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87회

등록 2006.03.14 08:14수정 2006.03.1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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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히려 자신의 혈맥을 파고드는 염력을 이용해 혈맥을 자극시켜 진기의 움직임을 더욱 부드럽고 빠르게 운용하기 시작했다. 지친 그의 몸에 새로운 생기가 일며 진기의 운용이 더욱 원활해지고 있었다. 마치 지친 몸의 잠력을 조금씩 격발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깨달음이 이제 실전에서 운용되는 것이다. 어떠한 외부의 기운이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래서 주위의 사물이나 기운과 동화될 수 있는 상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심안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뚜렷하게 주위를 볼 수 있게 만들었고, 그의 검은 거침없이 허공을 갈랐다.


“아악----!”

몇 개의 석상이 터져나가며 돌가루가 휘날린 후였다. 시야조차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가닥 핏줄기가 허공에 뿌려졌다. 그와 함께 회분을 뒤집어 쓴 듯 전신이 하얀 여인의 나신이 털썩 바닥에 떨어졌다.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베인 상처에서는 꾸역꾸역 피가 흘러나왔다.

이미 그의 검로는 본래의 위력을 되찾고 있었고, 그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미친 것 같이 광폭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여지없이 석상이 한 둘씩 터져나갔다.

바닥은 여전히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지만 담천의는 무아지경에 빠진 듯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은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실내를 휘몰아 갔다. 검무를 추는 그의 모습에는 막힘이 없었다.

“악---! 아학....!”


또 다시 연이어 두 마디의 비명이 울렸다. 하나는 담천의를 여기까지 안내했던 삼색화의 막내인 소녀의 비명이었고, 또 하나는 목상인 듯 보이는 여자의 것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실내에는 그 많던 상들이 모두 부서져 있었고, 다섯 구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하다못해 석벽에 새겨진 부조마저 몇 줄기 검흔으로 파여져 있었다.

“후욱----!”


담천의의 입에서 뜨거운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검무를 멈춘 그의 입술은 바싹 메말라 흰색으로 변해 있었고, 서서히 눈을 뜨자 눈동자는 온통 시뻘겋게 충혈되어 핏빛이었다. 목과 팔뚝의 혈맥 역시 눈에 띨 정도로 부풀어 올라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칫 시간을 지체하면 혈맥이 파열될 상태.

외부의 어떠한 기운도 동화시킬 깨달음을 얻었다지만 몸속을 휘젓고 있는 춘약의 기운을 이겨낼 수 없었다. 춘약은 독이 아니다. 몸이 거부하는 이물질이 아니다. 몸속에 스며든 춘약은 그의 젊은 피를 끓게 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끌었다. 더구나 목에 박힌 비침은 뽑아냈지만 그것에 발라져 있던 독은 어느새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는 급히 열려진 벽을 통해 욕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남궁산산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하반신을 물에 담그고 있는 욕실이 있는 방이었다. 욕실 바로 옆에는 돌로 만든 침상이 있었고, 그곳에도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있는 유항의 상이 있었는데 남궁산산의 것으로 보이는 옷이 매끄러운 허벅지에 걸쳐져 있었다.

“산매... 어서 옷을 걸쳐라.....!”

이미 이성이 무너진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 허나 남궁산산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수치심과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만 깜박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은 너무 애절하여 오지 말라는 의미 같기도 했다. 그것이 수치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런 의미를 알아차리기에는 담천의의 이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남궁산산을 데리고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애써 남궁산산의 나신을 외면하고 다가갔지만 남궁산산은 온 몸이 붉게 달아 오른 채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혈도를..... 제압당한..... 것일까?)

점점 무디어지는 이성의 끝자락을 잡으려 애썼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비칠거리며 남궁산산에게 다가갔는데 바로 그 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터질 듯한 혈류의 움직임에 신형을 바로 세우기에도 버거운 상태에서 더욱 맹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바로 보이지 않는 염력. 동화시킨다고는 했지만 이번 것은 다시 전신의 혈맥을 자극하면 몸속에서 불꽃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충격.

퍼퍽-----!

가슴과 옆구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과 고통이 느껴졌다. 그 충격은 이전의 무엇보다 커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그의 몸이 허공에 떴다가 욕조 안으로 처박혔다. 그는 물에 처박히면서도 무의식중에 피 묻은 만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상대의 연속될 공격을 멈칫하게 하는 행위였고, 그에게는 아주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도 그는 물 속에서 아른거리며 석침(石寢)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나상이 일어나 자신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을 보았다.

석침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나상. 그것이 진짜 유항이었던 것이다. 그는 다급하게 물 밖으로 검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그것은 유항의 출렁거리는 가슴 사이를 노린 것이었는데 이리 다급하지 않았으면 아무리 적이라도 여인에게는 공격하지 않는 부위였다.

허나 유항은 교묘하게 몸을 돌리며 그의 검을 피하며 하얀 옥수로 그의 머리를 잡아채 왔다. 이미 마비되어 가는 정신과 지친 육신에서 펼쳐진 그의 공격은 치명적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가 홱 제겨지며 다시 물속으로 처박혔다. 다행히 물속이라 그녀의 옥수는 그의 머리칼을 한웅큼 뜯어냈을 뿐이었다.

담천의는 뜨뜻한 욕조의 물을 두어 모금 마시면서 물구나무서듯 다리를 들어 올려 세차게 차냄과 동시에 물 위로 몸을 뒤집으면서 왼손을 뻗어 유항의 사타구니를 잡아채갔다. 그것 역시 사내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여자를 상대하는데 있어 파렴치한이 아니라면 아무리 급해도 여자의 그런 부위를 공격하지 않는다.

유항도 여자인지라 담천의의 이런 파렴치한 공격에 일순 당황한 듯 했다. 아무리 아무 사내에게 옷을 벗는 노류장화라도 여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슴과 비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유항도 여자였다.

“이런 파렴치한 놈....!”

그녀는 욕을 퍼부으면서 세류요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늘씬한 두 다리를 번갈아 교차시키며 담천의의 상체를 찼다. 헌데 무슨 일일까? 어느 순간 담천의는 자신의 만검도 던져버리고 공격해 오는 유항의 다리를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안으려는 자세처럼 보였는데 그의 오른손은 교묘하게 유항의 발 공격을 차단하며 그녀의 종아리를 잡아채고 있었다.

“헛.....!”

그녀는 헛바람과 함께 몸을 돌리며 왼쪽 종아리를 잡고 있는 담천의의 오른팔 어깨를 향해 오른발로 세차게 가격했다.

퍼퍽----!

그녀의 발은 담천의의 어깨에 꽂혔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몸을 틀며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어서 담천의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잡은 그녀의 종아리는 놓지 않았다. 종아리에 고통이 밀려들면서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담천의의 눈을 보았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

붉게 충혈된 눈. 뜨거운 숨을 내몰아 쉬는 담천의의 모습은 정욕에 굶주린 사내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오직 여자만을 원하는 그러한 상태. 담천의는 어느 순간 이지를 상실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사용한 춘약은 해독약이 없는 지독한 것이었다. 저 자에게 붙잡힌다면 자신의 몸이 찢겨져 나갈 정도로 시달릴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그녀는 황급히 쌍장을 날려 점차 허벅지까지 타고 올라오는 담천의의 상체를 공격했다.

허나 담천의의 몸놀림은 교묘했다. 장력을 비껴 맞으면서 오직 그녀의 비소를 향해 다가들었다. 그녀는 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이미 무릎을 잡힌 상태라 여의치 않았다. 성화령(聖火令)을 두고 온 것이 실수였다. 적멸안의 기운으로 염화심력을 운용했다면 저 자의 이지를 완전하게 흐려 놓을 수 있었을 것이고, 궁극에는 저 자를 사로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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