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콘돔에 대한 궁금증은 꼬리를 물고.김혜원
'어머머...... 하나가 없네?'
겉봉에 적히기로는 박스 안에는 콘돔 12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 남아있는 것은 11개뿐. 방금 전 '그럼, 그렇지'하던 아들에 대한 신뢰는 어디로 가고, 순간 아들 주변을 맴돌던 여자친구들의 이름과 면면이 차르르 슬라이드처럼 지나갑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등줄기로 식은 땀 한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아니, 얘들이 미쳤어, 정말!'
사라진 콘돔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져 드라마 열 편은 쓸 정도의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혼자서 끙끙 앓다가 먼저 남편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저어기 큰 아들 서랍에서 콘돔이 나왔는데… 그런데… 하나가 없어진 거 있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말을 들은 우리 남편, 벌레 보는 듯한 눈을 하더니 대뜸 훈계부터 시작합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당신 양식 있는 부모 맞아? 아들 서랍은 왜 뒤지나? 스무 살 먹었으면 이젠 성인이야. 서랍 뒤지다가 그거 발견했다고 할래?"
"그러니까 당신이 어떻게 좀 돌려서 물어 보면…."
"당신이 항상 콘돔 사용하라고 가르쳤잖아. 그 말은 다 뭐야? 그래서 썼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건데?"
"뭐라고 하긴… 궁금해서… 아휴~ 속 터져. 당신까지 왜 이래?"
남편을 지원군으로 확보하지 못한 저는 결국 정면 돌파를 결심했습니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알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았답니다.
"착용감 알아보려고 썼어요, 뭐가 잘못 됐나요?"
마침내 날을 잡아 아들과 단 둘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무 일도 아닌 듯 가볍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 저번에 받았다던 콘돔 아직도 가지고 있니?"
"콘돔? 무슨 콘돔이요?"
"작년에 명동에서 받았던 거, 그거 말야…."
"명동… 아! 그거, 아마 어디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요?"
"안 쓰면 이모 주면 안 될까? 이모가 슈퍼 가면 하나 사달라고 했는데 못 사왔거든."
"그렇게 해요. 그런데 이모도 그거 쓴대요?"
"당분간 아이 낳지 않으려고 한대..."
아들은 방에 들어가 서랍을 뒤지더니 문제의 콘돔박스를 들고 와 저에게 줍니다. 박스를 열어본 저는 '각본대로' 새삼 놀란 시늉을 합니다.
"어머, 하나가 없네? 하나가 없어~ 니가 썼니? 설마 니 여자친구?"
우리 아들, 엄마의 추측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입니다.
"내참, 아들을 그렇게 모르나? 걱정 마세요. 그런 일 없으니까. 하나 쓰긴 썼어요."
"어… 디… 다? 그러니까 그걸 어디다 쓰냐고?"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당연히 모르지. 이걸로 풍선을 불었을 리도 없고…."
"나 참 창피하게… 착용감 알아보려고 한 번 해봤어요. 느낌이 어떤가 궁금해서요."
"착용감? 정말?"
"다들 한 번씩 해본다던데. 아빠나 이모부한테 물어보세요. 다들 경험 있으실 걸요. 하하."
"착용감이라고? 히히. 정말 웃긴다."
며칠 동안 저를 고민하게 했던 사라진 콘돔 하나는 결국 시착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아들은 아직도 엄마가 자기 책상을 뒤지고 혼자 이상한 상상을 했다는 사실을 모른답니다. 평소 아들의 성 문제에 쿨한 척, 개방적인 척 하던 엄마가 그랬다는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요.
내 아들이 설마? 이젠 아들을 믿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