발 252m 민오름에서는 사방을 조망하며 제주의 모든 것을 다 바라볼 수 있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기대심리와 가 본 곳에 대한 익숙함을 말하는 곳이 바로 제주오름의 정상이다. 한눈에 잡히는 사라봉 아래 희끗희끗하게 펼쳐진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

a 한라산 중턱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다.(민오름 정상에서)

한라산 중턱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다.(민오름 정상에서) ⓒ 김강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잔설이 남아있는 한라산 언저리는 아직 한겨울이다. 마치 암탉이 알을 품고 있듯이 한라산은 크고 작은 오름들을 초원에 품었다. 진정 이곳이 세상을 바라보는 망원경이 아니더냐?

a 민오름  분화구에는 잡초와 소나무가 무성하다.

민오름 분화구에는 잡초와 소나무가 무성하다. ⓒ 김강임

문악칠봉(文岳七峰), 7개의 봉우리가 있다던데...

민오름 정상에서 몇 번을 돌아봐도 서쪽 봉우리가 어디인지 동쪽 봉우리가 어디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동쪽과 서쪽 중간 화구에 말굽형 분화구가 있다는데, 잡초로 우거져 있으니 육안으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더욱이 빽빽이 들어선 화구의 소나무 숲 속엔 무엇이 살고 있는지 수수께끼 같다. 잘 손질된 분화구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거진 잡초와 소나무 숲이 난립하여 봉우리의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꼭 높아야만 봉우리인가. 능선 따라 2~3번 걷다보니 미로처럼 펼쳐진 높고 낮은 지형이 봉오리 같기도 하고 능선 같기도 하다. 그러니 문악칠봉(文岳七峰) 봉오리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a 화구에는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꽃밭을 일궜다.

화구에는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꽃밭을 일궜다. ⓒ 김강임

옛날에 민오름을 두고 문악칠봉(文岳七峰)이라 하여 7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한데, 7개의 봉우리를 식별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마치 밀린 숙제를 다 하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 같은 허전함. 그 허전함을 채워주는 것은 분화구에 피어있는 대롱대롱 달려있는 빨란 열매다. 그 빨간 열매는 분화구에 꽃밭을 일궜다. 제주오름 정상에 이만큼 아름다운 꽃밭이 또 있을까?

민오름은 삶의 생명이며 원천

▲ 제주시 연북로에서 본 민오름

민오름은 제주시 오라동 산 28번지 일대에 있는 오름이다. 민오름은 표고 251.7m, 비고 117m, 둘레 2,968m, 저경 996m이다. 민오름의 특징은 ‘민짝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민둥산을 의미하지만 지금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쌓여 있다.

민오름은 북동쪽으로 이루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분화구를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어렵다. 주요 식생은 해송과 예덕나무, 보리수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아카시아 등이며, 미나리아재비, 솜방망이, 술패랭이가 자생한다.

제주 오름중 민오름이라는 지명은 5개가 있다.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민오름과 제주시 봉개동 민오름 , 구좌읍 송당리 민오름, 조천읍 선흘리 민오름, 남원 수망리 민오름 등 5개의 민오름 등이 있다. / 김강임

덧붙이는 글 | ☞민오름 찾아가는길 : 제주시- 연북로- 제주도 지사공관(앞길)- 민오름이다. 민오름 전체를 한바퀴 돌아보는 데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3월 5일 다녀온 민오름 탐사기록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민오름 찾아가는길 : 제주시- 연북로- 제주도 지사공관(앞길)- 민오름이다. 민오름 전체를 한바퀴 돌아보는 데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3월 5일 다녀온 민오름 탐사기록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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