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84회

등록 2006.03.09 08:14수정 2006.03.0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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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는 분명했다. 허나 저 여인의 손에 남궁산산이 있을 것이다. 일단은 저 여인을 만나야 구해내던 말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마셔야 하는 것이라면 좋소. 일단 두 가지 모두 주실 수 있겠소?”


“너무 좋은 생각이군요. 물론 소첩은 이미 준비해 놓았으니 두 가지 모두를 대접해 드릴 수 있어요.”

그 순간이었다. 담천의의 양쪽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리며 석벽 한 장 정도가 밀려들어가는 듯 했다. 양쪽 모두 유등이 걸려 있는 옆쪽이었는데 사각형의 구멍이 보임과 동시에 한쪽에서는 찻잔이, 또 한쪽에서는 술잔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놀랍게도 찻잔과 술잔은 양쪽에서 아주 느릿하게 허공에 뜬 채 담천의의 전면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격공섭물(隔空攝物)......?)

믿지 못할 일이었다. 격공섭물은 사실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일 장 정도 안이고, 내력이 심후한 고수라면 가능은 하겠지만 허공을 격하여 어떠한 물건이라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찻잔과 술잔을 흔들리지 않게 저리 움직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담천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저 찻잔과 술잔이 격공섭물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면 자신은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고수였다. 내력이 승부를 가르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내력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면 그 승부는 보나마나였다.

양쪽에서 허공을 가르며 내려오는 술잔과 찻잔은 사선을 그으며 한곳으로 내려왔는데 그곳에는 양 손으로 풍만한 가슴을 받치고 있는 모양의 나상이 서있었다. 은근한 것이기는 하지만 유혹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고혹적인 자태여서 민망한 느낌이었다.


찻잔과 술잔은 서서히 내려와 나상의 양쪽 젖가슴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손 사이에 살며시 놓여졌다. 노란 빛깔을 띠고 있는 것은 차일 것이고,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은 술로 아마 여아홍(女兒紅)이 아닌가 싶었다.

“......!”

나상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간 담천의는 이내 찻잔과 술잔이 어떻게 내려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안력을 돋구자 언뜻 불빛에 비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는 실을 볼 수 있었는데 . 아마 천잠사(天蠶絲)가 맞을 것이었다.

교묘하게 양쪽 벽의 구멍과 전면에 있는 나상에 천잠사 두 줄을 가지런히 연결해 놓고, 그것을 타고 내려가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아마 향연(香煙)으로 인하여 실내가 뿌옇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 해도 천잠사를 타고 내려가는 찻잔과 술잔이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차를 마시려면 식지 않을 때 마시는 게 좋을 것이고, 술을 드시겠다면 향기가 풍길 때 드시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휴우.....”

담천의는 짐짓 고민이 되는 듯 한숨을 불어냈다. 그는 정말 마셔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을 만나려면 마셔야 한다니 할 수 없이 마셔야 하겠지만 참으로 난감한 일이구려.”

“호호.... 남들이 평가하길 당신은 정말 감당하기 어운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첩이 당신을 만날 수 있겠어요?”

“좋소. 마신다고 죽기야 하겠소?”

“물론이에요. 거기에 들어있는 춘약은 먹는다고 죽는 것은 분명 아니에요.”

담천의는 두 걸음 더 나아가 나상의 젖가슴 위에 놓여져 있는 두 개의 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찻잔을 들었다.

“아무래도 세 가지나 들어있는 차를 마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오. 대개 여러 가지 들은 것은 단 한 가지 들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덜 위험한 법이니 말이오.”

대개가 그렇다. 여러 가지가 들어있으면 덜 위험할 것 같지만 사실 여러 가지 넣었다는 것은 그만큼 덜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한 가지만 넣었다는 것은 그 한 가지가 매우 치명적이라는 뜻. 그는 다시 찻잔을 나상의 젖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되었소?”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또 거쳐야 할 일이 있소? 참으로 당신을 만나기가 나라의 황상 만나기보다 어려운 것 같구려.”

“그럴지도 모르죠. 당신은 얼마 전 전월헌이란 사람과 싸운 적이 있나요?”

“그렇소. 아주 대단한 인물이었소.”

“결과는...어떻게 되었나요?”

여인의 목소리가 미세하나마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긴장된 듯 보였다.

“운이 좋았소.”

그 말에 기이하게도 나상의 젖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찻잔과 술잔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타오르던 향불도 흔들리며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외부의 공기가 들어올 구멍도 없는데 향연이 흔들린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잠시 여인의 목소리가 끊겼다. 고요한 적막이 실내에 감돌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리 오래 지난 것 같지 않았지만 자신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고요함 속이라 꽤 흐른 것도 같았다.

“그는 죽었나요?”

목소리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섞여 있었지만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팽개치고 돌아가 살고 싶다는 곳에 누웠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주위에서 알지 못할 살기가 쏘아와 피부를 찌르는 듯 했다. 담천의는 일순 긴장했다. 금방이라도 뭔가 공격해 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에게 쏘아지던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래도 당신은 거기에 놓인 술까지 마셔야 할 것 같군요. 그것은 벌주(罰酒)예요.”

여인의 목소리는 차가왔다. 이 여인은 짐작한 것과 같이 유항이란 여인이 분명했다. 전월헌은 그녀의 사제였을 것이고, 그녀가 전월헌에 대해서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매우 화가 난 듯 했다.

“결국 두 가지를 모두 마시게 생겼군.”

어쩔 수 없었다. 독약이던 춘약이던 마신 후에 진기를 운용해 몸 한구석에 몰아넣었다가 나중에 해소시키거나 해약이라도 구해 먹는 수밖에 없었다. 또 한쪽 젖가슴 위에 올려져 있던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한꺼번에 마시는 바람에 두세 방울 옷깃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옷깃에 붉은 색의 점이 찍힌 듯 했다. 아마 술을 여아홍으로 택한 것이 이런 이유였던 것 같았다. 만약 담천의가 술을 밷거나 흘릴 경우 금방 표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술이오.”

그는 씁쓸한 고소와 함께 술잔을 나상의 젖가슴 위에 놓았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파파----팍---!

갑자기 앞에 있던 나상이 일순간에 터지면서 얇고 작은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투명해 보이는 섬섬옥수가 담천의의 가슴을 파고드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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