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서평]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

등록 2006.03.17 12:20수정 2006.03.1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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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난 지금 행복해. 내 기억은 그녀만으로 가득하니까. 나를 계란처럼 반으로 탁 깨면, 그녀하고의 추억만 흘러나올 거야."


<연애소설>을 번역한 옮긴이의 말처럼, 연애의 불길을 헤치고 나온 사람은 온갖 증오, 절망, 회한 속에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켜 삶이 곧 죽음이 되어버리는 쪽이 있는가 하면 회한의 눈물을 딛고 일어서 과거를 소중하게 껴안고 그 기억을 버팀목으로 삼아 살아남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영원히 놓지 않고 살리라 다짐하는 쪽이 있다.

재일교포이며, 영화화된 장편소설 < GO >로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에는 이런 연애의 불길 속을 헤치고 살아남은 세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인스턴트 사랑이 횡행하는 이런 시대에 상대를 위해 생명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은 오히려 중압감으로 상대를 멀어지게 만든다는 충고도 간혹 귀에 들리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한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그런 사랑은 겪어보기 마련이다.

어차피 같이 있지 않는 동안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죽은 사람과 다름없다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것이 오래된, 하지만 변치 않을 사랑의 방식이 아닐까?

얼핏 구태의연해 보이는 이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가네시로 가즈키는 현실에 있음직하기도 하고, 또 전혀 겪어볼 수 없을 것만 같기도 한 배경 속에서 풀어놓는다.


주위 사람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가는 운명을 지닌 남자. 그리고 그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마저도 죽고 나서 그 기억만 가지고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으면서, 자살해버린 상대를 위해 병실에 누워 복수만을 꿈꾸는 시한부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삶에 치여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기간 헤어졌던 한 남자가, 사랑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이에 동참한 시한부 젊은이의 이야기.

특이한 세 명의 사랑 이야기를 지은이는 그만의 독특하고 경쾌한 문체로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무심코 넘겨가는 책장 속에서 어느덧 가슴속을 에이는 잔잔한 슬픔과 그리움과 유사한 감정이 솟아나 눈시울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책 속 세편의 단편이 해피엔딩이 아닌 사랑 이야기여서일 것이다.

"난 죽는 순간에도 아무 후회 없을 것 같네. 왜냐하면, 나 자신의 의지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말이야. 아무튼,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난 순순히 받아들이겠네."

덧붙이는 글 | 연애소설 | 가네시로 가츠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

덧붙이는 글 연애소설 | 가네시로 가츠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북폴리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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