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내는 아이들과 씨름하다 잠이 들었고 나의 귀가는 늘 그랬던 것처럼 마감뉴스와 함께 했다.이정희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그날 아침 늘 그렇듯 나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장모님이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아침은 먹었는가? 식전이면 건너와서 먹고 가게."
전에도 처가로 건너가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나는 그리하겠노라 대답을 하고 장모님 댁으로 건너갔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등교 챙기고 좀 있다가 가겠노라 해서 나 혼자만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상 차림새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제법 큰 굴비에 각양각색의 나물에다 고깃국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넉살 좋은 사위인 척 이렇게 말했지요.
"장모님, 어제 집안에 제사 있었어요? 상다리가 부러지겠습니다. 하하."
"아니, 이 사람 보게. 오늘이 우리 딸 생일날이잖아. 몰랐어? 그러게, 바깥일만 한다고 나돌지만 말고 집안에도 신경 좀 쓰게…."
"……."
아뿔싸, 전날 저녁까지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밤샘회의에 그만 아내의 생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사태를 맞게 된 겁니다. 그날도 나는 편치 않은 표정의 장모님 충고를 뒤로하고 허겁지겁 출근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물론 아내는 아침 생일상 받으러 왔다가 장모님한테 무심한 내 얘기를 들었을 테고요. 그리고는 그날 저녁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 한마디를 날린 것이었습니다.
"당신 정말 '나뿐' 놈이야!"
결혼 생활 십여 년, 아내는 머슴이 됐습니다
내가 식구들로부터 집안일에 이렇듯 무심한 '불량 가장'으로 낙인찍힌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집안 식구들은 그 모든 원인을 10여 년째 일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지역 시민단체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의 모친께서는 "실속 없는 일에 정신 팔려 다니는 한량"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내 자신은 주변 사람들의 불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이해심 많은 우리 가족이 나를 든든히 후원해 주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10여 년 이상을 맞벌이하며 살아온 직장인입니다. 다행히 생각하는 거나 행동양식도 비슷해 별 다른 의견 충돌은 없었습니다. 뉴스를 봐도 대부분 같은 시각으로 해석하고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내는 나의 '사회참여 활동'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고 나의 활동 때문에 부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거나 불화가 생긴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얼마 전부터 아내의 행동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날도 역시나 늦게 귀가한 나를 앉혀 놓고는 "참다 참다 못 참아서 한마디 한다"며 이러더군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당신은 밖에선 참 '좋은 사람'이더라. 남들 고민도 다 들어주고 억울한 민원 생기면 앞장서서 해결해 주고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그런데 왜 나한텐 그렇게 무관심한 거야? 왜 아이들 아플 때 당신은 항상 없는 거야? 내가 당신 '머슴'이냐고~."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나도 혼란스러워져 급기야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내 사정을 당신이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그래? 내가 밖에 나가서 술이나 먹고 허튼짓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당신이 이해해 줘야지?"
"……."
하지만 그건 아내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내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집 밖에서는 민주적 절차와 평등을 말하면서 집에만 들어오면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내 편의만을 찾았고 그것을 이해 못해 주는 아내에게는 불만을 늘어놓았던 거죠.
그 후로 아내가 불평을 표현하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가끔은 반대로 말수가 적어졌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벽까지 잠 못 이루다 그냥 출근하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지쳐가고 있었던 겁니다.
늘 바쁜 아버지, 늘 청소하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