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도씩 척추는 휘어지지만...

척추측만증 베트남 청년 푹 탄... 완치되면 야학교사될 것

등록 2006.03.09 17:15수정 2006.03.10 10:3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만일 수술을 받고 건강한 몸으로 베트남으로 돌아간다면, 학교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아이들을 가르칠 거예요."


교육대학을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했다는 푹 탄은 원인을 알 수 없이 척추가 휘는 '척추측만증'으로 어린 시절부터 늘 외톨이로 자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수술을 받고자 우리쉼터와 (사)한국해외봉사단연합의 초청으로 지난 2월 10일 한국에 왔습니다. 그동안 수술을 위해 몇몇 병원에서 수술 절차를 알아보다가, 이제 수술 일정을 잡고 내일 10일 입원합니다.

수술에 앞서 푹 탄의 마음을 편히 해주고자 완치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 봤습니다. 그러자 야학을 하며 인생을 보람 있게 살고 싶다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푹 탄의 누이로부터 전해 들었던 말과 같았습니다.

척추는 휘었지만... 아름다운 베트남 청년 푹 탄

a 옷을 걷어 올린 푹탄의 뒷모습.

옷을 걷어 올린 푹탄의 뒷모습. ⓒ 고기복

푹 탄(Nguyen Phuc Than·21)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은 지난해 초여름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쉼터에서는 유방암을 앓고 있던 '항'이라는 베트남 여성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들었는지 우리 쉼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업어 보이는 '진료의뢰서'를 한 장 들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푹 탄의 누이인 '휀(Hyeun·32)'이었습니다.

휀이 갖고 왔던 진료의뢰서는 '중앙아동병원'(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 병원인지 모름) 재활과가 수신인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 진료의뢰서에 의하면 푹 탄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척추측만증'으로 베트남 중앙아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계속적인 병세의 악화로 한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척추측만증(Scoliosis)이란 정면에서 보았을 때 일직선이 되어야 할 척추가 옆으로 굽는 병을 말합니다. 푹 탄의 경우 60도 이상 휘었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앞으로 매년 1도씩 더 휘면서 건강상에 큰 무리가 올 수 있다고 합니다. 푹 탄의 정확한 병명은 '특발성 척추측만증'입니다.


진료의뢰서를 갖고 왔던 휀에 의하면, 푹 탄은 13세 이후부터 척추측만증 증세가 심하게 나타났고,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된 옷(교정기)을 6년 가까이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무더운 베트남에서 두텁고 큰 플라스틱 옷을 입고 학교생활을 하여 주위의 놀림과 이상하게 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푹 탄은 점차 내성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척추는 점점 휘었고, 성장기가 지나자 의사는 플라스틱 옷으로 증세를 완화시키거나 교정을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고 하여 그때부터는 플라스틱 옷 착용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맘 움직인 푹 탄의 누나 휀

처음 휀을 통해 푹 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우리 쉼터가 외국에 있는 사람을 불러다 치료해 줄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휀은 유교적 풍토가 깊은 베트남에서 푹 탄은 집안의 독자로, 부모님께서 푹 탄이 죽든 살든 한국에서 제대로 된 치료라도 한 번 받게 하고 싶어 한다면서 초청을 부탁해 왔습니다.

3녀 1남의 맏딸로 어린 동생들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어렵게 번 돈을 알뜰살뜰 부모님께 보내, 동생들의 학비를 댔던 휀은 막내의 굽은 등을 보며 탄식하는 부모님 생각에 한국에 온 후 늘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중학교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며 행복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시골에서 약초를 캐며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린다는 생각에서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수술을 하면 얼마가 들지 모르는 입장에서 무작정 푹 탄을 초청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힌 후, 저는 척추측만증에 대해 여기 저기 물어보면서 수술을 하면 완치가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휀에게 짐짓 우리 쉼터가 푹 탄을 초청해서 치료해 줘야 할 이유가 뭔지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휀은 그 질문에 대해 그 자리에서 답하지 않고 그 다음 주에 국제전화를 통해 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 위한 선생님 될 것

푹 탄은 자신이 수술을 받아 완치가 되면,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아이들을 모아 야학을 하며 살 것이라고 답했다고 했습니다. 푹 탄이 살고 있는 곳은 하노이에서 70km 이상 떨어진 우리나라의 작은 읍 정도 규모의 시골로,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푹 탄은 자신의 신체적 문제로 외출을 꺼리고 내성적이 되긴 했지만, 집에서 길거리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며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작년 10월(베트남은 학기가 가을에 시작됨) 교대에 입학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신체적인 문제로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학업을 중단하고 집에만 있다는 말을 전해주던 휀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울먹였습니다.

결국 휀의 말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한 우리 쉼터에서는, 푹 탄을 초청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재정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때, 캄보디아에 병원건립 계획을 갖고 있었던 (사)한국해외봉사단연합에서 병원건립 계획이 연기되면서, 푹 탄이 수술을 받게 된다면 일정 부분 도울 의향이 있다는 답변을 해 줬고, 평소 베트남 아동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던 목사님 한 분이 나서서 한 번 힘을 모아보자 하셔서 초청하게 된 것입니다.

야학 교사가 꿈인 청년, 푹 탄의 수술이 잘 되면 3주 정도 입원한 후, 약 3개월 정도 통원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의 꿈이 현실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